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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아이
안노 미쓰마사 지음, 황진희 옮김 / 한림출판사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 안노 미쓰마사(安野 光雅) / 황진희 / 한림출판사 (2019)
[My Review MMLVIII / 한림출판사 3번째 리뷰] 안노 미쓰마사는 20세기 일본의 미술 거장으로 알려졌지만, 교육에도 크게 관심이 많아서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미술 교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교사를 그만 둔 뒤에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집필한 것으로도 유명하단다. 그가 그린 <이상한 그림책>(비룡소, 2006)은 '글자'가 하나도 없는 그림책으로도 유명하지만,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기법을 착안해서 그림책을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단다. 전쟁의 먹구름으로 암울했던 패전 뒤의 일본 어린이들에게 '교과서'조차 마련하지 못한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이 습득한 '지식'에 근거해서 참교육을 실현시키려 애쓰던 교육가로도 알려져서 일본에서는 꽤나 유명한 인물이며, 서양 미술계에서도 '일본의 거장'으로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미술가이자, 교육가란다.
그래서 그가 쓴 이 책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는 굉장히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교육적인 내용'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 대부분이고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라 아쉽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쓴이가 무려 1926년 생이라서 그렇다. 무려 100년 전 사람이 쓴 참신한 내용이라, 그가 주장하는 '어린이교육'에 대한 참신한 시선은 모를 것이 없을 정도로 다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어린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고이니, 어른들(특히, 선생님과 학부모)은 좀 빠져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나가는 즐거움을 익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는데 가장 좋은 학습법은 다름 아닌 '놀이를 통한 공부'라면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웃고 떠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주장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 아닌가?
문제는 그 방법이 정말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데, 그 방법으로 '최적의 학습법'을 터득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성장하기까지 성공한 예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대한민국 교육도 그렇지만 일본도 아이가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없기로 유명하다. 나이가 차면 '학년'이 올라가야 하고, 학습역량이 부족한 학생이 있다면 '보충수업'이라도 해서 억지로 학습수준을 맞춰서 진학을 시키며, 공부 재능이 없는 학생은 교사도 포기(?)하고 그냥 조용히 지내다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는(?) 불성실한 교육체계로 뭇매와 질타를 받기 일쑤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는 결코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거의 드물고 선천적으로 이미 터득하고 있는 천재가 아닌 이상, 스스로 학습법을 시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갖기까지 제대로 된 학습방법은 없다시피한 게 안타까운 교육 현실이다.
왜냐면 교사나 학부모의 '학습 개입'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아이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을 때도 아이가 그림 속에 푹 빠져서 헤엄을 치며 놀다가 '이건, 저기에서 봤던 거고, 저건, 여기에서 봤던 건데, 이런 원리가 담겨 있었구나'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전에, 선생님이 먼저 "여러분, 14쪽을 펼쳤나요? 거기에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죠. 이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힌트는 바로 '물 속에 사는 동물'이에요. (3초 후) 모두들 찾았나요? 아직도 찾지 못했다면 그림책을 뒤집어서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찾았죠? 맞아요. 깊은 숲 속 그림인데 그 속에 '고래 한 마리'가 숨어 있었어요. 다 찾은 학생들을 위해서 모두 박수 짝짝짝! 자, 이제 다음 쪽에서 또 찾아볼까요?" 한정된 수업시간(40분 정도)에 2~30명이나 되는 학생들에게 똑같은 '학습진도'를 나가고, 똑같은 '학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란 것을 십 분 공감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법'을 터득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 가운데 몇 명이라도 이 수업을 한 뒤에 '그림책 속에는 우리가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미지의 지식세계'가 담겨 있으니 그걸 찾기 위해서 충분히 깊이 생각하는 공부습관을 들여야 해. 그리고 보는 시선에 따라서 잘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니까 '다른 시선'으로 보려는 시도도 충분히 해야지. 그럼 나중에는 선생님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공부라는 건 정말 재밌는 거잖아ㅎㅎ' 이란 생각을 하는 어린이가 생기겠냔 말이다. 더구나 '공부가 재밌다'는 것까지 터득한다고? 정말 꿈 같은 일이다. 학부모들은 더 가관이다. '자기 눈(어른의 시선)'에 보이는 것을 아이가 찾으면 대만족을 하고, 그렇지 못하면 '대실망'을 하면서 아이 앞에서 천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가 얼마 텀을 두지도 않고서 바보라고 근심걱정을 늘어놓는 바람에 자녀들이 '스스로 학습법'을 터득하기도 전에 엄마의 예민함에 '경기'부터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엄마에게 혼난다는 '경험'만 잔뜩 길러주어서 자녀가 공부를 더 좋아하기는커녕 점점 더 싫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위인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부터 특출한 성향을 보여주었다가 아니다. 대개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가 더 많고 어떤 '특별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평생을 그 일에 매진을 하다가 세계적인 위업을 달성한 위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맹신하여 소중한 제자나 자녀를 망쳐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않길 바란다. 그나마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경험'을 많이 겪었다는 점이다. 물론 '직접 경험'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교적 짧은 어린 시절에 남들보다 월등히 많은 경험을 축척하려면 '독서(간접 경험)'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은 모든 어린이가 '위인'이 되지는 않지만, 세상의 모든 위인은 수많은 책을 읽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코 틀린 얘기가 아니다. 더구나 세계 명문가로 손꼽히는 집안에서는 '특별한 서재'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참 많다. 어린 시절에 그 서재에서 온갖 영감을 얻었다가 어른이 되어서 특출난 업적을 남겼다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위인전'에 소개되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런 서재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토마스 에디슨의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빌려다 읽었다고 소개하곤 한다. 특히 '에디슨 독서법'이라고 해서 A부터 시작해서 책장에 꽂힌 책을 순서대로 모두 읽어재끼는 독서법은 지금도 유명하기도 하다. 물론 현재는 너무 책이 많은 환경이라서 그리 권장하는 독서법은 아니지만 말이다.
암튼,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로 만드는 최적의 방법에는 '독서'만한 것이 없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리고 '책 속의 정답'을 가르쳐주기보다는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학습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도 소개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오늘날처럼 방대한 정보를 습득해야 하고 발빠르게 정보 처리를 해야하는 시대에는 걸맞지 않는 학습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을 던져주고서 스스로 터득하라는 것보다는 이 책에서 터득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이야, 그것을 찾을 때까지 꼼꼼하게 읽어보렴. 그렇게 터득한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에는 저런 것들이 있단다. 흥미가 생긴다면 도전해보고, 아니면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보려무나..라면서 살짝 '지도(코칭)'를 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지식을 '암기'할 때에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주기율표'를 외우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들 선보여주고, 굳이 외우지 않아도 '주기율표'를 효율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만 터득하게 해줘도 충분할 것이다. 구구단을 외운다고 '천재적인 수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내노라하는 수학천재들도 구구단을 못 외워서 '손으로 직접 곱셈 계산'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요한 것은 암기할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가 너무 좋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런 아이로 만들겠다는 '방법론'에는 여전히 교육자들마다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아이로 모두 만들면 참 좋겠지만, 100명의 학생들 가운데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로 성장할 아이는 10명 안팎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될 아이는 그보다는 많은 5~60명은 될 것이다. 나머지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남의 생각'을 이해하고 잘 따르는 것으로도 만족하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며, 극소수의 아이는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짓을 하는 어른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은 없다. 엉뚱한 짓을 하는 어른들이 '금전적인 성공'을 거둬서 대박인생을 사는 경우도 참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와 '공부 잘하는 아이'를 동일하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린 까닭이다. 우리는 '스스로 내린 생각'에 절대평가를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창의적인 생각'에 어떻게 점수를 매길 수 있겠느냔 말이다. 설령 '점수화'했다고 치더라도 그 점수를 제대로 공정하게 매겼다고 수긍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점수를 매기려면 '모범답안'을 마련해야 하고, 그 모범답안에 최대한 접근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준다면, 그건 이미 '창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생각'을 한 것이라면 모두가 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미 알려진 지식이라 할지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스스로 생각하는 올바른 습관'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애써 스스로 생각했는데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평가절하를 받는 경험을 겪게 되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점점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힘든 교육과정인 까닭에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로 가르친다고 포장하고서는 사실은 '공부 잘 하는 아이'로 만들려는 계획이었기에 그렇게나 집착하며 매달렸던 것이다.
이게 교육계의 딜레마인 까닭에 공교육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로 만드는 것은 살짝 방만하게 시행해도 괜찮다고 본다. 애초에 완벽한 '스스로 학습법'을 시행하고 평가할 수조차 없다면, 그런 간판을 내걸고서 '자율적'으로 공부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로 만들기로 작정했다면 사교육(과외)이나 가정학습에서 기대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면 '소수 정예'로 구성해서 자율적으로 학습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천차만별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개성에 알맞게 적절한 학습법의 '변형'을 허용할 수 있는 자유는 사교육과 가정교육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기'에 걸맞는 학습지도법을 통달한 전문가의 지도편달이 필수이겠지만 말이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글쓴이인 안노 미쓰마사 선생님도 공교육계를 떠나고 나서야 진정한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아무래도 제약을 많이 받는 자리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학습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