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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2 - 노무현 시대의 명암 ㅣ 한국 현대사 산책 20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8월
평점 :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2 : 노무현 시대의 명암>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11)
[My Review MMCCCIV / 인물과사상사 4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서른세 번째 리뷰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통령 노무현의 빛과 그림자가 수놓인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2>다.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었다. 당선되기 전부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사모')'이 엄청난 반향을 몰고 다니며 16대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기록적인 압승으로 '열린우리당 대선후보'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어찌나 압도적인 승리였던지 경선을 치르던 경쟁후보가 차례차례 '경선레이스 포기'를 선언하며 경선 중반도 넘지 않았는데 이미 경선 승리선언을 해야할 정도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노무현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그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임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파격적인 정책운영에 들어갔다. 현직검사들과 토론을 열면서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팽팽히 맞대결하는 모습도 신선했고, 대통령 임기초반에 '탄핵 위기'를 맞는 모습도 참 신기하게 지켜봤다. 하지만 난 노무현의 대단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직 내가 정치적으로 '미성숙했던' 탓 때문이었다. 그러다 노무현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서거'한 뒤에야 노무현이 대단한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 했던 일들이, 다음 대통령인 이명박을 지켜보면서 실로 엄청난 업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너무나도 '비교'되는 최악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임기 초반부터 '다스 사기'를 친 것처럼 수억 대의 비자금을 은닉하며 나라꼴을 하루아침에 엉망으로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정상'이었는지를 이명박이 대한민국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노무현의 말을 되짚어보면서 대한민국 정치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2> 관점 포인트 : 김영삼 정부이후 대한민국 정치사는 '구태와의 싸움'을 시작했고, 김대중 정부 때에도 '군사독재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26년인 지금까지도 그들이 남겨놓은 유산(?)이 진절머리 날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리와 부정부패의 뿌리부터 잘라내고 뽑아내야했던 것이다. 그걸 가장 최초로 시도한 대통령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무슨 '이념'이나 '사상'으로 시도하지는 않았다. 오직 '실리'만을 원칙으로 삼았다. 지금에서야 이것을 '노무현 정신'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상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 행하는 모든 것이 '상식'에 준해야지 '무슨' 이념이지 사상이니 따져야 할 것이 있겠느냔 말이다. 오직 대한민국을 위해서 뜻을 세우고 행하겠다는 '원칙', 그 하나만 지키면 되었다.
물론 이 '상식'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너무 당연해서 '원칙'이라고 하기도 뭐했고, 그래서 뭔가 그럴 듯한 '제도개선'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 당시 야당과 국민들이 한 일이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참여'라는 말로 대신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은 '노무현'이 아니라 '국민 여러분' 모두이니 국민 여러분이 직접 참여해서 정책을 만들어가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인가? 라면서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정치는 대통령을 '리더'로 삼고, 리더의 명령 하달에 국민들은 죽을둥 살둥 하면서 "하면 된다"만 외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이 경험한 '경제성장의 비결'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사람이 국민을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보고 '정책만들기'를 하라고 숙제를 내준 꼴이잖은가 말이다. 대단히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하나둘 '청와대 게시판'에 "이런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세요"라면서 호응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게 '참여정부의 탄생'을 알린 것이었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정말 새로운 대한민국이 될 것 같은 희망도 엿볼 수 있었다. 헌데 노무현 정부의 앞날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너무나도 낯선 정책에 숱한 시행착오도 겪었고, '이게 나라냐'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트집과 훼방, 발목잡기를 하는 야당의 공세에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여기에 정부를 지원해야할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보만 보여줬다. 아니 제발 '똥볼'만 차지 않았으면 싶을 정도로 못난 짓만 골라서 했다. 그 최고 결정타는 야당의 '탄핵공세'였다. 노무현 같은 '고졸 출신' 대통령은 인정할 수 없으니 그만 쇼하고 내려가라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헌재의 판단은 탄핵사유 없음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복직(?)되었다. 이대로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나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너무나도 상식적이지 않은가. 대통령이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정치적 보복을 하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보겠느냔 말이다. 바로 국민들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보복이 아닌 '협치'를 요구했다. 야당이 원한다면 '대연정'이라도 하겠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대인배의 성품까지 보여줬다. 그런데도 당시 야당은 그 손마저 거부했다. 끝까지 발목을 잡았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 '논두렁 시계'를 트집 잡아 가까운 가족을 협박하기에 이르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거'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시고나니 '인간 노무현의 진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인을 100% 믿지 않는 나는, 노무현이 다른 대통령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느꼈지만, 노무현의 진심까지 믿지는 않았다. 특히 '한미FTA 추진'을 두고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을 송두리채 팽개치고 거대한 미국시장에 대한민국을 헐값에 넘겨버리는 멍청한 짓을 한다며 결사반대를 외치던 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노무현의 진심'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 '비교대상'이 있어야 이해가 쉬운 법이다. 노무현은 미국 시장이 아무리 커도 대한민국 시장을 함부로 집어삼키지 못한다. 결국 우리가 더 큰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면 거대한 미국 시장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더 많이 팔릴 것이기 때문이다. 왜 미국 시장에 집어삼켜질까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하느냐. 자신감을 가져라. 자긍심을 가져라. 대한민국은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왜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명박이 미대통령 '골프카'를 대신 몰며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를 미 쇠고기'를 대한민국 건강은 생각지도 않고 수입하겠다고 밀어붙이는 오만함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명박은 촛불시위를 하는 시위대 앞에서 "여러분들 소고기 좋아하시죠. 값싼 미국 소고기 많이 드셔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라고 말하는 주둥이를 때려주고 싶었다. 값싸고 맛 좋은 소고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니 대한민국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해서 '통관절차'를 까다롭게 하든지, '검역'을 철저히 하겠다는 얘기는 하지도 않고, 그저 싸고 좋으니 많이 사드세요라는 말이나 하는 추접스런 대통령과 어디 비교가 되겠느냔 말이다.
나가는 글 : 2003년 대선이 있기 전, 2002년 월드컵은 정말 대단했다. 월드컵 4강 신화가 쓰여졌기 때문이다. 비록 '개최국 어드벤티지'를 톡톡히 본 대회였지만, 그럼에도 예선전 2승 1무로 16강 본선진출, 안정환의 골든골로 이탈리아전 역전승하고 8강 진출, 스페인과 혈투 끝에 4강 진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석패하고 3,4위전 진출, 터키에게 어이없게 패배하며 최종 4위 달성. 월드컵 사상 아시아팀 최고 성적을 거둔 영광스런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붉은 악마의 응원전도 전세계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이후에 벌어진 월드컵대회에서는 한국의 응원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 월드컵 직관을 포기하고 '한국여행'을 예약할 정도였다. 이후 해마다 증가하더니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값비싼 본선경기티켓을 못 구하거나 포기하고 '한국'에 와서 거리응원을 계획한 이들이 엄청 몰렸다고도 했다. 그것도 한국전에서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홍명보호는 졸전 끝에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최선을 다하고 탈락했으면 뭐라 탓할 것도 없을텐데, 감독 전술은 뭔지 이해할 수도 없고, 실력 대신 인맥으로 선수를 발탁해서 출전했다는 의혹만 더욱 불거진 월드컵이었다. 더구나 탈락 이유를 밝히는 자리에서 '감독은 아무 잘못이 없고, 진 이유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선수들이 열심히 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하는 뻔뻔한 인성에 팬들의 분노를 더욱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암튼 이번 월드컵 이후 '홍명보만 출입금지'는 전국적으로 밈이 되어 조리돌림을 당할 것 같다. 그래도 싸고 말이다.
하지만 2002년에는 달랐다. 전 경기 너무 멋진 경기였고, 멋진 골로 팬들을 설레게 했으며, 아쉽게 3,4위 전에서 더이상 뛸 체력이 남지 않아 터키에게 기선제압을 당하고 패배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마지막 경기에 체력이 바닥이 나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붉은 악마들도 멋졌고 말이다. 암튼 그 엄청난 열기는 대선까지 쭉 이어진 셈이다. 한때는 정몽준을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구호까지 나와서 정몽준도 대선 출마를 결심할 정도였지만, 다행히 정신 차리고 출마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대선 레이스의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었다. 만에 하나 2002년 월드컵 경기가 이번 북중미 월드컵처럼 졸전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도 '월드컵 신드롬' 덕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이 야당 뿐만 아니라 행정부처까지도 노무현을 깔보는(?) 식으로 일관하자,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서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발언이 나왔고, 이를 언론이 얼른 주워서 대서특필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때는 수많은 군중이 노무현에게 "그럼 당장 때려쳐라"는 구호를 내지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슬기롭게 '참여정부'를 이끌며 국민들의 신임을 하나하나 되찾아오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열린우리당의 인기도 급상승하게 된다. 향후 노무현 대통령은 꽃길을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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