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케이션 3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바이퍼케이션 3 : 하이드라>  이우혁 / 해냄 (2010)

[My Review MMCL / 해냄 8번째 리뷰] 니체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괴물을 상대하는 자 괴물이 되지 않게 주의하라. 그대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리니."라는 언급을 했다. 그리고 이우혁 작가가 15년 간 골머리를 썩힌 끝에 내놓은 역작 <바이퍼케이션>(전 3권)을 드디어 다 읽었다. 참 힘들었다. 이우혁 작가의 소설을 이토록 길게 끌며 읽은 책이 없었는데, 정말이지 이 소설은 내게 역대급이었다. 정말 괴물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범죄심리'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왠지 모르겠지만 너무 끔찍한 '범죄'를 '미화'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의 작품성과 완성도, 그리고 재미로만 보자면 '범죄'를 소재로 다룬 심리소설, 스릴러소설, 공포소설, 추리소설 등등 모두 흥미롭고 재밌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 재미라는 것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살인'이라고 하는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인 것이 전부이다. 나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보면서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대중을 보는 게 마뜩찮은 사람이기에, 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명탐정' 같은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범죄자나 악당을 처단하고 죄값을 받게 만드는 결론만을 좋아라하지, 뤼팽처럼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찰을 농락하고 악행을 저지르면서 '사회정의' 운운하는 이야기는 쓰레기 취급하는 쪽이다. 뭐, 여담이지만, 조만간 '뤼팽 전집 리뷰'도 올릴 예정이다. 그렇지만 듣기 좋은 리뷰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예고한다. 암튼 <바이퍼케이션>은 내가 읽은 '범죄심리소설'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살점이 사방을 튀는 잔혹한 소설이었다.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바다.

앞서 '괴물'을 언급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인물 가르시아 반장, 에이들 요원, 그리고 헤라 헤이워드 부인(헤라클레스)은 '하이드라'라고 하는 괴물이 온 도시를 피로 범벅을 만들자, 그 괴물을 잡기 위해 수사에 나서게 된다. 허나 '하이드라'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범죄는 점점 더 끔찍해지고 살인은 더욱 빈번해진다. 그리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살해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이 다름 아닌 '헤라 헤이워드 부인'이라는 금발의 미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리고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는 까닭도 다름 아닌 '헤라 헤이워드 부인', 아니 그녀의 '또 다른 인격체(?)'인 자칭 '헤라클레스'라고 하는 인물에 의해서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지난 1, 2권의 내용이 그랬다. 하지만 그녀(헤라클레스)도 '하이드라'라고 하는 더 끔찍한 괴물에 의해서 '조종 당한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진짜 괴물을 잡기 위해 수사력을 총동원하는데, 과연 '하이드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줄거리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범죄소설에 나오는 살인사건들은 창작자의 상상 100%라기보다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새롭게 꾸며진 이야기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속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살인자가 실제 현실에서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연쇄살인범'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있었으며 그들의 희생양은 언제나 '힘 없는 여자와 아이, 노인'을 대상으로 했으며, 사회 소수자들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과 살해를 저지르면서도 눈곱만큼의 '반성'이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너무도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한 뻔뻔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분노'가 일기에 앞서 '구역질'이 날 정도다. 왜냐면 그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듯 말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렇다. 그들은 하나같이 '괴물'이었을 뿐이다. 흔히 '짐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짐승들도 배가 고파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최소한의 희생(살육)'을 할 뿐이지, 이런 괴물들은 피에 굶주린 모습을 하고서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부재'라도 느끼는 듯, 죽이고 또 죽이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해한 희생자를 모욕하고 '죽어 마땅한 존재'로 치부하는 씻지 못할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엿 바꿔 먹은 셈이다.

이 소설에서는 '헤라 헤이워드(자칭 '헤라클레스')'가 바로 그런 괴물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얻게 된 '초능력'으로 사람을 말 한마디로 '정신지배(마인드컨트롤)' 같은 것을 시행해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버리는 일을 한다. 물론 처음부터 대놓고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만히 있는데 '범죄자'들이 찾아와 헤라를 납치하려 들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간단한 말 몇 마디로 제 발로 찾아온 범죄자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 까닭은 바로 자신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라고 하는 영웅이자 '신적인 존재'인 까닭에 하찮은 인간의 목숨 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고 둘러댈 뿐이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다 '헤라 헤이워드(헤라클레스)'의 초능력(?)을 목격하게 된 가르시아 형사와 에이들 요원은 결국 '헤라클레스'와 엮여, '하이드라'라고 하는 또 다른 괴물의 정체를 밝히고 쫓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가르시아와 에이들도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물론 겉으로는 '헤라클레스'의 거부할 수 없는 명령(!)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긴 하지만, 그들도 애초에 형사와 요원이 되기 전에 끔찍한 살인사건을 경험했고, 그 사건의 범인을 '사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서 형사와 요원이 되었다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된 '원인제공'을 스스로 한 셈이다. 결국 이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범죄사건', 그것도 끔찍하고 잔혹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며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대환장의 살육파티'에 초대된 셈이다.

난 이걸 끝까지 읽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퇴마록>에서도 끔찍한 장면이 곧잘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장면들은 대부분 '악령'들이 저지른 일들이었고, 이런 악행을 막고자 '퇴마사'들이 등장해서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악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렸던지라 아주 감명 깊게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이우혁의 또 다른 소설 <파이로매니악>에서도 폭발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폭발물에 희생당하는 이들은 전부 '대한민국'을 해치는 악질적인 악인들이었으며,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법정에 세울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설정이었기에 큰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이퍼케이션>은 그런 '최소한의 양심' 같은 설정이 전혀 없다. 그저 '괴물'에게 이용 당했기 때문에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그냥 죽어나갈 뿐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하이드라'와의 대결을 앞두고 수많은 이들이 '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과 칼에 맞아 '대신' 죽어나간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그렇게 죽어야만 했던가? 그런데도 '괴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는데도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겪는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 당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변명' 같지도 않은 핑계를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불편함'을 정신지배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너무 쉽게 퉁쳐버리고 말았다. 퇴마사들이 단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대신 담보(?)로 내놓는 명장면을 선보인 이우혁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작가가 15년 동안이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역작이 이따위 '피에 굶주린 괴물'을 등장시킨 범죄소설이었다니 대단히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미완에 그친 다른 소설과 다르게 <바이퍼케이션 : 하이드라>는 비록 종결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시켰지만, 주요 등장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가르시아 형사와 헤라클레스가 온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손버그 에이들 요원은 비록 헤라클레스의 사주에 의해 온몸이 칼과 둔기로 난자 당하고 시신을 불태워 죽인 것으로 설정(?)했지만, 끝내 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여운을 남겨 놓았다. 유능한 FBI 요원이면서 '천재 프로파일러'로 등장하지만, 그에겐 모든 것을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초급자 수준이라고 하지만 '최면술'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그가 비록 최후를 맞이하긴 했지만, 끝내 죽음에 이르지 않게 된 '극적인 사연'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 듯 싶다. 그런 연유로 이 소설에는 '후속작'이 나올 듯 싶다. 아마도 제목은 <바이퍼케이션 : 헤라클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왕 헤라클레스가 살아남았고, 그녀가 영웅으로서 해야 할 과업은 아직도 10가지나 남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네메아의 사자'였고, 두 번째는 '레르나의 히드라'였으니, 이제 겨우 2개를 해결했을 뿐이다. 나머지 10개를 한 큐(?)에 해결할지, 아님 가르시아와 에이들이 헤라클레스의 또 다른 범죄를 저지하고 처단할 수 있을지...그런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무려 15년이나 침묵하고 있는 작품을 다시 꺼내 들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비록 <퇴마록>의 부활을 선언한 이우혁 작가지만, 과연 <바이퍼케이션>의 뒷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을까? 재미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너무 끔찍한 범죄만을 나열한 듯한 느낌은 다시 살려내지 않았으면 싶다. 차라리 마동석의 <범죄도시>처럼 악당을 때려잡는 결말이라도 참고 했으면 싶다. 그래도 너무 폭력성이 짙다는 소문에 나는 <범죄도시>를 아직도 보지 않고 있다. 살인, 폭력, 범죄 따위를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봐야 '나쁜 것'이지 않느냔 말이다. 나쁜 것은 절대 멋지게 포장하면 안 된다. 그저 떼찌떼찌 해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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