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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무대에 오르다 ㅣ 이사도라 문 시리즈 10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0년 10월
평점 :
<이사도라 문, 무대에 오르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0) [원제 : Isadora Moon Puts on a Show(2019)]
[My Review MMLXXXIV / 을파소 11번째 리뷰] 뱀파이어 무도회가 열린단다. 이사도라 문의 아빠가 무척 기대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1년 중 가장 밤이 긴 달밤에 개최되는 무도회인데, 올해는 무척 특별하다. 바로 아빠의 딸 이사도라가 처음으로 참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특별한 까닭은 올해는 '개기 월식'이 있는 '붉은 달'이 뜨는 밤이기 때문이다. '레드 문'이라고도 불리는 개기 월식은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완전히 가리는 때에 일어나는 천문현상이다. 이때는 달의 고도가 가장 낮기도 하고, 밝게 떠오르는 보름달이 가장 낮게 뜨는 바람에 서양 사람들은 가뜩이나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달밤인데, 한밤중에 그 달이 점점 가려져서 흐릿하게 보이니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하지만 태양에 비해 지구가 턱없이 작기 때문에 '반그림자'에 의해서 완전히 빛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흐릿하게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가려질 때보다 완전히 가려졌을 때 '더 붉게' 빛나 보인다.
이런 달밤이니 뱀파이어들이 무도회를 연다고 해도 지나친 상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레드 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사도라 문'이 더 중요하다. 난생 처음 참가하는 '뱀파이어 무도회'인데, 그 대회에 참가한 뱀파이어들은 '무대' 위에 올라 장기자랑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설명에 이사도라는 흥분 반, 걱정 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아빠와는 달리 '뱀파이어 요정'인 이사도라가 가장 잘하는 특기는 '발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도라는 뱀파이어 무도회에서 '발레 공연'을 보여주려 했는데, 아빠는 뱀파이어들은 그런 공연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칼로 자르듯 단호하게 조언하자 이사도라가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사도라는 안중에도 없이 아빠는 자신이 어릴 적에 했던 장기자랑을 자랑 삼아 늘어놓았다. 200명이나 되는 관중 앞에서 아빠는 뾰족한 이빨을 잘 닦는 요령을 보여줘서 상을 탔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오, 정말이지 안 될 말이다. 이사도라는 그런 공연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다른 장기는 없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가문의 보물을 꺼내더니 이사도라에게 건내준다. 바로 '머리빗'이었다. 그 빗으로 머리카락이 흩어지지 않게 잘 빗으면 뱀파이어들이 자신에게도 깔끔하게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비결을 물어 올 것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뱀파이어들은 원래 깔끔한 몸단장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이제 이사도라는 체념을 했다. 뱀파이어 무도회에서 '발레 공연'을 보여주었다간 망신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런 공연 준비도 하지 않고, 할 의욕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빨 닦기나 머리 빗기 따위는 연습할 필요도 없는 공연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무도회 날이 되었지만, 이사도라는 어깨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뱀파이어 요정인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요정'처럼 우아하게 무대를 누비는 발레 공연이었지만, 아빠의 말씀대로라면 뱀파이어들은 그런 공연을 절대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으리으리한 무도회장에서 우연히 아라민타라는 여자아이가 '발레 복장'을 하고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여자아이도 '발레'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이 발레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양이라고 이사도라는 짐작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놀랍게도 아빠가 '인간'인 뱀파이어 휴먼이란다. 그리고 '인간'처럼 아름답게 발레 춤을 추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우연히 만나서 '사고'를 칠 계획을 짠다. 뱀파이어들이 아무리 발레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발레'를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까짓 것, 최악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즐겁고 신 나는 '발레 공연'을 보여줄 뿐이고, 이사도라와 아라민타는 아름다운 춤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무대 위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라민타와 이사도라는 모든 뱀파이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최고의 발레 공연을 보여주었다. 과연 관중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가끔은 '자신의 재능'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이 뜨뜨미지근한 경우도 간혹 마주 하게 된다. 그럴 때에는 어떡해 해야 할까? 엉엉 울면서 무대를 망쳤다고 속상해 해야만 할까? 아니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탄을 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럴 필요도 없다. 자기만의 재능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기에 아주 소중하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면 가치가 높아지고, '비난'을 받으면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면 '나만의 재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밖에 없기에 '특별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 특별함을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면, 그들이 아직 재능을 이해하기에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인정'을 받기에 자신의 실력이 조금 미흡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좀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고, 특별한 재능이니만큼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방법도 있다. 때론, 펼쳐보인 재능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건 '특별한 재능'이긴 하지만, 남들 앞에서 보여주기 민망하거나 부적절한 재능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에는 '특별한 재능'을 남들 앞에서 함부로 보여주어선 안 된다. 거듭해서 비난을 받는다면 더욱더 그렇다. 정말 그렇다면 '비난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부적절한 부분을 '고쳐서' 다시금 재능을 뽐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재능'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재능에 '자신감'을 더하면 재능이 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다. 만약 '부적절한 재능'이라서 비난을 받았다면, 부적절했음을 솔직히 사과하고, 적절하게 고쳐서 재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재능은 없다'는 것이다. 재능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노력의 문제'이고, '실력'은 갈고 닦으면 반드시 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떤 재능이라도 마음껏 뽐내며 자랑으로 삼으면 된다. 이때 비로소 '자존감'이 우뚝 서게 된다. 이사도라가 뱀파이어 요정으로서 발레 공연을 뽐낸 것처럼 말이다. 다른 뱀파이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절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