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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자풍 1 - 쾌자 입은 포졸이 대륙에 불러일으킨 거대한 바람 ㅣ 쾌자풍 1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쾌자풍 1 : 쾌자 입은 포졸이 대륙에 불러일으킨 거대한 바람> 이우혁 / 해냄 (2012)
[My Review MMLXXV / 해냄 3번째 리뷰] 리뷰가 많이 늦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근래에 지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는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더위'를 먹은 탓인지 좀처럼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읽는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기도 했고, 암튼 그랬다. 덕분에 한 일주일 가량 'K-POP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만 줄기차게 보고 또 보았다. 헌트릭스의 '골든'과 '테이크 다운', 사자보이즈의 '소다팝'과 '유어아이돌'만 온종일 흥얼거리며 멍 때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벌써 한 달 내내 그러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이우혁의 역사소설(?) <쾌자풍>이다.
뭐, 이우혁 소설을 리뷰하면서 <넷플릭스>에서 대박을 터뜨린 '케데헌'을 이야기하는가 싶지만, 묘하게 '연관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직접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의 '정서(?)'가 비슷하면서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무엇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충(忠)'과 '의(義)'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뭔가 감이 오시는 분들이라면, 국가 차원의 문제가 발생하고 '국가 위기'에 당면했을 때,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충'을 앞세워서 개인적인 희생이 따르더라도 일단 '국가의 위기', 달리 말해 '모두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일치단결 하는데 반해서, 중국인들은 국가적인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그것이 '개인적인 의리'와 연관이 없으면 일단 '나몰라'라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면하고 난 뒤에야, 홀연히 등장한 '영웅(?)'이 있어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는 희생적인 모습을 재확인(!)하고 나면, 그때서야 '의리'를 내세우며 단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미묘한 차이가 '제삼자(특히,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인'과 '중국인'은 명백하게 그 차이점을 알아채고, 서로를 구분할 수 있고, 그 미묘한 차이점 때문에 한국인과 중국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도대체 '충성'과 '의리'의 차이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충신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변치 않고', '흔들림 없는' 꼿꼿한 성정을 떠올린다. 이는 동아시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잘 보여주듯 죽으면 죽었지 '불충'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불명예로 생각한다. 허나 중국인들은 왕조가 짧고 자주 바뀌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처럼 꼿꼿한 성정의 충신 이미지를 찾기가 힘들다. 그보다는 '실리'를 따지고 '개인적인 의리'를 따지면서 그때, 그때에 따라서 '다른 말(?)'을 내세우는 등, 우리가 보기에는 충신치고는 변덕이 죽 끓듯 하다 싶은 사람조차 '충신'이라고 하는 등 쫌 그렇다. 대신에 '의리'를 앞세우다보니 누군가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펴며 헛소리를 지껄여도 그런 의리(?) 지켜야 중국인답다는 것인지 모를 엉뚱한 모양새를 보이기도 한다. 뭐, 극단적이긴 하지만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만물중국기원설' 같은 것들이다.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막무가내 식의 '억지주장'을 곧이 믿을 사람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어떤 중국인이 그게 맞다!'고 억지주장을 한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맞다!'고 동조하는 것이 최고(?)의 '의리'라고 여겨서 13억 중국인이 한 목소리도 '헛소리'를 주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걸 보는 중국인들은 대다수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조금만 생각을 하면 '틀린 주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일단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중에 '수정'을 하든, '사과'를 하든, 그건 나중일이고, 일단은 중국인끼리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틀린 것을 알면서도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 싶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팩트폭격'을 날리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틀린 건 틀린 거고, 맞는 건 맞다고 '옳은 소리'를 곧잘 한다. 그리고 이런 한국 사람들의 성향은 '충성'에 충실한 모양새를 잘 보여준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절대 '충성'을 다하고, 옳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 성정이야말로 '한국인답다'고 할 수 있다.
암튼, 요즘 '케데헌'이 인기몰이를 하며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문화'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무슨 일에서건 '충성'을 다하는 한국인의 문화가 전세계인들의 눈에 보이게 참으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에 반해서 '의리'에 따르며 경우에 따라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스런(?) 중국인의 문화에는 공감하기 힘들어하고, 더 나아가 '억지주장'을 하면서까지 한국문화를 깎아내리려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한국문화'가 원래는 '중국의 것'이었다면서 은근슬쩍 숟가락 얹으려는 속셈을 뻔히 드러내고, 심지어 '중국의 것'을 빼앗아(?) 갔으면서도 중국에 고마워하지도 않는 '한국사람들'이 너무 뻔뻔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고 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도 당한 서양인들조차 중국인들의 뻔뻔스러움과 억지주장에 두손 두발을 다 들고 만 모양이다.
자, 그럼 이제 이 소설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저자가 밝혔듯이 이 소설은 '무협소설'이 아니라 '역사소설'이라고 한다. 역사적인 사실(팩트)에 허구적인 '픽션'을 가미한 '팩션 소설'이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시대배경'은 15세기 명나라에서 벌어진 '탈문의 변'을 주요 사건으로 삼았다. '탈문지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서 벌어진 '토목의 변'을 알아야 할 것이다. 1449년 명과 몽골(오이라트)이 전투를 벌였는데, 당시 명 황제였던 '정통제'가 간신 왕진의 말에 속아 전투에 참전했다가 50만 대군이 몰살을 당하고 황제인 '정통제'마저 포로로 잡혀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이 일을 '토목보'에서 벌어진 사건이라하여 '토목보의 변', 줄여서 '토목의 변'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황제가 포로가 된 상황에서 명나라는 몽골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정통제를 앞세우고 몽골군대가 북경으로 밀고 온다면 명나라 군대가 아무리 많더라도 '황제의 목숨'을 두고 어찌 반격이라도 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명나라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신세였다.
그런데 이때 충신이 등장해서 사태를 수습했으니, 다름 아니라 '새 황제'를 내세워서 포로로 잡힌 정통제를 대신하게 한 뒤에, 몽골군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새 황제가 바로 정통제의 이복동생인 '경태제'다. 몽골군은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굳건히 북경을 수비하는 명나라 군대에 막혀서 더이상 진군하지 못하자, 쓸모가 없어진 '정통제'를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명나라로 되돌려 보낸 뒤 철군하고 만다. 그래서 명나라는 졸지에 '황제'가 두 명이 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에 경태제를 옹립한 충신은 정통제를 '상황'으로 삼고 폐궁시켜 버리지만, 병약했던 경태제가 제위 8년만에 큰 병에 걸리자, 이를 기회로 삼은 정통제가 경태제를 폐위시키고 다시 황제에 자리에 등극해버리고 만다. 이때가 1457년이었고, 이 사건을 '탈문의 변'이라고, 새로 연호를 '천순'으로 내거니, 그가 바로 '천순제'다. 한 명의 황제가 '정통제'와 '천순제' 두 차례나 황제의 자리를 앉게 된 셈이다. 이런 사태를 맞아서 명나라의 조정에는 어떤 파문이 일었겠는가?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모'를 한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고변하는 일대 파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암튼, 이때 명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충신이 바로 '우겸'이란 인물이다. 허나 천순제는 '우겸의 공'을 높이 사기에 앞서서 자신에게 '의리'를 져버렸다고 하여 황제에 재등극하고 난 뒤에 바로 처형시켜 버린다. 만약 천순제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우겸을 높이 평가하고, 청렴결백하고 사심 없었던 신하의 충심을 높이 평가하기만 했더라도 명나라는 큰 혼란을 겪었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기강을 바로 잡아 태평성대를 누릴 수도 있었겠지만, 간신에게 놀아나던(?) 똑똑치 못한 임금이었던 '정통제'였기에, '천순제'도 변변치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왕조시대에 '두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 것을 곱게(?) 봐줄 수는 없는 일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는 이런 역사적 관점을 두고도 한국인과 중국인의 '인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통제와 경태제라는 '두 명의 임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명'이라는 나라가 맞이한 어려움을 해결한 것에 초점을 맞춰서 '국난극복'의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를 불충이라 여겨서 우겸을 충신 중의 충신으로 평가하겠지만, 중국에서는 아무리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불충'인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의리'적인 관점에서도 정통제를 버리고, 경태제를 내세운 행위의 부당함을 내세워 처형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평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정난과 반정의 역사'를 봤을 때, 두 임금을 섬긴 이를 '충신'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허나 계유정난의 공신들이나 인조반정의 공신들 가운데 '국가에 끼친 손익 평가'를 거쳐서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리고 이런 평가에 있어서 '개인적인 의리'를 당연히 고려사항이 아니다. 오직 '국가를 위한 우국충정'만을 평가의 잣대로 삼을 뿐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에는 이게 좀 애매한 예가 많은 모양이다. 뭐, 중국에서는 그런 '잣대(기준)'가 일반적일 수는 있겠지만, 한국인의 기본 잣대로 보면 전혀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고평가되고나, 정반대로 저평가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저자 이우혁은 이를 <쾌자풍>의 소재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조선의 포졸 복장인 '쾌자'를 입고서 대륙에 거대한 바람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이다. 뭐, 1권의 내용에서는 아직 '대륙'으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상황이고 '변죽'만 잔뜩 늘어놓은 지루한(?) 장황설로만 가득했다. 특히 조선 평안도 위화 고을의 포졸 '지종희'의 성격 묘사가 이야기의 2/3를 차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특별한 능력이 있지는 않지만 중국의 무술 고수를 단 한 번의 몽둥이질로 제압해버리는 실력(?)을 선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자도 익히지 못하고 <소학>을 겨우 땐 까막눈(?)이지만 모국어인 조선말을 비롯해서 '북경어', '여진말', '몽골말' 등등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천재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이렇게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지 포졸'이 벌이는 일대 사건들마다 일사천리로 풀어내는 '해결사'의 면모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종 잡을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착한 성정을 지닌 캐릭터다. 그렇다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냐 싶으면, 하는 말마다 '쌍욕'을 달고 살고, '품행' 또한 날건달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도 않는다. 쉽게 말해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대책 없는 왈패 기질을 타고 났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망나니 같은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지만, 절대로 '국익'을 해치는 범죄나 '형제'들에게 누를 끼치는 짓을 저지르는 일은 극도로 조심하고 다닌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선'을 넘지 않는 아슬아슬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아니라 '그 이하'의 행동을 일삼는 천덕꾸러기라고 보면 딱 좋을 인물이다. 암튼, 그가 벌인 말썽 때문에 '지 포졸'은 조선을 떠나 중국 명나라에서 막중한 임무를 띠고 활약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2권에서부터 본격적인 '대륙적 활약'을 선보여줄텐데, 크게 기대는 안 하련다. 하는 짓거리가 대략 난감할 것이 뻔해서 말이다. 그래도 결코 부끄러운 짓은 절대로 하지 않으며 '선'을 분명히 지키면서도 '묘수와 꼼수'를 오가며 대대적인 활약을 펼쳐보일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