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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6권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평점 :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LXXXIX / 인물과사상사 3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여덟 번째 리뷰는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 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이다. 그를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로 소개한 까닭은 그가 쓴 책들에서 '좌표'를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시선을 '날것 그대로' 담담하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을 뿐,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나름 '객관적인 서술자'로 남으려 무던하게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좋았다. 아무래도 '한 쪽의 관점'에 서게 되면 '다른 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는데,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다보면 그 양쪽의 관점을 모두 관찰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단 말이다. 거기에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한 해석'을 가미하고 있기에 조금 더 '객관적인 해석'으로 이해하기에도 무척 좋았다. 물론 이런 두루뭉술한 문장을 싫어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제 막 역사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관점 포인트 : <한국 근대사 산책> 시리즈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부터 5권까지는 '개화기 시대'를 다루었고, 6권부터 10권까지는 '일제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6권은 흔히 '일제강점기'라 불리는 우리 역사가 암울했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일제시대는 크게 셋으로 나누곤 한다. '무단통치기', '문화통치기', 그리고 '민족말살기'로 말이다. 그 가운데 6권은 '한일 강제 병합'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까지 약 10년 간을 다루고 있다. 바로 위에서 열거한 '무단통치기'에 해당한다.
'무단통치기'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통치속에 숨조차 제대로 살기 힘든 시기였다. 일제의 헌병과 순사 들은 조선인이라면 아무나 붙잡아 공개적으로 '태형'을 하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조선인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제맛(!)이라면서 문명인이 된 일본제국인이 미개한 조선인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는데, 더럽고 어리석은 조선인은 일본인의 선심을 제대로 해야리지도 못하니 때려서라도 '문명개화'를 시켜주겠으니 감사히 쳐맞으라는 식이었다. 이런 무자비한 통치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만에 하나라도 조선인이 똘똘 뭉쳐서 저항이라도 할까봐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전체 인구수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1910년대 당시 한국은 여러 모로 일본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강제 병합을 당한 직후였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나라 잃은 처지'로 전락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러니 기가 죽어 있을 수밖에 없고 일본의 무단통치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 민중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제의 통치가 좋은 방식인지, 나쁜 방식인지조차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조선 때에도 '수탈' 당했고, 대한제국 때도 '수탈' 당했으며, 이제 나라를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수탈' 당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교육이라도 제대로 받고 있었다면 '누구'에게 수탈을 당했고, 그렇게 수탈 당한만큼 '정책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배워서 알아서 분노라도 했겠지만, 그런 기본적인 권리조차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 민중들에게 무엇에 대한 분노를 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이놈에게 빼앗기나 저놈에게 빼앗기나 '빼앗긴 놈'은 그저 불쌍한 처지일 뿐,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1910년부터 1919년까지 일제가 악착같이 수탈해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우리 민중들도 뭔가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1919년 3월에 벌어진 '3·1 만세 혁명'이 그랬다. 인간 대접 받지 못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얻어 터지고, 기름 짜듯 쥐어짜이면서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가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편이 뺏어갈 때와 남의 편이 뺏어갈 때의 차이를 느끼게 된 것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겪으며 배우는 통에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건 바로 '자존심'을 짓밟힌 것이다. 우리 편이 빼앗아갈 때는 나중에 또 빼앗아가기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짓밟지 않았고 주위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이겨낼 '여력'이라도 남겨두고 빼앗아갔다. 그런데 일제가 '수탈'을 할 때에는 인정사정 봐주질 않았다. 그들은 늘 '합법'이라는 허울 좋은 말과 함께 토지와 쌀 등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탈탈 털어 갔고, 수탈 당한 민중이 죽든지 살아남든지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저들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악착같이 빼앗아갔다.
이런 경험을 강제로 당하면서 우리 민족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건 바로 '안간힘'이었다. 고통이나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힘이었다. 일본놈들이 빼앗아가면서 무식해서 빼앗긴다고 하니 악착같이 학교에 가서 배우려 들었다. 미개해서 수탈을 당한다고 하면 그 잘난 문명이란 것을 배우려 들었다. 더러운 조센징이란 소리를 들으면 깨끗하고 청결하려 애썼다. 그렇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지닌 힘이었다. 오늘날 전세계가 주목하는 '한국문화에 관한 열풍'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가지려는 악착같은 성정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우리 것'이 없더라도 언젠간 그것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도록 묵묵히 참고 이겨내며 결국 가질 수 있도록 안간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불과 100여 년 뒤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고, 다른 이들을 이끌어갈 선도국가가 되었다. 이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저력이다.
나가는 글 : 사실 100년 전에도 일본은 한국의 이런 저력을 감지하고 있었다. 저들이 앞선 문명과 기술, 경제력을 내세워서 세계 침략을 하면서도 유독 '한국'을 악착같이 짓밟으려 했던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저들이 잘나서 '못한 한국인'을 함부로 죽이고 때리고 빼앗고 있는데도 한국인은 순순히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지금 당장 '소의 힘줄(일명 '소좃매')' 끝에 납과 같은 무거운 추를 매달아 공공연한 장소에서 엉덩이를 발랑 까놓고 살점이 터져나가도록 매질을 하면서도 한국인들은 비명을 지르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당장은 무서움에 벌벌 떨고 두려움에 꽁꽁 숨었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어 떳떳하고 당당하니 저들이 나쁜 놈이다. 그러니 저들을 압도할 실력을 기르자. 그래서 본때를 보여주자'하는 오기와 독기로 똘똘 뭉치게 만든 것이다.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상대와 대적하면서도 '도덕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하면서 말이다. 비겁한 반칙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철저히 실력을 쌓으려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안간힘은 신통하게도 먹혀 들었다.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인들도 의아했던 점이 있었단다. 덩치만 보면 일본인은 왜소하고, 한국인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 쬐끄만 일본인이 덩치 큰 한국인을 매질하고 수탈하는 장면을 보면서 말이다. 더구나 외모적으로도 일본인은 꾀죄죄했고, 한국인은 새하얗고 준수했단다. 그런데도 일본인에게 억압 당하고 수탈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는 소회를 밝히는 이들도 많았단다. 하지만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에 성공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었다. 그런데 그들의 성정이 원래부터 '야만'스러운 탓에 잘난 자부심과 만나 '폭력적인 방식'의 통치 수단을 삼고 식민경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무단통치'가 한국인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저들이 '인류애'를 발휘하여 저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명개화'를 우리에게 좋은 의도를 품고 친절하게 이끌어주었다면 우리는 더욱 잘 되어서 이웃나라 간에 더욱 시니지 효과를 발휘하며 전세계에 동아시아 문화를 널리 퍼뜨리는데 엄청난 성과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우리를 너무 만만히 봤고, 너무 함부로 대했으며, 우리가 가진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로 하여금 복수심에 불타는 '경쟁심'만 자극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곁눈질로만 배워서 저들이 자랑하는 문명을 따라잡을 위력을 갖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불과 100년 만에 우리는 따라잡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앞서 나갈 것이며, 저들은 왜 뒤쳐지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호되게 당할 일만 남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는 '일제시대'를 암울하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분명 그들은 우리를 억눌렀고 털었으며 짓밟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눌리고 털리고 밟히면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들여온 '신문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일본제국을 위해서 들여온 모든 것들을 '눈여겨' 보면서 무섭도록 배워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으면 일본 학생 100명 당 한국 학생 10명 뿐이었다고 해도, '전교 1등'은 한국 학생이었고, 일본인을 위한 기업을 만들었어도 일본 근로자 월급은 100원이었다면 한국 근로자는 60원만 받았어도, 그 돈을 알뜰살뜰하게 쓰며 '공부'하는데 썼고, '독립'하는데 썼다. 그렇게 못먹고 못살면서도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차'가 들어오고, '영화관'이 들어오면 직접 타보고 관람하면서 흥을 내며 살아갔다. 단지 타고 보면서 즐기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지금은 '남의 것'이지만 결국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읽혔다.
그래서 앞으로 '일제시대'를 암울한 기분으로만 공부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식한 한국을 깨우쳐주려 식민통치를 무릅쓴(?) 일본제국의 호의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는 엉터리 해석을, 난 할 생각이 없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마디로 '빵점'이다.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야욕'만 가득 담은 못난 방식이었고, 자격지심에 더 삐뚫어진 탐욕으로 점철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일제시대에 일본인에 의해 벌어진 일들을 호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일제의 억압과 수탈과 고문 속에서도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고 숱한 위기에 처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이토록 빠른 시일에 '선진국'이 되고, '선도국가'가 되어 전세계인이 '한국문화'를 아낌없이 칭송하게 만든 위대한 발자취를 다시금 되돌아보기 위한 역사공부를 하려 한다.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도 역시 '균형 잡힌 역사서술자'의 도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