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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 매니악 2
이우혁 지음 / 미컴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파이로 매니악 2> 이우혁 / 미컴 (1998)
[My Review MMLXVII / 미컴 2번째 리뷰] 괴물과 맞서 싸우려면 '선한 의지'만으로는 역부족인 경우가 허다하다. 악에 물든 세력들은 규칙도, 제약도 없이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해 대는데, 그에 맞서 싸우는 선한 세력은 온갖 제약과 규칙을 다 지키며 싸우다가는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처 맞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물 같은 놈들과 맞서 싸울 때에는 점잖은 방법만으로는 대항하기 힘든 법이다. 그래서 정의의 편에 섰더라도 종종 '괴물과 맞먹는 가공할 힘'을 발휘하여 괴물을 때려 잡는 강한 힘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러다 괴물 때려 잡은 힘으로 인해서 '스스로 괴물'이 되고 마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괴물을 잡으려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파이로 매니악>에서 동훈과 영은 한국사회에서 '암적인 존재'를 타겟으로 삼아 정교하게 만든 폭약으로 '천벌'을 내리는 일을 한다. 2편에서는 '종교'라는 이름을 내걸고서 신도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으면서 대외적으로는 '사회부적응자'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김석명을 처단하는 내용을 골자로 보여주었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에서도 폭로 되었던 내용이기도 하고, '형제복지원 사건'도 그렇고, '사이비교주'들이 판을 짜고서 우리 사회에서 정말 파렴치한 행태를 많이 보여주었는데, 이 책에서도 바로 그런 '나쁜 놈'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죽여야 속이 시원할 정도로 나쁜 놈이었기에 '잘 죽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우혁 작가는 그런 나쁜 놈을 처단하는데에도 속시원하고 통쾌하게 죽이는 장면은 연출하지 않았다. 98년이면 IMF로 온 나라가 침울하던 시기였고, 많은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며 나라 살리기에 여념이 없을 때에도 '환차익' 같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제 잇속'만 챙기는 나쁜 놈들과 정부의 경제정책을 악용해서 공공의 이익을 해치고 '고급 정보(?)'를 빼돌려서 개인적인 이득으로 착복하거나, 뇌물과 다를 바 없는 금품과 향응을 제공 받고서도 '고위공직자'로 떵떵거리며 잘 살던 나쁜 놈들이 판을 치던 시기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러니 그런 놈들을 좀 '허구적인 상황속'에서나마 속시원하게 처벌을 받고 처단을 해버렸으면 얼마나 통쾌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이우혁 작가는 그런 '나쁜 놈'을 죽이고서도 개가를 올렸다며 기뻐하지 않고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면서 부끄러워하는 주인공을 만들었다. 이게 정말이지 <파이로 매니악>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독자적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메이는 장면을 마주한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렇다면 정반대로 '(폭탄)방화 전문가'인 주인공이 죽어 마땅한 '사회의 악'을 통쾌하고 시원하게 천벌을 내리는 장면으로 묘사했다면 어땠을까? '종교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복지가가 '보육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을 노예보다 못한 처우를 하며 노동착취를 하며, 어두운 밤이 되면 그렇게 수용된 사람들 가운데 예쁘장하고 반반한 어린 소녀들을 희롱하고 집단성폭행을 일삼던 놈들을 잡아내어서 팔다리를 절단 내고, 아가리에 폭탄을 물게 하고서 대가리가 곤죽이 되어 날려버리고, 시신조차 남지 않게 한데 묶어다가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서 산 채로 불을 질러 고통스럽게 죽여버린다고 쓴다면 말이다. 그렇게 나쁜 놈만 골라서 싹 다 죽여버리고 피해자들을 구출을 해서 유유히 법망을 피해서 사라지는 장면을 연출한다면 당장은 속시원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스토리를 써나갔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스포츠신문 연재소설'에 불과한 B급 취급을 받고 말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퇴마록>도 악령을 퇴치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서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이고 때려 죽이는 것에만 열중했더라면 그저 그런 'B급 퇴마소설' 취급을 받거나 '좀비 소설'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다. <퇴마록>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파이로 매니악>도 괴물을 잡기 위해서 스스로 괴물이 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대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훈과 영은 정말로 나쁜 놈들을 죽이는 '영웅적인 일'을 했음에도 사람을 죽였다는 무거운 죄책감에 빠져들며 스스로를 '죄인'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한 '죄수'들을 처단했다는 옳은 일을 했음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죄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구토>에서 보여준 '구토감'과도 궤를 같이 한다. '구토'를 해야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실존 문제를 다룬 것처럼 <파이로 매니악>에서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폭탄방화'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구토를 할 수밖에 없는 '역겨움' 일이 분명하며, 영웅 심리에 도취되어서 저지른 일이라고 자부하기에도 너무나 파괴적인 살인에 불과하기에 스스로를 '죄인'처럼 대하면서 너무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뱃속을 깨끗이(?) 비우는 구토를 하고 만 것이다. 물론, 비록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죄수들'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앗아 죽게 만든 장본인이면서 '삶의 연장'하겠다는 먹는 행위를 할 수는 없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런데도 너무 과한(?) 죄책감 표출에 '고구마'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어떻게 조금만 가벼울(?) 수는 없었던가?
한편, 'P.M.'을 쫓는 추격팀인 윤 검사, 박 실장, 닥터 정, 김 중위로 이루어진 '시저(가위)팀'은 점점 수사의 포위망을 좁혀 간다. 처음엔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모습만 보여주더니, 드디어 'P.M.'이 세 남녀로 이루어졌으며, '실종자' 가운데 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까지 '확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제 3편에서 'P.M.'을 체포하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수사종결'이 되면서 이야기가 끝을 맺게 될 것인가? 아니면 '체포'까지는 성공하지만, 그 이후에 '공공의 적들'을 처단하기 위한 새로운 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열린 결말을 맞을 것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P.M.'의 뱃속에 든 시한폭탄이 있기 때문에 그 결말에 대해서 궁금증이 솟아난다.
이렇게 '소설의 결말'에 대한 궁금증은 생기는데 반해서 범인을 잡으려는 '수사팀'에 대한 애정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정의의 세력인데도 크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윤 검사'라는 이름부터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름도 전혀 다르고, 수사하는 스타일도 전혀 다르지만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장면에서 '검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우선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박 실장이라 불리는 '공무원'도 일하는 스타일이 '안기부 직원'을 연상케 한다. 철두철미하고 용의주도한 일 잘하는 성실한 공무원 역할을 맡았을 뿐인데, 그게 '무고한 사람'을 강제구금하고 수사하던 스타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거기다 '닥터 정'은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의사인데 '여성도 얼마든지 일 잘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혼'도 불사할 정도의 당당한 커리어우먼을 연출하고 있는데, 이게 20세기말에는 멋진 여성을 보여주는 행동일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리 멋져 보이지 않고 '독단적이고 고집불통'의 출세지향적인 워커홀릭 여성처럼 보여서 아쉬웠다. 더구나 '윤 검사'의 전 부인이기도 했다. 이혼 사유는 가부장적인 '윤 검사'의 여성에 대한 고지식한 인식이 원인이었지만, 정작 윤 검사는 그런 '닥터 정'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설정이 좀 구태의연했다. 그리고 김 중위도 '출세지향적인 인물'로 등장하는데, 어릴 적 보육시절에서 불우한 시절을 보낸 탓에 자격지심이 좀 강한 타입인데다, 우연한 사고(?)이긴 했지만 '화약공장 사장'을 죽여버린 과거를 숨기고 있으며,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종종 등장하고 있어, 정신분석학적으로는 환청이 들리는 '조현병 증세'로 추정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캐릭터다. 뭐, 이런 수사팀인데...좀 뭐랄까? 캐릭터들에 애정이 생기지 않아서 그저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P.M.'은 체포가 될 것인가? 다음 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