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자화의 사기 4 : 비상시국에 살아남는 법 ㅣ 장자화의 사기 4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사마천 원작 / 사계절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장자화의 사기 4 : 비상시국에 살아남는 법> 사마천 / 장자화 / 전수정 / 사계절 (2018)
[My Review MMXC / 사계절 14번째 리뷰] 사마천의 <사기>는 술술 읽히는 역사책은 아니다. 유명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쉬이 읽히는 편이지만, 낯선 인물이 나오는 대목에서 어김없이 브레이크가 걸리며 미적거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비단 <사기> 뿐만 아니라 모든 '고전'이 다 그렇지만 말이다. 이 책 <장자화의 사기 4>권도 그런 경우다. 때는 '전국시대 말'에 해당하며 전국칠웅에 해당하는 연, 제, 조, 위, 한, 초, 그리고 진이 서로 '합종'과 '연횡'을 하며 치열한 수 싸움을 할 때는 읽을 맛이 크게 웃도는 편인데, 말기에 접어 들면 '진 나라'가 크게 우위를 잡으면서 나머지 나라들에서 '자충수'를 두는 등 망국의 조짐이 등장하면서 이름조차 낯선 인물들이 나라꼴을 우습게(?) 만드는 짓을 참 많이 저지르고 있는 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책에서 낯익은 대목은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협객 형가' 이야기이고, 진 나라가 멸망하는데 일조했던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의 이야기, 한 고조 유방이 한 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대장군 한신' 이야기와 천하삼분지계의 원조격인 '회음후 한신'이 끝내 한 고조에게 토사구팽 당하는 대목 정도다. 이렇게 죽고 죽이는 이야기 한복판에서 '서로 살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순간'을 한 데 모아 책 제목으로 <비상시국에 살아남는 법>이라고 지어 놓았다.
그런데 이건 좀 의외였다. 무릇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 '비상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것이 나쁠 것이 없다고 여기며 책을 읽어 나갔는데, 읽다 보니 몇몇 인물들은 차라리 죽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국시대'라고는 하나, 저 살자고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키고도 '영웅' 취급을 하고, 그런 영웅 소리를 듣는 양반이 자신이 해야 마땅한 일(?)마저 제 손으로 이루지 못하고, 애꿎은 선비(士)를 꼬드겨서(?) 대신 목숨을 담보로 일을 시키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그들이 과연 영웅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란의 시기'라고는 하지만, 노자와 장자가 말하던 '도덕'이 추락하고, 공자와 맹자가 강조하던 '인의'가 사라져버린 듯 한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통일의 위업을 이루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다. 연 나라 태자 단이 '형가'의 재주를 빌어서 폭군(?) 진시황을 암살하려 든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는데, <영웅>(2003년)이다. 감독 장예모, 주연 이연걸, 양조위, 견자단, 장만옥, 장쯔이 등이 열연했기에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진시황을 암살하려 든 형가를 '협객'으로 볼 것인지, 한낱 '자객'에 불과한 것인지,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시황을 '폭군'으로 본다면 그를 암살하려 한 형가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사를 실행한 의로운 협객일 것이고, 진시황을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위대한 영웅으로 본다면 형가는 시대의 조류를 어그러뜨리는 깡패 같은 자객에 불과할 것이다. 허나 진시황과 형가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인물들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원한이 없는 무고한 관계였단 말이다. 그런데도 왜 목숨을 걸고 죽고 죽이려 만나야만 했던 것일까? 그건 바로 '연 나라 태자 단'이라는 인물이 중간에서 계략을 짰기 때문이다.
진 나라는 연 나라를 토벌하려 했는데 국경이 맞닿지 않아 먼저 조 나라를 쳐야만 했다. 어차피 천하통일을 원했던 진시황에게는 어느 나라를 먼저 멸할지는 '순서'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래서 연 나라는 조 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지켜 함께 싸웠으나 강성한 진 나라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조 나라는 멸망하기 직전이었고, 연 나라도 진 나라와 맞서 싸우길 포기하며 강경한 입장이었던 '태자 단'을 내쫓았던 것이다. 그렇게 쫓기던 처지의 '태자 단'은 진시황 한 명만 암살하면 어그러진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겠다는 염원에 '형가'에게 진시황 암살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해야 마땅한 일을 '부탁'한 관점으로 보아야 옳을까? 아니면, 해서는 안 될 일을 '청탁'한 관점으로 봐야 정당할까? 역시나 진시황에 대한 평가가 앞서야 내릴 수 있는 결단일 듯 싶다.
그런데 사마천은 진시황에 대한 평가는 모호하게 두고서 '주변 인물'에 대한 평가만 옳다 그르다 말할 뿐이다. 중국 최고의 통일 업적을 남긴 탓에 영웅적인 면모를 부정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 나라가 통일왕조로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한 고조 유방에 의해 한 나라가 건국되었으니 '폭군의 이미지'로 낙인을 찍기는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형가에 대한 평가는 '협의'라고 극찬을 했다. 비록 암살에는 실패했으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태자 단의 '요청'을 받고 한 번 맺은 약조를 지키기 위해 아무리 험난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조를 지켰기에 그 '의리'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조로 말했다.
근데 아무리 '의리'를 높게 쳐준다 해도 '국가의 대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에까지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이 옳은 '도리'일지 의문스럽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의리'로 따질 일이지만, 한 나라의 임금을 해치는 일에도 '의리'를 개입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야 '법'이 왜 존재하며, '도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의리'에 충실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져도 '의로운 행동'이었냐만 따지면 될 일일텐데 말이다. 아니 칼 끝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니 힘 쎈 놈이 가장 의로운 사람 행세를 해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의리'가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결코 약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일단 약자가 되면 살아서는 그들과 '정의'를 논하기 힘들고, 죽고 난 뒤에야 겨우 '동정심'을 사는 것이 고작일테니 말이다.
누가 영웅인지 따지는 일은 '기준'이 모호해서는 안 된다. 내 나라 영웅은 '이런' 기준을 삼고, 남의 나라 영웅은 '저런' 기준으로 따진다면 모두가 인정할 '영웅'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마천은 영웅의 기준을 '사건의 원인'에 두고, 그 원인의 옳고 그름만을 따졌으나, 그래서는 '똑같은 사안'인데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으니 모호할 따름이다. 따라서 '형가'를 의리를 다한 협객으로 극존칭을 삼고 싶었다면 무도한 힘을 앞세워 패업을 이룬 진시황을 죽이려 한 형가만 드높일 것이 아니라, 무도한 진시황이 세운 나라를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일찍 멸망하게 만든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도 똑같이 드높였어야 한다. 나쁜 놈이 세운 나라도 나쁜 나라임에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허나 역사를 이런 식으로 다루면 엉망일 게 분명하다. 역사는 '시대의 조류'이고, 일개 백성의 역사를 낱낱이 밝히기보다 '백성의 안녕과 평안'을 좌지우지할 국가의 대사가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그렇게 따지게 될 때의 '기준'도 모두가 공정하다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근거가 타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마천이 '형가'를 평가한 것에 큰 의의를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일개 필부의 '의리'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하의 대세'가 진시황에게 기울었고, 그가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기에 '전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일상의 안정은커녕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먼저 죽여야만 하는 참극을 멈출 수 있게 한 진시황의 업적을 크게 보아야 함이 더 옳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역사는 돌고 돌아 진시황의 대업도 악정을 일삼는 폭군의 행태로 변하고 말았다. 그때가 되어서는 '폭군'을 없애고 억울하게 핍박받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백성을 위해 '난세'를 평정할 새로운 영웅을 찾는 것이 옳은 일이 될 것이다.
케데헌의 한의사가 한 명대사로 마무리 하련다. 병을 낫게 하려면 '병의 원인'을 알아내야 하는데, 그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비상시국'에서 살아남는 법을 논한다면서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일부분'인 인물들의 고사를 늘어놓았다. 물론 대세를 읽어낼 줄 아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허나 현자가 팔을 들어 가리킨 '달'을 볼 줄 모르고 '손가락'만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을 뿐이라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요즘 같이 어지러운 시국에서 '진정한 영웅'이 누구이고, 그 영웅이 나아가는 길을 청소는 못해줄망정 딴죽은 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웅이라 지칭해서 꼭 한 사람만을 떠올릴 것은 없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영웅은 언제나 '위기 때마다 강한 모습을 보여준 위대한 국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위대한 국민들이 만들어가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영웅들이다. 제발 이런 위대한 국민들이 나아가는 길을 더럽히고 걸림돌이 되는 짐스런 분들은 제발 좀 자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