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이희재 삼국지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XIV / 휴머니스트 5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세 번째 리뷰는 탄탄한 스토리라인이 인상 깊은 <이희재 삼국지 1>이다. 올해는 '만화 삼국지'를 섭렵할 모양이다. 20여 년만에 <고우영 삼국지>를 읽다보니 그간 '만화'로 쓰인 <삼국지>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손에 잡히는대로 리뷰를 할 예정이다. 만화가 이희재가 그린 <삼국지>는 고우영 화백이 지은 <삼국지>와 '또 다른 맛'이 난다. 고우영 화백이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라면 이희재 만화가는 '정통'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서 만화를 읽지만 '한 편의 대하소설'을 읽은 듯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만큼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깊고 진한 여운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희재 삼국지>가 '저본'으로 삼은 텍스트가 다름 아닌 <이문열 삼국지>라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이문열 삼국지>의 내용을 오롯이 담아 놓은 듯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암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삼국지>가 다름 아닌 '이문열의 것'이었으니 어쩌면 이는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럼 그 선택이 탁월했는지 책속으로 풍덩해보자.

<이희재 삼국지 1> 관점 포인트 : 스토리라인은 정통 <삼국지>의 내용 그대로다. 애초에 <이문열 삼국지>가 정통을 저본으로 삼고 이야기를 풀어갔으니 <이희재 삼국지>도 그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답습한 셈이다. 하지만 '만화형식'인 까닭에 과감한 생략과 함축을 통해 군더더기를 잘라내야만 했다. 그런데도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대사와 묘사는 '한컷 한컷'에 담긴 등장인물의 행동과 표정에 다 담고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게 이끌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문열 삼국지>를 완독하기 힘든 분들이라면 <이희재 삼국지>로 갈음해도 좋다고 추천드리는 바다.

1권의 전체 줄거리는 황건의 난이 일어나자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도원결의를 맺고 의병을 모아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한편, 또 다른 영웅 조조도 온몸에 붉은 갑주를 두르고 토벌에 나선 뒤, 유비군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천하를 다툴 영웅지재가 있음'을 직감하고 서로의 존재를 각인하게 된다. 유비군은 30여 차례나 토벌에 성공하며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정작 조정은 부패한 환관들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유비는 고작 현위직(오늘날의 구청장 정도의 직위)을 제수하고 촌구석으로 부임하러 간다. 하지만 부패한 조정은 매관매직을 한 뒤에 뽕을 뽑으러 유비를 찾아오고 순순히 뇌물을 바치지 않자 협박과 모함까지 한다. 이에 불같은 성미의 장비가 유비를 감찰하러 온 독우를 나무에 매달아 매질을 하며 혼쭐을 내주지만, 그로 인해 유비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유주자사 유우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황건적의 잔당'이 다시 일어나자 유비군은 또다시 의병을 모아 황건적을 토벌한다. 이렇게 공을 세워 지난 죄값을 치루고 나니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한편, 궁궐 안에서는 환관들이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 영제가 노환으로 죽게 되자 후임으로 하진의 여동생 하태후의 소생 변과, 후궁 왕씨의 소생 협 가운데 나이가 더 어린 '협'을 등극시킨다. 이가 바로 '소제'다. 이렇게 어린 황제가 등극하자 정국은 다시 환관들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소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 '변'을 제거하려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태후부터 죽여야 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대장군 하진은 군대를 이끌고 환관들을 제거하려 들었다. 이에 환관들은 재빨리 하태후의 치맛속으로 파고들며 목숨만 살려달라 구걸한다. 애초에 백정 출신으로 생각이 짧았던 하태후는 자신들에게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옛 정을 생각해서 애걸복걸하는 환관들의 구명줄을 잡아주지만, 죽다 살아난 환관들은 그럼에도 하진을 없애려 든다. 권력은 이토록 비정한 것이다. 결국 대장군 하진은 환관들의 꾐에 빠져들어 죽임을 당하자 환관들을 제거하려 불러들였던 여러 군웅들이 일거에 궁궐로 들어가 환관들을 모조리 다 잡아 죽이고 만다. 이를 '십상시의 난'이라 부르고, 주축은 바로 '원소'였다.

허나 이런 혼란한 틈을 뚫고 환관 몇몇은 '소제(협)'와 '진류왕(변)'을 납치해서 궁궐밖으로 달아나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붙잡혀 죽임을 당하고, 어린 황제(소제)와 왕(진류왕)은 원소 등의 호위를 받으며 환궁하게 되지만, '십상시의 난'이 났음에도 관망만하며 궁궐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량태수 동탁이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 어린 황제와 왕을 낚아채려 한다. 이때 용감하게 나서서 황족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준 이가 바로 '진류왕(변)'이다. 동탁은 이런 당당한 진류왕의 모습에 반해서 멀지 않은 훗날에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변)'를 옹립하는데 앞장 서게 되는데, 무슨 까닭이었을까?

사실 허수아비 임금을 내세워야 신하된 처지에서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무소불위 권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황제답지 못한 '소제'를 그대로 황위에 두고 동탁이 권력을 쥐고 흔들면 그뿐이었을텐데, 동탁은 이상하게도 '똑똑하고 당당한 황제의 위엄을 갖춘' 진류왕을 다응 황제로 손꼽고, 실제로도 '헌제'로 등극하게 만든다. 그것은 헌제가 후궁 왕씨 소생이긴 하지만, 일찍 어미를 여의고 '동태후'라는 할미 품에서 자랐던 탓이 크다. 동태후와 동탁, '같은 성씨'이지 않은가. 그래서 동탁은 자신이 헌제의 외척세력이 되어 끝내 '황위 찬탈'까지 꿈꿨던 속셈이었던 것이다.

암튼, 동탁은 헌제를 옹립하고 권력을 자기 멋대로 휘두르기 시작한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여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인걸이 참 많았다. 처음엔 '여포'가 등장해서 동탁의 걸림돌이 되자, 동탁은 '적토마'로 여포를 꼬셔서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고, 사도 왕윤은 조조에게 '칠성검'이란 보검까지 헌납하며 동탁 암살을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달아난 사예교위 조조는 암살 실패한 직후 고향으로 낙향해서 '반동탁연합'을 획책하게 된다. 1권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나가는 글 : <삼국지>의 줄거리는 너무 유명한 탓에 모두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희재 삼국지>는 무슨 주제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이어나가고 있을까? 다름 아닌 '성공'이란 두 글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고 세상을 평안하게 만들 수많은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런 수많은 인물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다름 아닌 '성공'인 것이다. 이는 <이희재 삼국지>가 <이문열 삼국지>를 저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열은 스스로도 '보수 성향'이라고 밝혔고, 대한민국의 보수가 주장하는 것도 다름 아닌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럼 반대진영의 진보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분배'다.

이는 달리 말하면, 보수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실력에 따라, 능력에 따라' 가질 수 있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니 더 많은 이득을 얻고 싶다면 '성공'을 한 뒤에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을 꿈꾸라는 말이기도 하다. 반대로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공평하게, 불만이 있으면 원만히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성장을 위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도덕'을 강조하고, 그로 인해 선한 마음가짐을 갖고 모두가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란 말이다. 보수의 관점에 걸맞게 쓰여진 것이 <이문열 삼국지>라면, 진보의 관점에 맞춰서 쓰여진 것이 <황석영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독자마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읽으면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희재 삼국지>도 '성장 위주의 보수적 관점'에서 읽으면 제맛일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정답이 아님을 밝히는 바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분석일 뿐이다. 하지만 굳이 추천을 한다면 '분배 중심'의 서사를 하는 <삼국지>를 읽기를 권한다. '성장 중심의 서사'를 읽다보면 '성공'을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고 최소한의 도덕관념 또한 전혀 고려치 않는 '인간말종'의 모습을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삼국지>를 읽으면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는 조조를 욕할 수 없게 된다. 조조란 영웅이 '성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무엇을 기준으로 욕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오히려 이런 구도에서는 유비가 답답하게만 보일 뿐이다. 온갖 인의도덕을 앞세우며 점잔은 있는대로 다 빼면서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후한 말의 혼란이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이냔 말이다. 바로 '도덕'이 무너지고 '질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유비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도덕'을 앞세웠고, 속된 야망조차 겉으로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유비는 가진 것도 없이 만천하를 움켜지는 기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런 유비의 출세 과정을 '성공 기준'으로 삼아 바라보게 되면, 무능의 극치를 보여줄 뿐이었다. 나중에 '제갈량'을 얻고 난 뒤에야 겨우 나라다운 나라꼴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쪽으로 <삼국지>를 읽든 둘 다 교훈과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권력을 차지하고 성공을 이룩하기 위해 여러 군웅들이 각자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어느 쪽으로 공연(?)을 하든 '꿈보다 해몽'이라는 심정으로 <삼국지>속 이야기를 풀어내면 모두에게 알맞은 재미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