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9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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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9>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LI / 문학동네 4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든 번째 리뷰는 어느덧 종반부로 치닫고 우리에게 익숙한 주인공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는 <고우영 삼국지 9>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의도치 않게 1부와 2부로 구분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제갈량의 등장과 관우의 퇴장'으로 바로 '주인공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고우영 삼국지>는 총 10권 가운데 이 경계가 꽤나 후반부에 진행되어 '주인공이 교체됨'과 동시에 이야기가 빠르게 마무리로 치닫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삼국지가 그런 경향을 띠곤 하지만, 여타의 삼국지가 이 '교체 시점'이 대부분 5~6권에서 시도되어 2부에 새로 등장한 주인공들도 꽤 활약할 '시공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지만, <고우영 삼국지>는 1부에 꽤 치중하는 플롯을 구성하였다. 그럼 이게 장점일까, 단점일까? 책속에 풍덩 빠져서 확인해보자.

<고우영 삼국지 9> 관점 포인트 : 삼국지에서 '관우의 죽음'은 남다르다. 일찍이 동탁, 여포, 원소, 손견, 손책, 주유 등 걸출한 인물들의 죽음도 다루고 있지만 '관우의 죽음'은 꽤나 특별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한낱 '장수'에 불과했지만 사후에 '왕의 죽음'에 걸맞는 파격적 대우를 받았으며, 심지어 관우의 죽음과 연관된 이들까지 연달아 비명횡사하면서 더욱 특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사'에서도 관우의 죽음은 특별하게 다뤘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저 '평범한 장수'의 죽음과 그닥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촉 진영에서는 크게 다룰 수밖에 없었고, 위 진영에서는 조조가 흠모했던 장수였던만큼 '딱 그만큼'만 다뤘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부풀려서 '관우의 죽음'을 다뤘다. 왜 그랬을까? 그건 나관중이 조조가 아닌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도원결의'에서부터 시작했고, 결국 '관우의 죽음'으로 확언을 받은 셈이다.

애초에 '정사 삼국지'에서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의 후손인 '사마염'이다. 사마염이 세운 '진(晉)나라'가 정통성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 '위(魏)나라'를 추켜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러기 위해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한(漢)나라가 망해갈 때부터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다는 정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허나 시대가 흘러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왕조들'이 이어지면서 중국의 역사는 누더기가 되었고, 남북조를 통일했던 '송(宋)나라'조차 거란(遼), 여진(金), 몽골(元)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주원장에 의해 다시금 한족의 나라인 명(明)나라가 건국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한족의 정체성을 다시 끌어모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애써 모으려는 것이 '조조의 실리'였다면, 이는 한족만의 정체성을 내세우기 곤란했을 것이다. 왜냐면 '실리'는 이민족들도 곧잘 내세우던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명백한 명분을 쌓고자 더 먼 '한고조 유방'때까지 거슬러 오를 수밖에 없었고, 유방의 후손임을 내세운 '전한 경제의 아들 중산정왕의 먼 후손'인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삼국지'를 펼쳐내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유비는 조조가 인정한 영웅이었다고 전한다. 허나 이조차 근거는 미약하다. 비록 유비가 '촉한의 황제'까지 오른 인물이긴 하지만 짚신을 신고 돗자리를 만들어 팔던 떠돌이 무사 나부랭이를 상대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날개를 단듯 서쪽으로 날아가 '천하'를 나눠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조조의 처지에서는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가치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할 때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때를 놓치지 저렇게 커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조측은 이런 방심한 것을 솔직히(?) 서술하기보다는 차라리 유비를 영웅처럼 대접하고, 그런 영웅이었기에 '위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겨룰 만한 상대였다고 '정신승리(?)'를 거뒀을지도 모른다.

암튼, 이렇게 유비는 거물로 성장한 불세출의 영웅임이 틀림없었고, 그 유비와 '의형제'를 맺은 두 장수가 있었으니, 바로 관우와 장비라는 서사를 나관중은 꾸며서 대활약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이것이 나관중의 <삼국지>에 내세운 새로운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유관장 삼형제가 대활약을 하던 시기를 '1부'로 삼고 종횡무진 누비게 만들었다. 그런데 책 제목처럼 '위촉오 삼국'이 형성되고 천하를 두고 한 판 승부가 제대로 펼쳐질 찰나에 느닷없이 '유관장 삼형제'가 차례대로 죽고 만다. 졸지에 주인공을 잃은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더구나 천하를 통일한 위나라가 등장하기까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이는 '주인공' 없이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말과 다름 없다. 그래서 2부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주인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갈량의 등장'이다. 그리고 제갈량이 1부의 주인공이 남긴 한 황실의 정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유지'를 받들어 무려 5차례의 출사표를 들이대며 끝없는 출정이 이어진다.

나가는 글 : 이렇게 '제갈량의 등장과 관우의 죽음'은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대전환점을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호불호가 갈린다. 솔직히 유관장 삼형제가 다 빠지고 난 뒤에는 몰입도가 확 빠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비'라는 걸출한 영웅의 뒤를 이은 후세가 '유선'이라는 바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설화가 전해진다. 애초부터 바보는 아니었는데 조자룡이 구사일생으로 구해낸 아두(유선의 아명)를 유비가 내동댕이 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멍청해졌다는 논리다. 그런데 갓난아기의 지능지수를 측정할 객관적 자료는 없기에 신빙성은 떨어진다. 오히려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해서 유선을 어릴적부터 '응석받이'로 키운 탓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정도다. 암튼 유선은 '영웅의 그릇'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유선에게서 아무런 동정심을 발휘할 수 없었고, 이는 손견의 아들인 손책과 손권으로 이어지는 것과도, 조조의 아들인 조비로 권력의 향배가 이어지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함이었다.

그래서 유비는 '이릉대전'에서 패배한 뒤에 제갈량에게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도록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허나 이는 불가했다. 황제의 자리는 '절대적인 충성'을 받아야 할 존엄한 자리다. 그런데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황제의 혈통'이거나 절대적인 힘을 가진 '패왕'이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제갈량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막 촉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공고히 할 유능한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터라 '제갈량' 스스로 황제에 자리에 오르고 나면 실제로 총괄하고 활약할 '적임자'가 없었던 탓이다. 실제로 제갈량의 후사를 위임할 정도로 유능했던 젊은이는 고작해야 '마속'과 '강유' 뿐이었고, 그런 마속조차 가정공방전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함으로써 대패를 한 책임을 물어 죽일 정도의 얕은 그릇이었고, 강유는 너무 늦게 만났다. 그러니 제갈량이 구중궁궐에 틀어밖혀 호사를 누린들 장밋빛 미래가 보였을까? 차라리 '2인자의 길'을 걷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제갈량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관우의 죽음'은 촉나라의 기둥이 뽑혀나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관우의 뒤를 이어 장비와 유비까지 차례대로 죽어 나갔고, 그 빈 자리를 채울 만한 새로운 인재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갈량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제갈량을 '출사표'까니 내밀며 자신의 생명을 독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죽음에 이를 데까지 몰아붙인 강행군으로 끝내 제갈량은 결코 많지 않은 나이(181~234)에 죽고 만다. 다음 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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