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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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안정효 / 소담출판사 (2015) [원제 : Brave New World(1932)]

[My Review MMXCII / 소담출판사 6번째 리뷰]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짓꿎은 질문이지만, 그때 그때마다 선택이 달라지는 질문이 있다. 바로 '똥맛 나는 카레'와 '카레맛 나는 똥' 가운데 하나를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먹겠느냐는 질문이다. 10대 때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본질'을 더 중시했기에 비록 똥맛일지언정 카레를 먹겠다고 선택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선택에 흔들리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똥맛'보다는 '카레맛'을 선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비록 '생체건전지'로 전락할지언정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처참함을 느끼며 힘겹게 살아가느니 '허상'에 불과하지만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환상(꿈)속에서 맛난 음식과 안락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꿈속에서 깨어나면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전제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뜬금없는 질문으로 서두를 꺼냈지만, <멋진 신세계>가 보여주는 미래가 바로 이런 세상을 펼쳐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

때는 2540년, 영국의 도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한다.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DNA 나선구조'가 밝혀지기 20여 년 전이었던 탓에, 오늘날의 정교한 유전자 조작까지는 아니어도 아주 그럴 듯한 방식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애초부터 '계급적 분화'에 성공했다는 설정을 보여주었다. 지배자 계급은 알파와 베타다. 이들은 외모도 훌륭할 뿐더러 지능까지 뛰어나서 태어날 때부터 '권력자'가 되거나 '관리자'가 되어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쾌락적인 삶을 영원히 누리며 살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인 감마와 델타, 그리고 엡실론은 난자 하나에서 가지를 쳐서 '96개의 쌍둥이'를 생산(?) 해낼 수 있다. 이들은 외모부터 작고 볼품 없으며, 엡실론 계급인 경우에는 얼굴에서 콧구멍 2개만 겨우 보일 정도로 괴상한 형체를 띄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힘이 쎄서 노동력을 전담하기에 딱 알맞은 계급이다. 심지어 노동자 계급은 애초부터 '책과 꽃'을 멀리하도록 세뇌를 시켰기 때문에 하릴 없는 지능을 발달시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분화된 계급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를 테면, 노동자 계급이 지도자 계급을 보면서, 저들은 '노동'도 하지 않으면서 '누릴 것'은 다 누리며 살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그럴 걱정은 전혀 없다. 이 세계에는 '소마'라는 합법적이고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안정적인 마약이 있는데, 이것을 일정량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애초에 '불만'을 가질 수 없는 사회구조인 셈이다. 심지어 '소마'는 알약 형태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즐겨 먹는 '음식'에도 첨가될 수 있기에 울적하고 괴로울 때, '쾌락'을 원하는 만큼 복용하기만 하면 온몸에 '쾌락'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 도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장치를 통해서 '소마'를 강제로 흡입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불행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언제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주인공이 나타난다. 계급은 알파 플러스 계급인데 외모는 '노동자 계급'으로 오해할 정도로 왜소하고 못생겼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 멋진 신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인공부화장'을 관리하던 이가 실수로 마르크스의 수정란에 알콜을 부어버리는 실수를 했기 때문에 지능은 뛰어난데 외모는 볼품 없게 태어났다고 한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마르크스는 '자유 연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소마로 외로움을 달래고 불만을 잠재우는 일을 반복했다. 사실 이 세계에서는 '가족' 같은 개념을 가장 경멸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 출산, 육아 같은 일은 '야만인'들이 할 법한 일이고, 이들은 오직 '쾌락'만을 위한 섹스를 즐길 뿐이다. 그것도 '한 명의 이성'에게만 매달리는 것은 바보짓이고,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멍청이 취급을 한다. 날마다 섹스 대상은 바뀌며 '사랑'이란 감정도 유치하다 여기며 오직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에서는 '노화'라는 것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서른 살 정도의 젊음을 유지하며 '그 이상'의 나이를 먹어도 절대 늙지 않는다. 늙는 것은 오직 '심장'뿐이다. 그렇게 심장만 노화를 겪다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면 '고통'도, '질병'도 없이 '즉사'할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인생 가득 '쾌락'만 즐기다 떠날 뿐인 셈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런 쾌락을 즐기지 못한다. 왜냐면 '못생겼기' 때문에 알파나 베타 계급의 여성들은 섹스 상대로 거들떠도 보지 않으며, 노동자 계급은 애초에 마르크스 같은 지배 계급과 상종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베타 계급의 여성인 '레니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베타 계급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미녀였다. 그녀의 눈에는 마르크스가 귀엽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둘은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둘은 '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약속한다. 바로 '야만인 보호구역'인 뉴멕시코로 말이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서 도착한 그곳에서 둘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곳에서는 '가족'이 존재했고, '임신, 출산, 육아, 심지어 모유수유까지' 직접 다하는 불결하고 불쾌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레니나는 운명적인 남자를 만나게 된다. 분명 '야만인'이 틀림없는데 완벽한 외모에, 똑똑한 지성까지 겸비한 '최고의 매력남' 존을 만났던 것이다. 둘은 그렇게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야만인 보호구역'을 벗어나 '문명세계'로 함께 건너 오게 된다. 한편, 마르크스는 여행을 오기 전에 총통에게서 전달 받은 '린다'라는 여성과 만나게 된다. 린다는 원래 '문명세계'에서 살던 여성이었는데,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여행을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던 여성이었다. 그렇게 행방불명이 되었던 린다는 '존'이란 아들을 그곳에서 출산하고, 손수 길렀던 것이다. 사실 린다는 '야만인'과 사랑에 빠져서 문명세계를 벗어나 야만인 보호구역에 정착하고 아들도 낳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문명세계를 떠났던 탓에 야만스런(?) 삶에 지쳤고, 아들 존에게 '문명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버텼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마르크스와 레니나는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린다와 존을 함께 동행하기로 한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문명세계'로 되돌아온 린다와 존은 처음 얼마 동안은 행복해 한다. 린다는 오랜만에 '문명세계의 향락'에 푹 빠졌고, 존은 레니나와 '정신적 사랑'을 완성(?)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레니나는 오직 쾌락만을 쫓아 존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려고만 한다. 애초에 '정신적 사랑'이 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갈등하게 되고, 그 사이에 엄마 린다가 '소마 과도 복용'으로 사망하게 된다. 사실 린다는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오랫동안 험하게 살았던 탓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있었고, 알파 계급답게 훌륭했던 외모도 뒤룩뒤룩 살이 쪄서 뚱뚱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악화된 상태에서 다시 '쾌락적인 삶'을 누리다 그만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런 삶을 살다간 린다와는 달리 아들 존은 충격을 받았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의 죽음이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명세계에서는 아무도 존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애초에 가족이란 개념을 경멸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정한 '문명세계'에 반감이 든 존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다 총통의 제지를 받게 된다. 그렇게 마주한 두 사람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데, 이게 이 소설의 '백미'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문명세계'와 '비문명세계'의 개념이 완전히 뒤집혀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는 '문명세계'로 그려졌지만, 사실은 '비인간적인 모습'만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묘사된 곳이 더욱더 '인간적'으로 비춰질 정도다. 존은 총통이 말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인간답게 살겠다고 선언을 하면서 괴로워하다 끝내 목을 매어 죽음을 택하고 만다. 유일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원초적인 슬픔'을 겪고 있는 이에게 위로할 줄 모르는 '비정한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이 평생을 동경하며 살아왔던 '문명세계'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멋진 신세계>가 정말 형편없는 세계라는 사실만 다시금 깨닫게 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이 매력적인 까닭은 분명 '그 세계'가 멋지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세계'를 동경하고 꿈꾸게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녹록치 않을 때 더욱 그렇다. 오늘날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마약 중독'에 빠지게 된 원인이 바로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현실이 너무도 비극적이기에 잠시 잠깐이라도 '행복'을 느껴보기 위해서 마약을 스스로 투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마약이 주는 행복감이 너무 짧고, 비극적 현실에서 헤어날 수 있게 하는 유용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적은 비용'으로 극한의 고통으로부터 '일탈'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마약 투여'밖에 없기에 그렇다. 차라리 소설에서처럼 '부작용'이 없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더욱 끔찍할 뿐이다.

더 끔찍한 사실은 <멋진 신세계> 속에 그려진 문명세계가 바로 철저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밸트 위에서 착착 만들어지는 자동차가 대량생산되고, 그 차가 팔려서 얻은 엄청난 자본으로 풍요로운 부를 창출해낸 세상이 바로 '문명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축된 자본주의의 풍요로움은 '무한한 노동력'이 무제한으로 투입되었을 때 가능한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 세계의 노동계급은 정말로 '비인간적인 형태'였다. 오직 노동만을 위해서 '대량생산(!)'된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가치로 존중받지도 못하고, 오직 노동을 위해서만 소비되다가, 불평과 불만이란 감정이 싹트지 못하게끔 '책과 꽃'을 경멸하도록 세뇌 당하고, 그런 세뇌로도 감출 수 없는 불행함은 '소마'라는 신경안정제로 제거해버린다. 만약 현실 세계의 '노동자'들도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면 정녕 행복할 수 있을까? 두 번 물으면 입 아플 것이다.

또한, 고도로 발달된 과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경각심도 심어준다. 오히려 비윤리적으로 과학의 고도화를 실현시킨다면 '과학적 성과'와는 별개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마저 보여준다. 그렇다고 '과학의 발전'을 임의적으로 멈추게 할 수도 없으니 더욱 황망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멋진 신세계'를 꿈꿔야 하는 걸까? 적어도 이 소설과는 정반대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쾌락 추구'와 '소마'만큼은 탐나지 않을까? 늘상은 아니더라도 아주, 아주 가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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