전략 삼국지 11 - 손책의 쾌진격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전략 삼국지 11 : 손책의 쾌진격>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XXVIII / 대현출판사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온일곱 번째 리뷰는 손책의 대활약과 유비가 조조의 품으로 숨어버리는 <전략 삼국지 11>이다. 유비의 시작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의병을 이끌고 패전을 모르고 대활약을 펼쳤지만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십상시들에게 뇌물을 건내지 않은 까닭에 쥐꼬리만한 '현위(현 지방파출소 소장쯤)직'을 받았으나, 그마저도 독우가 미처 받지 못한 뇌물을 챙기겠다며 찾아와 야료를 부리자 유비는 현위직을 내던지고 독우를 작살낸 뒤에 떠난다. 독우가 유비에게 현상수배를 걸자 유비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공손찬의 그늘'에 숨었다가 십상시의 난 이후에 다시 날뛰는 황건적 잔당들을 소탕하는 공을 세워 과거의 죄를 씻고 '평원 현령'을 지내게 된다. 이제 겨우 송곳만큼 세력을 키울 근거지를 갖게 된 것이다. 허나 세력을 키울 새도 없이 '반동탁연합군'이 일어나자 유비는 독자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연의>에서는 공손찬과 합류한 것으로 나오지만 '정사'에는 공손찬은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암튼 사수관과 호뢰관에서 연이은 대활약으로 유비삼형제는 널리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허나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하는 바람에 유비는 얻은 공도 없이 다시 평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조조의 아버지가 도겸의 휘하 장수에게 참살을 당한 뒤에 조조가 대학살을 하며 서주공략을 할 때 유비가 도겸의 편을 들어 조조의 공격을 중단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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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여포가 빈집털이를 하면서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차지하게 되고 조조는 부랴부랴 퇴각한 뒤에 여포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결과는 일진일퇴 무승부라고 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허나 여포는 지구전에 약했다. 조조가 계략으로 여포를 압도하니 여포는 또다시 유랑길을 떠나야 했고, 그 사이 서주 태수가 된 유비의 품으로 들어가 소패성에 머물게 된다. 그럼 유비는 서주성을 차지하고 세력을 기를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럴 틈이 없었다.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데리고 오면서, 승상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조조는 황제의 명을 빌어서 주변 제후들에게 감놔라 배놔라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유명한 이호경식, 구호탄랑 계책으로 유비는 여포와 이간질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꾀가 부족한 여포는 이를 덥썩 물어버리고 유비가 원술을 공격하러 빈틈을 보인 틈을 노려 서주성을 빼앗아버린다. 그렇게 유비는 애써 안희에서 평원으로, 평원에서 서주로, 점점 세를 불려가는 듯 싶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포에 이어 원술까지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는 어쩔 수 없이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고 만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길 바란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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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11> 관점 포인트 : 손책은 아버지가 남긴 유물인 '전국옥새'를 원술에게 쥐어주고 약간의 병사를 빌려 '강동 평정'에 나선다. 손책은 파죽지세로 강동의 땅을 평정해나갔고, 유요에 이어, 엄백호, 그리고 왕랑까지 토벌하는데 성공하면서 강동 일대의 땅 전부를 손책이 차지하고 다스리게 된다. 이로써 그 옛날 패왕이라 불리던 항우에 필적하는 업적이라면서 손책을 '소패왕'으로 불리게 된다. 손색 없는 별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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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옥새를 쥔 원술은 황제에 걸맞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 주변을 평정하여 위엄을 널리 알리려 했는데, 마침맞게 손책이 빌려간 병사를 10배로 갚을테니 맡겨둔 '전국옥새'를 돌려달라는 전갈을 보낸다. 원술은 이 소식을 묵살하고 '정복야욕'을 드러낸다. 그래서 손책에게 공격을 지시했지만 주변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선다. 강동을 평정하는데 힘을 쏟았다가 도리어 여포에 의해서 '빈집'을 털릴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다. 여포의 빈집털이는 어느덧 유명세를 떨쳤던 것이다. 조조의 연주을 털더니, 유비의 서주를 털었고, 이제 원술 차례가 될 수도 있다는 꽤 합리적인 이유를 들으면서 원술은 그럼 누굴 쳐야 좋은지 되물었다. 그러자 유비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여포가 유비를 도울 수도 있으니 지난 번에 약조한 '보상'을 챙겨보내주면서 유비를 치러가는데 길을 빌려달라 말하면 재물에 욕심이 많은 여포라면 반드시 유비 공략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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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여포를 너무 만만히 보았다. 여포도 그 정도 계책쯤은 파악할 수 잇ㅇㅆ다. 아니 도리어 여포에 의해서 유비군과 원술군은 싸움 직전에 화해를 하게끔 기지를 발휘한다. 자신의 창을 100보 뒤에 꽂아두고 활을 당겨 맞추면 '하늘의 뜻'이니 전쟁을 멈추고 각 진영으로 군대를 되돌리는 것이 낫겠다고 다짐(?)을 받고 활을 쏘니 화살은 힘차게 날아가 여포의 창에 꽂혀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여포가 유비를 도와 원술군을 물러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으나, 장비가 여포의 말을 훔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겹쳐서 으르렁 데다가 유비는 여포에게 쫓겨 어쩔 수 없이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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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손책도 그렇고, 여포도 그렇고, 정말 이들은 세력을 파죽지세처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다. 지략이 높고 낮은 차이점을 빼놓고 비교한다면, 손책과 여포는 매우 닮았다. 저돌적인 공격을 즐겨 사용하며 전투를 벌일 때에도 가장 앞선 자리에 가장 엄청난 공을 세우며 자신의 군대를 사납게 조련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그런 둘이기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까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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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둘이 일찍 죽지 않고 유비나 조조만큼 오래오래 살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동오는 손권에 의해서 오래도록 지켜낸 강국이었다. 그런데 손권이 아닌 손책이었다면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조조보다 앞서서 장강 이남을 다 평정하고 오히려 조조의 뒤를 쳤을 것이다. 그래서 적벽대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장강이 아니라 황하가 주무대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한편 여포가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일단 관도대전의 주인공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여포가 오래 살려면 우선 '책사'가 절실했다. 만약 제갈량 같은 책사가 여포 곁에 있었다면 여포가 하북의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싸움터에 나서면 '천하무적'으로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과감한 저돌적 맹공이 주특기인 손책과 여포의 무력 앞에서 다른 제후들은 벌벌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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