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양이들 ㅣ 봄나무 문학선
어슐러 K. 르귄 지음, S.D. 쉰들러 그림, 김정아 옮김 / 봄나무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날고양이들> 어슐러 K. 르 귄 / 김정아 / 봄나무 (2009) [원서 : Catwings]

[My Review MMCCCLXX / 봄나무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아흔아홉 번째 리뷰는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의 판타지소설 <날고양이들>이다. 요즘 방정리 겸 책정리를 하고 있는데 예전에 리뷰를 썼던 책들도 다시 읽고 있다. 그 덕분에 '읽고 써야할 책들'조차 잠시 멈춤 신호등을 켜놓고 부랴부랴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다 오래전 2011년에 쓴 이 책의 내 리뷰도 다시 읽게 되었다. 벌써 15년이나 흘렀다니 내가 참 늙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르 귄의 판타지 <어스시의 마법사>도 우연한 계기로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줄도 모른채 집어 들었다가 반납일 하루를 남기고 뚝딱 읽어버렸던 책으로 기억한다. <반지의 제왕>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지의 제왕>보다 더 강한 흡인력으로 빨아들이는 몰입력을 발휘하는 책이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책도 다시 읽고 리뷰하련다. 그 시절에는 책을 읽기만 하던 시절이라 리뷰를 전혀 남겨놓지 않은게 아쉽기도 하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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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양이들> 관점 포인트 : 르 귄은 시리즈를 많이 낸 작가다. 그래서 이 책도 '날고양이' 시리즈로 열두 편을 썼다는데, 그 가운데 4편을 엄선해서 이 책 <날고양이>로 '국내최초 완역본'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연재시기는 1988년부터 1999년까지란다. 고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지만, 나는 이 시절을 살아본 경험이 있기에 굳이 '고전'으로 분류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분류하면 나조차 '고전'으로 불려야 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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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다름'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날개 달린 고양이들'이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을 때 '고양이들에게 왜 날개를 달아주었나?'라는 질문은 적절치 못하다. '날개'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고양이'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개가 있든 없든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란 말이다. 그리고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다름 아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왜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덧붙여야 할 내용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삶'을 사는 고양이는 단 한 마리도 없는데도, 왜 '조금 다른 모습'으로 '조금 다른 삶'을 사는 고양이의 평범한 삶을 침해하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날개'가 달렸다는 사실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날개를 달았다는 것은 '더 나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모자란 '장애'나 '질병' 따위가 아니라 무려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단 말이다. 이 뜻은 그냥 평범한 고양이들보다 훨씬 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도 평범한 고양이보다 더 천대받고 위험한 삶을 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왜 그래야 하나? 그게 '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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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주류 사회에 속하기에 '부족'하거나 '특출'난 뭔가가 있으면 사회구성원으로 원만한 삶을 누리기에 문제가 많을 수는 있다. 그런데 부족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하기 쉬워도 특출난 무엇 때문에 '소외'를 당해야 하는 것은 왜일까? 이 문제는 조직사회를 살아본 경험에 비추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한 집단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가 새로 합류하게 되면 그 뛰어난 인재 덕분에 조직이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까?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을까? 놀랍게도 조직이 발전하기는커녕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조차 '평범하게' 변화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무능력한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 능력자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조직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무능한 조직의 생명연장(?)'을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어른들만 그럴까? 놀랍게도 초등학교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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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온 못이 먼저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낭중지추'라고해서 뛰어난 재능은 주머니에 싸서 감추려고해도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 패서라도 튀지 못하게 만들고야 만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사회 현주소를 보면 '이민 문제'가 참으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거의 모든 사회문제를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트럼프 정부의 기조 덕분(?)에 미국에 정착한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 이민자들에게 온갖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강제추방'까지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비롯한 '백인'들도 초기에는 이민자였는데도 말이다. 흔히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원주민을 대학살하고서 '미국땅'을 차지한 백인들이 원주민이자 주인행세를 하는 꼴이 우스울지경이지만, 그 문제의 심각성은 너무나 끔찍할 정도다. 우리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기술자도 그런 푸대접을 받지 않았느냔 말이다. 저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려고 막대한 투자금과 기술력으로 '공장'을 세워주고, 그 공장의 기계를 관리할 수 있는 '고급 기술교육'까지 시전하려 간 우리 국민인데 말이다. 고마워하기는커녕 '범죄자 취급'을 하며 쇠사슬로 묶고 강제연행한 뒤에 인권보장조차 하지 않고 구타와 모욕 따위를 함부로 사용하며 굴욕감을 주었다. 이게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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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양이들>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와서, 평범한 아빠와 엄마 고양이에게서 '날개'를 달고 태어난 새끼고양이 네 마리가 있었다. 아니 아빠 고양이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니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갖춘 고양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 고양이에게는 '날개'가 없다. 그렇게 평범한 엄마고양이는 네 마리의 새끼를 애지중지 키웠지만, 스스로 날 수 있을만큼 자란 새끼들에게 이제 엄마 곁을 떠나서 너희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살도록 하라며 이야기한다. 엄마는 날개가 없으니 따라갈 수 없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웃에 살고 있는 숫고양이와 '재혼'해서 살테니 엄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네 마리 새끼고양이는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현실에 울먹이지만 더는 엄마를 힘들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날지 못하는 '날개 달린 새끼 네 마리'를 홀로 키우느라 얼마나 힘든 고생을 했겠느냔 말이다. 가장 힘겨운 것은 '다른 고양이들의 편견어린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 품을 훌쩍 떠나서 한적한 시골마을에 무사히 정착하는 이야기가 첫 번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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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는 엄마와 헤어져서 그리움에 사무친 새끼고양이들이 어느덧 '어른 고양이'가 되어 다시 엄마를 찾아 도시의 쓰레기통 곁으로 되돌아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 그 도시를 떠날 때에는 아직 나는 법이 서툴러서 힘들게 고생했는데, 그동안 훌쩍 성장한 날고양이들은 아주 멋진 비행으로 엄마곁으로 날아간 것이다. 물론 네 마리 전부는 아니었다. 두 마리만 모험을 떠난 것이었는데, 그렇게 다시 돌아와 만난 고양이는 엄마가 아니라 아주 귀여운 깜장 새끼고양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귀여운 고양이에게도 날개가 있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훨훨 날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새끼고양이는 혼자였다. 그리고 덩치도 작고 굶주림에 지쳐 곧 죽을 것 같았다. 곁에 있던 '시궁쥐'가 더 커보일 정도로 말이다. 두 날고양이는 깜장이를 정성껏 돌봐주어 함께 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시킨 뒤에 엄마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찾아낸 엄마는 맘씨 좋은 할머니와 함께 편안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깜장이는 엄마의 새끼였다. 다시 말해, 날고양이들의 '씨 다른 형제'였던 것이다. 엄마는 깜장이를 오빠와 언니에게 맡기며 잘 돌봐달라고 전한다. 여전히 도시에서는 날고양이들이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고양이 식구는 다섯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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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는 '날개 없는'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다. 모험심 많은 새끼고양이였지만 처음으로 집 나간 모험에 거대한 트럭에 쫓기고 무시무시한 강아지에게 쫓겨 나무꼭대기로 도망가는데 성공해 겨우 목숨은 살아났지만, '내려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 꼭대기에서 벌벌 떨다가 하늘을 훨훨 날아서 온 깜장이와 만나서 무사히 나무 밑으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너무 멀리 나온 뒤에 정신 없이 쫓기고 쫓긴 탓에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깜장이와 함께 날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이야기였다. '날개가 있든 없든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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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는 깜장이의 모험 이야기다. 깜장이도 어른 고양이가 되자 집 주변에서만 남 몰래 날아다니는 '평범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멀리 자유롭게 날아가는 꿈을 꾸게 된다. 물론 지금도 만족스런 삶이지만 말이다. 언니 오빠들이 있고, 사랑하는 '날개 없는' 고양이도 함께 있는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깜장이는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하늘을 훨훨 날아 모험을 떠난다. 더 자유롭게 말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시골이 아니라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의 삶'이 더 안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도시에 도착하니 깜장이는 너무 기뻤다. 그리고 도시의 고층 빌딩 사이에 '열린 창문'을 통해서 우아하게 착지한 다음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공격적이지도 위협을 가하지도 않고 깜장이를 예뻐하면서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먼 거리를 날아온 터라 고되고 지쳤는데 잘 돌봐주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깜장이의 마음에 쏙든 남자는 깜장이를 하늘에서 날아온 천사소녀라며 추켜세우고 가볍게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고 맛난 음식을 계속 챙겨주었다. 그리고 남자는 깜장이에게 어울리는 예쁜 목걸이를 채워주고 '열린 창문'을 꼭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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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의 삶은 TV에 출연한 연예인 아이돌 못지 않았다. 번쩍번쩍 사진을 찍어대고 고리 같은 것을 던지며 날아서 통과해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걸 성공하면 엄청난 박수소리에 깜짝 놀랐고, 그 뒤에는 맛난 음식을 제공받고 편안한 잠자리를 돌봐주는 남자의 배려가 뒤따랐다. 어느날 TV 화면에 '날개 달린 고양이'가 등장했다. 깜장이는 언니 오빠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곡예를 펼치는 날고양이라는 소개와 함께 말이다. 깜장이는 이런 삶이 싫증났다. 너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었지만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창문 단속'을 하면서 깜장이가 탈출하지 못하게 꼼꼼하게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몰랐다. 깜장이가 '날개'만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깜장이는 남자가 손님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정신 없을 때 감시가 소홀한 '현관문'을 통해서 다른 남자가 문을 나설 때 함께 나가 멀리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엄마고양이도 잘 살고 계셨다. 그리고 깜장이는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갔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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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다시 '다름'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자신과 '다른 존재'와는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는가? 솔직히 불편하기는 할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면 서로 배려하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배척하고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 나와 달라서 불편한 것만으로도 힘든데, '능력'도 출중해서 늘 비교 당하고 무시 당하는 일이 생기면,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상대적 박탈감'만 생겨도 함께 어울려 살기에는 너무 불편한 '다름'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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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국 사회를 드려다보자. 미국에 살고 있는 '백인'들이 왜 뿔이 났을까? 그들은 왜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를 배척하고 공격하며, 심지어 범죄자로 낙인 찍어 '강제추방'까지 서슴지 않는 것일까? 가장 단순한 이유로는 '그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저들이 '내 밥그릇'까지 빼앗아 간다고 철떡 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이민자를 강제추방하는 일은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미국 주류 사회에 살고 있는 '백인들'은 그런 이민자들을 강제추방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 다수다. 오히려 '백인'인데도 비주류 사회에 살고 있는 가난한 서민들이 강제추방에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이민자들이 오지 않았어도 저들은 비주류로 밀려나서 먹고 살기 힘든 삶을 살 운명(?)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능력이 없어서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으니 '애먼 화살'을 돌려서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들에게 쏴버린 것이다. 이게 본질적으로 '다름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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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고양이들도 '날개 달린 고양이들'을 시샘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일 때 '날개를 꺾어버리자'고 선동하는 고양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니 엄마고양이가 새끼를 품에 안지 못하고 서둘러 떠나보낼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평범한 고양이들이 날개 달린 고양이들 때문에 '손해'보는 것이 뭐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엄마고양이는 새끼를 떠나보내는 결정을 서둘러 내린다.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날고양이들에게 닥칠 어려움은 '고양이들' 뿐만 아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도 선보였지만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자유를 빼앗기고 '배부른 돼지'처럼 날개를 꺾고 길들임을 당할 우려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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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름'은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없게 하고 심지어 '자유'조차 빼앗아버리는 무시무시한 형벌처럼 다가온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다름'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는 '존재가치'를 손상시키는 무관심이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눈앞에 '다름'이 존재하는데 애써 안본척, 못본척, 없는척 하면 그건 '무시'라는 더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그러니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그냥 '인정'하는 것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가져올 '긍정적인 면'을 찾아나서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일 것이다. 단순하고 쉬운 해결법 같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긍정'보다 '부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른 존재'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 많이, 더 빨리 부각시키며 좋지 않은 결말을 가져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부정적인 면을 찾았다하더라도 긍정적인 면을 더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해결법에도 문제는 있다. 바로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을 열심히 찾으려 노력하다 지쳐버리면 '반감'이 더 크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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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진정한 해결법은 무엇일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문제'로 축소시켜 애써 갈등을 축소하고 봉합하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너무 철저히 '다름의 문제'를 인지하고 발본색원하는 마음가짐으로 사사건건 시시콜콜 문제를 삼으면 도리어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르다고? 그게 무슨 큰 문제가 있나?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어쩌라고? 너랑 나랑 겉모습은 달라도 모두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잖아. 설마 너랑 다르면 난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지 말고, 넌 저걸 잘하고 난 이걸 잘하니 서로 힘을 합해서 잘 해보자" 이런 정도의 마인드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정 불편하면 마주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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