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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1 - 북명신공
김용 지음, 이정원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천룡팔부 1 : 북명신공> 김용 / 이정원 / 김영사 (2020)
[My Review MMCCCXLVI / 김영사 3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일흔다섯 번째 리뷰는 김용 유니버스의 후기작이자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작품인 <천룡팔부 1>이다. '김용 유니버스'라니 정말 어색한 미사여구다. 1960년대 그의 작품이 세상을 주름잡고 있었고, 1980년대 들어서 대한민국에도 그의 책이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그의 작품들을 '유니버스'라는 최근의 유행어로 결합시켜버리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에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김용의 작품들은 죄다 '해적판'이었다. 나도 '중원문화사'와 '고려원'에서 출간된 그의 작품들을 사모아 읽고 또 읽었고, '박영창'이라는 불세출의 뒤침이 덕분에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그렇지만 '정식 출간'이 되자 해적판이 왜 해적판인줄 알 수 있었다. 조잡하고 서툰 '뒤침(번역)'으로 난삽하기 이를데 없었고, 원작에 없는 내용을 억지로 '의역'을 해서 넣거나, 원래 있어야 할 내용을 빼버리는 등의 '만행(?)'이 벌어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정식 '개정판'을 새로 읽으시길 권한다. '원작의 맛'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끼게 해줄 것을 보장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천룡팔부 1> 관점 포인트 : 김용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사조3부작>과 영화 <동방불패> 신드롬을 일으켰던 <소오강호>, 그리고 <녹정기>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을 꼽아야 한다면 단연 <천룡팔부>다. 심지어 <천룡팔부>는 서양권에서 '대학교재'로 쓰였으며 '중국문화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뽑힐 정도였고, 김용을 '중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천룡팔부>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방대한 중국 지식을 자랑하고 인문학적 소재인 '유불선 사상'이 적절히 녹아 있어, 동양사상의 주류인 '인간세상의 희로애락'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그가 얼마나 <천룡팔부>를 집필하면서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천룡팔부>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단예, 허죽, 교봉이다. 이 세 명을 둘러싼 조연급 등장인물이 그야말로 방대하게 출연하는데도, 각 인물들 간의 특색이 뚜렷해서 독자들은 각각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엄청난 대서사를 맛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다른 작품속 등장인물'과 묘하게 겹쳐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똑같지는 않지만 김용의 후기작에 속하는 까닭에 등장인물이 묘하게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단예는 <신조협려>의 양과와 <녹정기>의 위소보를 섞어놓은 듯 싶다. 천부적인 자질로 무예를 급속도로 배우고 그의 주변에 '미녀'가 넘쳐나는 점에서 양과가 떠오르다가, 입을 열기만 하면 청산유수로 쏟아지는 말말말로 위기를 자초하다가, 또 다시 말말말로 위기를 극복해내는 모습에서는 위소보가 연상되곤 하기 때문이다.
한편, 허죽은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사조영웅전>의 곽정이 떠오른다. 어리숙하지만 우직한 면이 있어서 무공 고수가 되는 길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점이 비슷하고, 능력이 출중한 미녀와 짝을 이루고 백년해로를 하는 모습에서도 겹쳐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교봉은 <의천도룡기>의 장무기를 연상하게 한다. 부모를 죽인 원수를 갚아나가려 하지만 결국 원수를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점이 닮았고, 사랑하는 여인과 비극적인 결말을 맞으면서 긴 여운을 느끼게 해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천룡팔부>에서 완성된 '다른 민족과의 화합'을 꾀하는 주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에 절묘하게 들어맞으면서 여러 민족 구성원을 아우르는 중국의 대통합을 이루려는 결정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는 <녹정기>에서도 청나라의 만주족과 한족이 서로의 갈등을 잠재우고 화합을 꾀하는 듯한 결말을 보여준 것과 일맥상통한 모습이다. 반면에 초기작이었던 <사조3부작>에서는 여러 민족간의 심각한 갈등양산만 더욱 부추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사조영웅전>에서는 한족이 몽골족과 힘을 합쳐 금나라를 협공하려 했고, <신조협려>에서는 금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몽골족이 한족까지 멸망시키려 했으며, <의천도룡기>에서는 한족이 원나라를 축출하고 명나라를 세우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중국사가 흩어졌다가 뭉치고, 뭉쳤다가 다시 흩어지는 역사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오늘날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이란 대원칙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김용 작품의 대부분은 '한족 중심'으로 풀어가며 소수민족들에게 소외감을 심어주는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사조3부작>에서는 몽골족을 '몽고(어리석고 고리타분하다는 뜻)'라고 부르면서 낮잡아 부르고, <소오강호>에서는 영호충을 돕는 '묘족'을 하찮게 묘사하는 등 인권문제성 묘사가 정말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정작 중국 내부에서는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서구사회에서라면 '인종차별'이라고 비난을 불러 일으킬 정도의 심각한 문제인데도 말이다. 한국의 독자들도 김용의 작품을 읽으며 이런 '문제의식'을 떠올리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암튼 중국은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탄압과 억압정책, 심지어 '말살정책'까지 펼치며 '한족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문제가 고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가는 글 : 그런데도 김용의 소설은 재밌기만 하다. 이렇게 재밌는데 골치 아프게 '문제의식'까지 꺼내들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무협소설'인데 말이다. 골치 아픈 문제는 꺼내지 말고 그냥 '재미'만 추구하며 즐기면 안 될까? 그렇게 읽고 싶은 분들을 골치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읽는 것도 독자가 누릴 권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 하나쯤은 '비판적'으로 읽고 싶다. 이는 김용 스스로도 '한족 중심'으로 써온 것에서 벗어나 '모든 민족이 동일하다'는 역사관으로 바뀐 것은 자신이 조금이나마 '진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용 작가의 사후에 독자들도 조금이나마 진일보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야 하는 것 아닐까. 뭐, 그렇다고 심각하게 따지겠다는 건 아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1권의 소제목은 '북명신공'이다. 김용 소설에서 '북명신공'은 다른 사람의 내공을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무공을 말한다. <소오강호>에서 등장한 '흡성대법'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천룡팔부>에서 소요파의 무공으로 등장하는 '화공대법'에 더 가깝다는 의견이 많다. 흡성대법은 상대의 내공을 빨아들이기만 하지만, 화공대법은 상대의 내공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명신공'에서 북명이 '북쪽의 바다(북해)'를 뜻하고 여러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모이는 것처럼 상대의 내공을 강에 비유하고 자신의 진기는 텅 비워서(바다) 상대의 내공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 것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바다도 해수면이 상승해서 넘치는 경우도 있지만, '해수면 상승'과 강물의 유량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저 '물의 순환'에 해당할 뿐이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은 달과 태양의 '조석현상(밀물과 썰물)'과 크게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암튼, <천룡팔부>의 첫 번째 주인공인 단예가 바로 '북명신공'의 후예로 등장한다. 무량산에서 우연한 계기로 옥벽 밑에 있는 동굴속으로 들어가 '소요파의 무공'을 전수받게 되는데, 소요파 무공의 핵심이 바로 '북명신공'이었던 것이다. 소요파에 대한 비밀은 뒷이야기에서 밝혀지니 그때 다시 설명하겠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단예를 중심으로 수많은 미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종영과 목완청, 그리고 동굴 속에서 마주친 옥미녀다. 1권에서만 벌써 세 명의 미녀가 등장하고, 이 모든 미녀가 단예와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단예가 이렇게 미녀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단예의 아버지 '단정순'의 기행(?) 때문이다. 단정순은 '대리국의 왕'인데, 대리국은 송나라 때 파촉땅의 남쪽에 위치한 '운남'에 있던 독립왕국이다. 소설 속에서는 '운남 대리국'으로 자주 언급이 된다. 대리국과 가까운 곳이 '토번국(티베트)'이다. 암튼, 지리적 상식은 여기까지 하고, 단정순이 누군고 하니, <사조영웅문>과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남제 단지흥(훗날 일등대사)'이 단예의 손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단정순은 바로 대리국의 왕이자, 동시에 가전무공인 '일양지의 고수'다.
단정순은 젊은 시절 '일양지' 하나로 강호를 떠들썩하게 했고, 심지어 모든 무공을 연구했다는 '소요파'조차 일양지의 비급을 알지 못해 '물음표'로 남겨둘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할 정도였다. 그런데 무공의 고수가 강호를 유랑하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단정순은 잘 생겼다는 덤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를 일으켰다. 잘 생긴 외모에, 천하제일의 무공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미녀'란 미녀는 죄다 단정순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단정순도 엄청난 무공 실력을 '여자 꼬시는데' 아주 유용하게 써먹기 일쑤였다. 전문용어로 '바람둥이'였단 말이다. 그렇게 여러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훌쩍 떠나버리기를 반복하니, 곳곳에 사랑에 상처를 받은 여자들의 '원한'이 쌓이고 또 쌓이게 된 것이다. 그 업보를 아들인 단예가 받게 된다. 단정순의 아들, 단예가 처음으로 강호로 나서자 가는 곳마다 미녀와 어울리게(?) 되는데, 그 미녀들이 다름 아닌 '아버지가 숨겨둔 딸'이었던 것이다. 사실 1권에서는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지만, 뉘앙스(복선과 암시)가 풀풀 풍기고 있어서 눈치를 채지 않고 모를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단예는 그것도 모르고 미녀와 희롱하며 놀면서 심지어 혼인까지 약속하고 만다. 아버지의 딸과 말이다.
이런 '원한'과 '업보'가 <천룡팔부>의 핵심 소재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김용의 작품 중에는 '불교적인 내용'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사실 김용의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은 사연과 연관이 깊다. 그렇게 아들을 잃고 김용은 상심이 컸는데, 그때 불교에 입문했다고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천룡팔부>는 불교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고 있으며, 불교사상을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적 교리를 담아냈기에 '종교철학적인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천룡팔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꽤나 '철학적인 서사'가 깊게 베여 있다. 자, 그럼 아버지가 쌓은 업보로 인해 아들인 단예가 겪어야 할 고난은 무엇이고, 단예는 그 고난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주목해보자.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