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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학이 문제일까? - 10대에게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ㅣ 왜 문제일까?
김동광 지음 / 반니 / 2023년 8월
평점 :
[왜 문제일까?] <왜 과학이 문제일까?> 김동광 / 반니 (2023)
[My Review MMCXXXIV / 반니 1번째 리뷰] <왜 문제일까?> 시리즈가 나왔었다. 벌써 2년 전이다. 독서논술쌤으로 지내다보면 이런 유형의 책은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신간소식'을 제때에 들을 처지가 못할 정도로 '현역'에서 은퇴한 선생이다보니 좀 발빠르게 챙겨서 읽지 못할 뿐이다. 한때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고 리뷰를 부탁할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리즈 책이니 틈틈이 읽어볼 작정이다. 암튼, 시리즈 책 목록을 훑어보니 초등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읽으면 좋을 내용으로 주제를 선별해 놓았다. 인문적 교양을 쌓으면서도 '통합교과'로 문이과 융합형 교과 연계가 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읽으면 '관심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끌어들여, 궁극적으로는 '사탐/과탐' 영역과 연관이 된 내용이기 때문에 학습에도 도움이 될만한 훌륭한 참고 자료로 가득했다. 나의 학창시절에도 이런 유형의 책들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 '사탐/과탐' 영역을 단순히 암기하기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어서 학업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방법도 저절로 터득했을텐데 말이다. 옛날에는 그저 죽어라 외우고, 나중에 대학에 가서 견문을 넓히고서야 겨우 이해하는 느려터진 학습법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나마 해박하고 친절한(?) 선생님이 계셔서 '코칭'이라도 제대로 받았더라면 좋으련만, 공부하다 생긴 '호기심'과 '궁금증'을 질문하면, 그 당시에는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걸 쓸데없이 왜 물어!"라는 대답과 함께 꾸중만 들었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논술쌤이 되고 보니, 그건 그 선생님도 잘 몰랐기 때문에 '대답'을 회피한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왜냐면 나도 잘 모르는 걸 학생들이 물어보면 짜증부터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학생이 어떤 질문을 하든 다 대답할 수 있도록 이책저책을 탐독하고 있다. 그래도 모르면 '다음 시간'에 제대로 답변해주기 위해서 더 많은 책을 읽고 답을 찾으면서 말이다. 이건 '선생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학생을 칭찬해주지는 못할 망정 '핀잔'이나 '꾸중'을 하는 선생은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 책 <왜 과학이 문제일까?>는 과학이 인류에게 미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 과학이 우리에게 일으킨 많은 문제들을 되돌아보고, '과학 지상주의'에 빠져들어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밝혀냈다. 더구나 오늘날의 과학은 '거대과학화' 되고, '상업화' 되어 꼭 필요한 과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돈(이익)'을 얼마만큼 벌어 들일 수 있는 과학연구인지부터 따지기 때문에 '첨단과학'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는 '부자'를 위한 과학', '권력'을 위한 과학으로 되려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경향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말이다. 거기다 과학이라는 분야조차 '차별'이 심해서 인종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차별도 심심찮게 폭로가 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엄청난 이득에 취해서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불평등을 조장해서 선택받은 소수만을 위한 과학으로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럼 과학으로 인한 문제들에는 어떤 예가 있을까? 먼저, 전쟁과 과학발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점이 우려스럽다. 아시다시피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독가스'라는 대량살상무기이자 독성 화학무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맨해튼프로젝트'라는 '거대과학의 시작'으로 인해 핵폭탄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터뜨려 엄청난 인적 · 물적 파괴를 직접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과거의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까지 목숨을 건 처절한 전투를 벌어야 해서 '전쟁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낄 수라도 있어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지만, 1차 · 2차 세계대전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포탄과 폭탄, 그리고 독가스와 핵폭탄 같은 어마어마한 살상력을 가진 무기로 전쟁을 치뤘기 때문에 전쟁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더 많은 인명살상을 결과로 겪고 나서야 '전쟁의 위험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다 전쟁의 양상도 확연히 바뀌었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참전하는 '군인'만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전후방의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총력전'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군인보다 '민간인'의 피해가 훨씬 더 커졌다는 것이다. 도시를 향해 쏘아진 '독가스'와 '핵폭탄'이 과연 누굴 죽였겠느냔 말이다. 아무런 대비도, 방비도 없이 민간인들은 그야말로 학살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학은 전쟁의 시기에 급격히 발전하게 된다. 왜냐면 적을 얼마나 많이 죽이고, 더 빨리 죽여서, 상대국을 무력화시켜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적의 심장부라고 여기는 곳이라면, 그곳이 전방이든 후방이든 가리지 않고 '선제타격'을 하며 상대국이 미처 대비하지도, 방비하지도, 그래서 '반격'하지 못하게 초토화시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인 탓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군산복합체'를 만들어 전국민이 전쟁에 참여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군대와 산업'이 결탁해서 최후의 하나까지 짜내서 상대를 섬멸시키려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는 '거대과학의 탄생'을 실현시키고 만 셈이다. 개별적으로 연구해오던 '과학'에서는 꼭 필요한 연구도 하지만, 과학자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지만, '거대과학'으로 총력을 기울이려면 '엄청난 연구자금'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적 낭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로 몰아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연구자금'만큼 '성과이익'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한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만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제위기(?)를 감수해낼 국민들이 과연 있을까? 그렇기에 거대과학을 추진하는 정부에서는 '이익이 날 만한 과학연구'에만 연구자금을 몰아주는 경향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꼭 필요한 '기초과학연구'에는 성과이익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연구자금이 말라가고, 당장 눈앞에 큰 이득을 가져다줄 안정적이고 확실한 연구에만 엄청난 자금을 지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과학연구가 먼 미래에 나쁜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거대과학화'된 과학연구자들은 인류에게 꼭 필요한 생명과 안전, 그리고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 줄 '연구성과'까지 특정 국가와 기업에게 '로열티'와 '지적재산권'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물론, 특허와 같은 '재산권 소유'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엄청난 연구자금을 투자해서 '신약'을 개발했는데, '공짜약'으로 무료배포할 수는 없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제약회사의 지적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1회 투여' 비용으로 1억 원이라는 고액을 책정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이런 식이라도 '재산권 보장' 운운할 수 있을까? 이런 조치는 한마디로 '돈 없는 가난한 환자들'은 신약조차 써보지 못하고 그냥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기업이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돈장사를 하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 이런 예는 에이즈, 백혈병,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그 실태를 아주 생생히 겪어보았다. 과연 앞으로도 '환자의 생명'을 두고 부자와 빈자로 구분 짓는 행태를 반복해야만 할까? 아무리 돈에 눈이 멀어도, 투자금 회수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이익을 챙기는 선을 넘어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연구 개발'로 나온 신약을 효과적으로 처방하기 위해서 국가가 나서서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형태로 치료방법이 발견되는 즉시, 그 혜택도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의 관심'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온 국민의 관심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은 또 있다. 바로 '과학계에도 여전한 불평등' 때문이다. 특히, '첨단과학'이 발달 할수록 어렵고 복잡한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과학은 점점 발전하는데, 그로 인해서 기존의 세대는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 나온 신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그 기회를 잘 살리기 위해 '정보교육'까지 제공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해서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다름 아닌, '빈부격차' 때문이다. 아무래도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가 첨단기기를 '공짜'에 가깝게 싸게 제공하고, 그 기기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무상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그런 '기기'를 쓸 시간적 여유도 없고, 그런 '교육'을 들을 시간에 추가근무수당을 챙기기 위해 일터로 나가는 일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할수록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부자들만을 위한 과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게 문제가 된다. 여기에 더해 '인종차별', '여성차별'은 아직도 과학계의 평등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어떤가? 왜 과학이 문제가 되는지 여실히 보이지 않은가? 우리는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 풍요롭고,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첨단과학이 가져다주는 풍요와 편리함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공될 뿐이고,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의 일상은 더 빈곤하고, 더 불편한 진실만 마주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삼성 반도체가 수출 호황을 맞았다고 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삼성 반도체가 아무리 많이 팔린다고 해도,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이상 그닥 좋은 일도 아니다. 물론 한 기업이 성장하면 국가경제도 성장하는 것이고, 그러면 국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질 거라는 '낙수 효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낙수 효과'를 실현시킨 정부는 전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기분만 좋을 뿐이다. 하지만 그 좋은 기분이 나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경제는 성장했는데, 가난한 나의 삶은 더 가난한 방향으로 추락할 뿐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부자들만 더 큰 부자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으로 후퇴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의 세금으로 발전시킨 과학적 성과가 제대로 '나의 삶'을 풍족하고 편리하게 만들고 싶다면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과연 이런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