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의 지대넓얕 14 : 예술의 역사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채사장의 지대넓얕 14 : 예술의 역사>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5)

[My Review MMCLXXXVIII / 돌핀북 1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일곱 번째 리뷰는 어린이들의 지적대화를 위해 생각을 깊고 넓게 해주는 교양책 <채사장의 지대넓얕 14>다. 그동안 '역사', '경제', '과학', '철학'을 다루었고 이번에는 '예술'을 다뤄볼 차례다. 흔히 예술은 '음악', '미술', '체육' 영역으로 나누지만 이 책에서는 '미술사', 특히 '서양미술사'를 다뤘다. 사실 '서양미술사'에 관해서는 에른스트 H. 곰브리치가 쓴 같은 제목의 <서양미술사>(예경, 2003)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른들도 읽기 힘든 '700여 쪽의 벽돌책'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어린이가 직접 읽기에는 다소 무리일 수 있겠다. 그래서 채사장은 이 책의 내용을 어린이들도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듯 싶다. 물론 책 내용이 완전 똑같지는 않다. 채사장의 독특한 '지식 분류법'인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가 이 책에서도 훨씬 더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채사장의 지대넓얕 14> 관점 포인트 : 미술을 바라보는 입장은 엄청 다양하다. 하지만 크게 고대 '고전주의', 근대 '낭만주의', 그리고 '현대 미술'로 나누곤 한다. 채사장은 이를 각각 순서대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회의주의'로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구분했고 말이다. 왜냐면 '고전주의'는 핵심 가치로 이성, 질서, 조화, 균형, 비례 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흔들림 없는 진리를 추구하듯 미술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근대 이후에는 미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감성, 개성, 상상력, 주관성 따위를 핵심 가치의 우위를 두었다. 그래서 고전적인 아름다움과는 달리 '낭만적 아름다움'을 아주 잘 표현했고, 채사장은 이를 '상대주의'로 구분했던 것이다.

물론, 미술에서 절대주의, 상대주의로 완벽하게 구분할 명확한 경계는 없다. 왜냐면 아름다움의 '경계'는 명확히 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성이고 조화롭고 비례가 딱 맞는 균형적인 아름다움과 각자의 개성과 주관에 따른 남다른 감성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아름다움을 구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에서 절대적 아름다움을 논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균형미'와 '조화미'를 띠는 작품은 절대주의로, '개성적'이고 '감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품은 상대주의로 채사장은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현대 미술은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일정한 틀'에 구애받지 않고 초월적인 자유로움을 미술에 나타냈기 때문에 '회의주의'라고 구분했다. 그런 까닭에 현대 미술은 엄청 어렵다. 하나의 작품을 이해했을지라도 '또 다른 작품'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이런 현대 미술의 장르를 따로 구분하며 나름대로 '해석'을 하려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그래서 현대 미술을 이해하려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로 난해하기도 한데,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추구한 미술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미술(예술)을 즐기면 그뿐이라는 자세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결국 미술은 '보여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니 '봐주는 이'가 없는 미술은 미술이 아닐 뿐만 아니라 미술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는 정도의 수준에서 미술 감상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해석하기'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 미술은 '~하기 나름'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비전문가가 엉터리로 해석하는 것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겠지만, 미술 전문가의 해석만이 '모범답안'이라는 얘기도 절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암튼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이 책 '15권'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글 : 14권에서는 예술의 역사 가운데 절대주의에 해당하는 미술을 주로 다뤘다. 이집트 미술과 중세 미술도 예술의 흐름상 설명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이집트와 중세의 미술은 '아름다움'은 떨어지는 대신 미술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충실한 예술을 드높였기 때문이다. 이집트 벽화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리기'에 충실했고, 중세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성서의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리기'에 철저한 방식으로 그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얼핏 보면 '초등학생 솜씨'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찬찬히 뜯어보면 그속에 '내용전달'에 충실한 메시지가 오롯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셈이다. 그로 인해서 '아름다움'은 배제되었다.

그래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미술은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조화미, 균형미, 비례미,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림의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리는 대상이 '신'이나 다른 '상상의 산물'일지라도 결국은 '인간의 모습'을 본떠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집트 미술에서 한층 더 발전된 모습처럼 보이는 까닭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중세시대로 접어들면서 '신 중심'으로 미술을 표현하면서 인간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말았다. 오로지 신을 찬양하는 것에 올인하는 바람에 말이다. 그러다 '르네상스시대'를 맞으며 미술계는 다시 '인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를 '문예부흥운동'이라고 부른 까닭도 다름 아니라 '그리스·로마시대'처럼 인간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다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니, 이를 '인본주의'라고도 부른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동시대에 살면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런 예술이 부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그 부로 '권력'을 사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수많은 재주 많은 예술가를 후원하여 자신의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었던 점에서 절대적인 위업을 남기기도 했다. 그 가문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르네상스 예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까닭도 바로 메디치 가의 막대한 후원금이 있었기에 재주는 많지만 '재료 살 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가난한 예술가들을 오직 실력 하나만 보고 아낌없이 투자(!)한 덕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르네상스의 문예부흥은 메디치 가문의 막대한 후원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미켈란젤로도 모두 메디치 가의 후원 덕분에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예술적 재능을 꽃 피웠으며,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르네상스시대의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도 지적 탐구를 해볼 가치가 있지만,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