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2 -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1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6월
평점 :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2 : 3당 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6)
[My Review MMCCCII / 인물과사상사 4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서른한 번째 리뷰는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이 안쓰러운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2>다. 나는 93학번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젊은 20대 시절에 다 겪었다. 물론 잘알았던 내용도 있지만 잘모르고 지나가버린 사건사고들도 엄청 많았다. 그럼 이 시대를 한마디로 뭐라 정리하면 좋을까? '세계화'라고 부르면 적당할 것 같다. 대한민국이란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 저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80년대 '3저 호황'의 탄력을 받아 90년대 초반까지도 대한민국 경제는 경제적인 풍요를 만끽했다. 부모세대가 살던 빈곤의 60년대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나는 '가난'을 면치 못했고, '중산층'이라 자부하던 부모님이셨지만, 그 흔한 '용돈'도 받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늘 얻어 먹고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그런 풍요를 누려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 주위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졌다. 거리에는 '오렌지족'과 '야타족'이 즐비했고, '날라리'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TV속 연예인을 흉내내는 젊은이들이 많았고, 그들은 젊음과 자유를 노래하며 몸을 흔들고 다녔다. 확실히 달라진 풍경이었다. 하지만 정치는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했다. 6공화국에 이어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세상은 그닥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으로 인해 과거의 군부독재시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소통령'이라 불리던 김현철이 존재했기에 조금은 달라진 양상이라고 불러야 했을까? 암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2> 관점 포인트 : 90년대는 누가 뭐라해도 '민주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과거처럼 '군부독재'가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유'를 만끽하며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다 해보려 했다. 더구나 미국도 1999년까지는 경제성장이 최고조였기 때문에 풍요로운 경제속에서 세계적으로 자유사상이 거리낌없이 퍼져나갔다. 거기다 199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주의는 몰락하게 되었고, 바야흐로 '냉전 시대'가 종결된 것도 한 몫 했다. 더구나 새천년을 맞이하는 '세기말 현상'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아름답다 못해 퇴폐적인 풍조가 널리 퍼졌고, 하나의 사상에 얽매이기보다는 그저 흥청망청 놀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한민국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런 자유로운 풍요를 완벽히 누리지는 못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곤 했다. 94년엔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 붕괴', 95년엔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위기감이 맴도는 굵직한 사건사고가 해마다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양새였지만,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혼선'을 주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김영삼 정부는 대북관계를 개선하려 김일성과 여러 차례 회담을 시도했다. 이 회담이 삐거덕거리더니 '서울 불바다'를 거론하며 북쪽의 협박성 발언이 마구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까닭인 즉슨, 북한이 먹고 살기 팍팍해지자 '핵무기 개발'을 하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이를 막으려 여러 차례 회담을 시도했지만, 북쪽의 대답은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원조'를 확답받으려 했었는데, 김영삼 정부는 이 사안에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자 북쪽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면서 전쟁 위협까지 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김영삼 정부는 국민들에게 알아서 생필품을 조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수많은 국민들이 시장에 나온 물품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일부는 너무 많이 쟁여놓는 '사재기'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언론은 '사재기'는 망국의 징조라며 국민들이 몰지각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며 훈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무슨 조치를 내렸을까? 그저 관망만 하면서 아무런 대책도, 가이드라인도 발표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이후의 사건들도 대동소이했다. 수습하는 것은 언제나 아픔을 겪은 이웃을 도우려는 온국민의 따뜻한 마음 뿐이었다. 그렇게 얼추 수습이 되고 나서야 정부가 나서서 뒷정리를 하는 모양새가 연이어 나왔다. 하지만 그 정도만이라도 하는 정부가 대견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 군부독재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이건희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세계화'에 발맞춰 우리 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반도체 공장을 세우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던 삼성 이건희는 명언을 하나 남겼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이다. 그간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인 과거의 군부독재였지만, 90년대 들어 '민주정부'가 앞장서서 뭔가를 하지도 못하고 옛방식만 답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세계화'에 발맞춰 과감히 투자하고 성장을 계획했지만, 이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정치권이었고, 부실한 행정력이었다. 비단 기업문화에만 후진적인 시스템을 적용했을까? 사회전반적으로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김영삼이 대단한 '정치인'에 '행정가'였을까? 민주화 투쟁의 산증인이긴 했지만, 그밖에 다른 역량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대통령 신분이기에 국민 모두가 '김영삼의 심기'를 건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다. 더구나 김영삼은 '고지식'한데다가 '고집'도 쎘다. 이런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바로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다. 자칫 '국정농단'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김현철'이 권력을 명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대신에 김영삼 대통령 앞에서 '할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소통령'이라 부르며, 그의 영향력이 말도 하지 못하게 드높였다.
나가는 글 : 이런 와중에 대학가는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이 세를 자랑했다. 그렇게 열망하던 '민주화'를 이뤘는데 당시 대학생들이 무엇을 바랐기에 이토록 극렬한 시위를 이어갔던 것일까? 바로 '민족통일'이었다. 기성세대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바란다면서도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에 학생들이 나서서 민족통일을 말하고, 우리 민족의 장래에 관한 청사진을 말하기에 이른 것이다. 애초에 정부가 나서서해야 할 일임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94년에 군입대를 했기 때문에 '대학생 신분'으로 한총련에 가담해 시위를 경험하지는 못했다. 96년에 제대를 한 뒤에 복학을 하니, 대학가에서 시위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한총련'이 거의 와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당시 군내부에서는 '주체사상파(주사파) 색출'을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대남공작의 성격으로 학생시위를 이끌거나 참여했던 이들을 뿌리 뽑겠다며 내놓은 조치였는데, 그래서 군시절에 원없이 '반공교육'을 받곤 했다. 국민학교시절에 받던 그 방공교육을 군대에서 또 배웠던 것이다. 이렇게 한총련이 와해가 된데에는 96년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과 '한총련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빌미가 되어 구속 기소된 400여 명의 학생 가운데 51명이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 해체되었다. 북한이 끊임없이 도발을 벌이고 있고, 학생시위대가 문란한 짓을 벌이고 있으니 '학생시위의 순수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가 안위를 도외시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학생시위를 더는 묵과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다. 이에 한총련은 폭력적인 시위를 거의 하지 못했고, 간간히 집회가 이어졌지만 집회를 하더라도 마땅히 할 것이 없어져버린 까닭에 학생시위는 점차 수그러 들었던 것이다.
한편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때마침 95년에 수출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서자 김영삼 정부는 그대로 공약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렇게 1996년 대한민국은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허나 80년대부터 OECD 가입을 추진했었지만 "잃을 것이 더 많다"는 의견이 더 많아서 미루고 또 미뤘던 것인데, 김영삼 정부는 내친김에 밀어붙였던 것이다. 이듬해 97년에 벌어질 일은 상상밖이었을까?
#리뷰 #에세이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세계화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