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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 김선희 / 다른 (2015) [원제 : Excellent Sheep (2014)]
[My Review MMLXXVI / 다른 2번째 리뷰] 어쩌다보니 근래에 쓰는 리뷰들이 죄다 '절판'인 책이다. 애초에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뭐 그렇다고 '최신판'의 책을 리뷰한다고 주목 받을 일도 없을 테니, 딱히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좋은책'은 언제고 다시 꺼내 읽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 책 <공부의 배신>은 부제가 더 인상적이다. 최고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하버드생'을 바보 취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은 '교육'에 대한 비평이 담겼다. 그리고 우리는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만큼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의미다.
이미 2002년에 출간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다치바나 다카시, 청어람미디어)에도 비슷한 제목이 적혀 있어서 내용도 비슷할 것 같았지만, 크게 달랐다. 다카시는 일본 최고의 성적을 자랑하는 동경대생이 '현대교양'의 태부족으로 인해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헛똑똑이가 된 현실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최고의 성적을 자랑하는 뛰어난 인재이지만, 실상은 '시험문제 잘 푸는 기계'에 불과하고, 기본적인 상식 수준에서는 초등학생보다 못한 비인간적(?)인 실태를 고발한 책이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당시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서 공부하던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교양의 차원'에서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통섭적인 교양을 쌓아나가는 것을 당부했다.
이에 반해 <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에서는 '명문대'를 졸업해서 '엘리트 집단'에 소속되어 '사회 권력층(기득권층)'을 형성해서 자기들 '소속 집단'의 무한 이기주의를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실태를 고발하면서, 오늘날 미국사회가 민주사회에서 퇴보하고 되려 '귀족사회(?)'로 회기하려는 사회분위기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잘난 사람이 저들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명문대'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한 것에 대해서 비난할 것은 없다. '경쟁 사회'에서 경쟁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경쟁 사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쟁에 패배한 약자'들의 하소연(?)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도 상당 부분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니 경쟁에서 패배하고 징징거리는 찌질이가 되지 말고, 실력을 발휘해서 '승자'가 되어 당당히 '승자의 권리'를 누리며 살 생각을 하라는 이야기가 더 솔깃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말이다. 애초에 그 '경쟁'이라는 것이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방법에 근거하고 있다면 어떨까? 소위 '명문대 교육'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중추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계급적 사회'를 지향하고, '계급 사회'를 고착화 시키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면, 과연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명문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그 치열한 경쟁 시스템을 이겨내고 사회 지도층에서 활약을 하면서 '학창 시절'에 배웠던 내용이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끼고, 실상 '명문대 교육'이라는 것이 너무도 공허한데, 학생 때에는 왜 그토록 죽어라 공부를 강요(?) 받았는지 알 수 없다고 소감을 쏟아내고 있다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난 뒤에야, 그 '과도한 경쟁'과 '치열한 교육'을 강요받은 사실이 '특권의식'을 갖게 만들고, 그 '특권을 세습하려는 엘리트 집단의 무한 이기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우리 교육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좌절감마저 들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똑똑한 양(Excellent Sheep)'이다. 무려 '하버드'를 졸업한 출중한 인재들을 순종적인(?) 양떼에 비유하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명문대'에서 뭘 배웠기에 그들은 불의에 저항하길 포기한 '순종적인 양'이 되고 만 것일까? 사실 엘리트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다. 똑똑해서 능력이 출중한 것 같은데 '사회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저들만의 특권을 지키는데에만 그 똑똑함을 허비하는 멍청이(!)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비단 이런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만 드러나는 현상도 아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의 상류계층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비리(!)였기 때문이다. 아니, 비단 '선진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후진국'에서는 더 심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똑똑한 양'이 되어 할 줄 아는 일이 '특권계층'끼리 교잡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식들도 '명문대'에 입학해서 똑똑하지만 순종적인 양이 되길 기꺼워 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쌓은 부와 명예(?)를 대대손손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문대'에서 특별한 것을 배울 필요도 없고, 가르칠 이유는 더더군다나 없게 되었다. 저들이 원하는 바는 '아무나' 입학할 수 없는 '명문대'를 유지해서, 그곳을 졸업한 것만으로도 부와 명예를 손쉽게(?) 거머쥘 수 있는 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문대'를 졸업한 똘똘이(!)들 치고 제대로 된 인재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런 '저항정신'으로 가득 찬 학생을 졸업 시킬 의도조차 없게 만드는 것이 우리 교육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셈이다.
이런 '명문대'가 천지빼깔이라는게 이 책이 강조하는 바다. 이런 실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고강도의 학업'을 수행하고서 얻는 것이 고작해야 공허감과 허무함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도대체 졸업한 뒤에 써먹지도 못할 지식을 머릿속에 억지로 집어 넣는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야만 하는가? 왜 학교는 학생들에게 '순한 양'이 되길 원하고, '과도한 장애물'을 설치해서 딴 생각(!)조차 할 여유를 주지 않는가 말이다. 마치 '1등급 목장'처럼 순종적인 양떼를 대량생산해내기 위해서 대학 당국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학생들은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공부와 성적에만 내몰려 씨름하게 만들 뿐인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길들여진 '순한 양'을 우수한 졸업생으로 명문대생을 배출해낸 뒤에 '엘리트 집단'에 소속된 일원으로 잘 적응하게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일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나라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집단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보란 말이다.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비상계엄'조차 함부로 선포하고, 그런 무도한 비리를 덮기 위해서 모든 '국가 시스템'을 총동원해서 비리를 감추려 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국가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려 했고, 국가가 파탄이 나서 전쟁이 벌어지고 온 국민들의 안정적인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어 버려도, 저들 집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들만 살 궁리'를 하고 있었지 않느냔 말이다. 지금의 미국사회도, 일본사회도 마찬가지다. 아니, 전세계가 이런 '헛똑똑이'들을 엘리트라고 철떡 같이 믿고 있고, 그들이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를 일삼는 '엘리트 집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 정상화'를 어떻게 해야 이런 비인간적인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일수록 '엘리트 집단'에 의지하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지 않고, '몰상식한 짓'을 부끄럽다고 여기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테지만, 과연 그런 교육을 어떻게 시킬 수 있단 말인가? 부와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 그들인데 말이다. 그저 그들의 양심에만 맡기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적어도 '민주사회'의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추고 있다면 결코 그런 지식인들을 방치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리더 교육'이 아닌 '시민 교육'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오늘날의 민주사회에서는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시민 교육'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벌 사회'가 심화되면서 이런 '시민 교육'은 퇴색하고, 저들만의 세상을 구축할 수 있는 '리더 교육'에 매진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특권의식을 교묘하게 심어주기까지 한다.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확실한 경험이 바로 '명문대' 입학과 졸업이다. 대학에 서열을 매기고, 그 서열 순위에서 가장 높은 '탑클래스'에 올라서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쟁취할 수 있다는 환상(?)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자행하는 꼴이다. 이것부터 타파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경쟁'을 혁파의 대상으로 삼고, '평준화' 시키는 것으로는 발전은 고사하고 퇴행하게 만들 뿐이다. 경쟁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경쟁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모든 것을 누릴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시민 교육'이다. 아무리 잘났어도 '시민이 누리는 권리'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얻은 성과도 인정하고 맘껏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주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혜택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결격사유가 없는 것'이어야 한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일체의 것을 허락치 않고, 만약 부도덕적인 것을 특권처럼 누리려 한다면 뭇매를 달게 맞아야 함을 각인시켜주는 '도덕 교육'을 더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양의 선진국들이 동양사상 가운데 '유교'에 관심을 두는 까닭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사상에서 저들이 겪고 있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려 하고 있는 셈이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그런 언급은 전혀 하고 있지 않지만, '엘리트주의'가 몰고 오는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럴해저드'를 혁파할 수 있는 사상적 대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데에는 공감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의 교육 문제에 깊이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훌륭한 교수와 현명한 학생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힘들게 한 '양심고백'이 헛되지 않았다는 응원이라도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