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의 지대넓얕 13 : 철학의 두 갈래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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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3 : 철학의 두 갈래>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5)

[My Review MMCLXXIX / 돌핀북 1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덟 번째 리뷰는 <채사장의 지대넓얕 13>이다. 지난 리뷰에서는 고전 철학과 중세 철학까지 절대, 상대, 회의, 이 '세 가지 관점'으로 철학을 비교 분석해봤다. 그럼 이어지는 근대 철학은 '어떻게' 펼쳐질까? 사실 철학을 공부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단 말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 말 한마디에 집중하다보면 전체를 놓치기 십상이고, 전체를 넓게 보다보면 우리가 기억해야할 나무들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어려운 것 투성이다. 이런 철학을 논리정연하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해박한 지식에 통달해야 하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것이 철학이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우리에겐 채사장이 있지 않은가. 채사장이 가는 길을 잘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철학의 실마리'를 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먼 길 떠나야 할테니 차근차근 따라오면 된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던가. 서두르지 말자. 이 책이 반드시 도와줄 테니 말이다.

<채사장의 지대넓얕 13>의 관점 포인트 : 고대 철학에서는 '진리란 무엇인가?'에 집중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진리'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알 수 있다고 했고, 플라톤도 '진리'는 모든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깨달으면 알 수 있다고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진리'는 뜬 구름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으니 형상과 질료가 무엇이고, 그 '변화'에 주목하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세로 넘어와서도 '진리'는 신학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바탕으로 교부철학을 창시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주목하며 <신학대전>이란 책으로 신학을 집대성하며 스콜라철학을 완성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골똘히 연구했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오랫동안 신앙에서 빛을 찾으려 했는데, 근대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신앙(믿음)'이 아닌 '이성'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바로 '진리'를 말이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는 진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더 궁금해 했다. 그렇게 철학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바로 '진리는 있는가?'를 묻던 '존재론'과 '진리를 어떻게 아는가?'를 따지던 '인식론'으로 말이다. 그 가운데 먼저 '인식론'을 살펴보자. 인식론은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이 탐구의 결론은 바로 그 유명한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뉜다. 합리론자들은 이성으로 진리를 추론할 수 있다고 했고, 경험론자들은 경험적 관찰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식으로 서로 논쟁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먼저, 데카르트가 '합리론자의 대표격'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 '생각하는 나 자신'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고 단정할 수 있다면서, 인간은 끊임없는 이성적 성찰로 인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정리했다. 그런데 '경험론자의 대표격'인 베이컨은 무릇 이성(생각)이라는 것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구체화 할 수 없다면서 단언컨대 생각에 앞서서 '경험'이 우선한다고 역설했다. 그렇지만 합리론자들은 세상의 진리를 모두 다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성'만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고, 경험론자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생각이란 막연한 상상에 불과하다며 무엇보다 참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험'밖에 없다고 반론을 던졌다.

이렇게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와중에 '독일의 칸트'는 존재론의 한 갈래인 '관념론'을 가지고 와서 둘을 종합해버렸다. 이렇게 '관념론'은 철학의 관심을 '외부의 대상'에서 진리를 찾으려던 시선을 돌려서 '인식의 주체'인 내면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만큼 칸트의 관념론은 서양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한편 진리에 대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적 논쟁과는 논외로 '회의주의'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등장으로 말이다. 니체는 그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고 주장하면서 서구 문화의 기반이었던 그리스도교의 실체를 까발리며 실랄하게 비판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나 진리에 있지 않고,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며 실존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까지 강조할 정도였다.

정리하자면, 채사장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절대주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 그리고 진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는 '회의주의'로 철학을 세 가지 관점으로 구분했다. 절대주의의 계보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실재론', '데카르트'로 이어지고, 상대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유명론', '베이컨'으로 이어지며, 임마누엘 칸트에 의해서 합리론과 경험론이 종합한 뒤에 헤겔과 마르크스 같은 철학자들(유물론자)이 뒤를 잇게 된다. 한편, 회의주의는 '소피스트', '쇼펜하우어', '니체', '실존주의'로 이어져서 결국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활짝 열게 된다. 회의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이나 신(믿음), 국가나 전체 따위보다 '개인'에 집중한 덕분에 다양한 사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회의주의의 후예'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가는 글 : 어떤가?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철학이 조금은 쉬워 보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다행이고, 여전히 어렵다고 말하더라도 크게 실망할 것은 없다. 세상 그 누구도 철학을 마스터 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구누구의 철학을 달달 외운 지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현대 철학의 근간은 '진리 탐구'에 있지 않다. 세상 모든 질문을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진리)'가 있기는 하겠는가 말이다.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이 생각하는 구석, 믿는 구석은 있기 마련이다'. 이게 현대 철학의 시작인 실존주의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면서 다름 아닌 인간이 그렇다고 말했다. 세상 모든 물질은 '쓰임'이 있는데 반해서 오직 인간만은 '쓰임' 없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는 달리 말해서 만물이 '목적'을 띄고 만들어지는데 반해서 인간은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예를 들어서 청소기는 '청소'할 목적으로 만들었고, 망치는 '못'을 박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누구도 망치로 '청소'할 생각을 하지 않고, 청소기로 '못'을 박으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무슨 '목적'을 띄고 태어나는가? 이 아기는 '목수'를 하기 위해 태어났고, 저 아기는 '고행'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저 태어났을 뿐이다. 이렇게 '목적' 없이 태어난 인간은 '본질(목적)' 없이 태어나기(실존) 때문에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말을 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은 '쓰임' 없이 태어났으니 스스로 '쓰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란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존재가 되려는가? 이제 철학을 공부했으니 좀 유식하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고, 어떤 진리를 탐구하길 즐기며,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구원하려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정답은 없다. 다만, 개인적인 이익보다 인류 공영과 발전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는 철학이라면 확실히 좋은 철학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철학을 많이 해야 한다. 전세계가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흔들리고 있는 이때! 무엇보다 철학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달달 외우려 들지 말라. 외운 지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의 철학으로 뚜벅뚜벅 발자국 하나하나마다 깊숙이 새겨넣는 마음가짐하듯 걸어가야 한다. 누군가 '당신이 새긴 발자국'을 따라오는 무리가 있다면 당신이 바로 '철학자'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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