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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8 - 천하삼분(天下三分)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평점 :
[My Review MCMLXXXVII / 위즈덤(WISDOM) 8번째 리뷰] 결국 유비가 서촉땅을 얻었다. 유비가 삼고초려를 하고 제갈량이 내놓은 계책이 '천하삼분지계'였는데, 드디어 천하를 셋으로 쪼개는 형세를 갖춘 것이다. 조조의 북위, 손권의 동오, 그리고 유비의 서촉, 이렇게 천하는 셋이 되었다. 허나 갈 길이 멀다. 이제 막 '한 황실의 복위'를 위해서 주축이 될 거점을 마련했을 뿐, 여전히 '헌제'는 승상 조조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으며, 손권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다. 유비가 나아갈 길은 이토록 험난한데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정도라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유비에게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는 바로 '제갈량의 존재'다. 유비가 화려한 비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와룡선생'이라 불리던 제갈량과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공명이 있었기에 유비는 '적벽대전'에서 형주를 빌릴(?) 수 있었고, 형주를 발판 삼아 '서천땅'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천연요새와 다를 바 없는 '서촉'을 기반으로 방어를 굳건히 하고, 천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힘을 기를 것이다. 이제 유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유비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유비는 유장에게서 서천땅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얻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뺏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유비가 유장의 영내로 '군대'를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천땅(한중)'의 주인, 장로 때문이었다. 장로가 유장을 공격했기에 홀로 막아낼 수 없었던 유장은 '유비군'을 구원군으로 요청한 것이다. 유장의 신하들 중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유비는 세상이 다 아는 효웅인데, 늑대(장로)를 몰아내고자 호랑이(유비)를 끌어들이는 격이라며 성문 앞에서 목을 메어 자살하면서까지 유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충신들도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유장은 '그릇'이 작았다. 그에게 너무도 과분한 충신들의 간언이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유비는 방통과 함께 서천땅으로 들어왔고, 유장을 대신해서 장로와 싸우러 갔다.
그런데 여기서 사달이 났다. 장로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선봉으로 나선 마초의 공격은 장비의 용맹과 공명의 지혜로 '우리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한중땅이 워낙 험준한 지형이었기에 수비에 치중하는 장로군을 서둘러 공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유장에게 '병사와 병량미'를 요구했으나, 유장은 자신들도 가진 게 없다며 '늙은 병사와 쌀 약간'을 보내왔을 뿐이다. 이에 불같이 화를 내는 유비는 장로군을 뒤로 하고 유장을 치러 군사를 되돌렸다. 이런 대접을 받으며 더 싸우다가는 '병량'이 떨어져서 진퇴양란에 빠져 자멸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유장이 틀어박혀 있는 '성도(서촉의 수도)'로 쳐들어가 유장을 잡고, 서촉을 차지했다.
애초에 이렇게 했으면 되었을텐데 왜 유비는 방통을 잃어가면서까지 뜸을 들였던 것일까? 어차피 유장을 공격(!)해서 서촉을 빼앗을 거였으면서 말이다. 그간 유비는 도겸에게서 '서주'를 얻을 때도, 유표에게서 '신야'를 얻을 때에도 도덕군자처럼 굴었다. 거듭 사양하고, 또 사양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심지어 애써 얻은 '서주'를 여포에게 거저(?) 내어주고 자신은 더 작은 '소패'로 옮겨가기까지 했을 정도다. 더구나 노숙이 찾아와 빌려간(?) 형주를 되돌려 달라고 했을 때에도 '서촉'을 차지하면 당연히 돌려줄 것인데, 서촉의 주인이 자신과 '친족'이라서 쉽사리 빼앗을 수 없어서 그런다고 할 정도로 유비는 인의를 중시했다. 그런데 유장을 구원하러 왔다가 결국은 '서촉'을 차지하고 말았다. 이런 180도 다른 행보는 과연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여기에는 '도리'를 지키지 않은 유장의 태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과거에도 조조에게 사로잡힌 여포를 죽이라고 조언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여포와 손을 잡고 함께 조조와 싸우기도 했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조조에게 빌붙어서 유비는 여포를 죽이라고 했을까? 그건 여포가 먼저 유비를 '배신'하고 위기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서주땅까지 주며 함께 조조와 맞서자고 했건만, 여포는 끝내 유비를 배신하고 조조의 공격에서 유비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유비는 끝내 여포를 죽이라 했다. 아무리 '인의도덕'을 중시하는 여린 공자처럼 굴더라도 유비는 '인의'를 저버린 사람에게까지 한없이 아량을 베푸는 멍청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유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비군이 왜 장로군과 싸우고 있었던가? 유장 홀로 장로와 맞서 싸울 수 없었기에 대신 싸워주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와주워 온 유비를 돕지 않고, 뒤에서 '장난질'만 치고 있다면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즉, 유장이 먼저 '인의'를 무시하고 배신했으니 유비로서는 결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명분을 찾게 되자, 드디어 유비는 '결전'을 시행하고 서천땅을 차지한 것이다.
자, 이렇게 서천땅을 찾았으니, 동천땅(한중, 장로)도 찾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먼저 선수를 친 건 조조였다. 조조는 대병력을 이끌고 '한중'을 차지하러 왔던 것이다. 이때 방덕이 힘을 내어 막았으나 '양송'이란 간신배(특히, 뇌물을 유독 좋아함)에 의해 방덕의 목숨이 위급하자 조조에 투항을 해버리고 만다. 방덕이 투항을 하니 장로군도 더는 막을 수 없었고, 양송의 배신으로 인해 장로는 조조에게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조조는 오히려 장로가 그간 '한중'을 잘 보살펴왔다면서 상을 내린 반면에 양송의 도움으로 한중을 차지했는데도 조조는 양송을 '배신자의 표본'이라면서 가차없이 죽여버린다. 이렇게 한중을 차지하여 위세가 등등해진 조조군의 신하들은 내친김에 서촉까지 공략하여 유비를 단숨에 제압해버리자고 조언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조는 군사를 물려버린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 탈이 날 수도 있고, 오랜 전쟁으로 군사들도 기진맥진해 있으니 쉬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원소를 상대로 대승을 거둘 때의 장면과는 사뭇 다르다. 그 당시 곽가도 '속전속결'을 주장했고, 조조는 그에 따라서 원소의 아들들을 끝까지 쫓아서 전멸시켰었다. 그런데 왜 조조는 느긋하고 무뎌진 것일까?
그건 아마도 '적벽대전의 패배' 때문일 것이다. 조조는 적벽대전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100만 대군을 움직일 때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를 거두며 가는 곳마다 기염을 토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패를 경험한 이후에는 행보가 매우 신중해졌다. 그리고 '의심'도 많아졌다. 그래서 공명도 조조의 '의심병(?)'을 이용해서 다음 번의 '한중공략'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조의 용병술도 상당히 둔해졌다. 예전 같으면, 서촉과 동오의 '양동작전'이 벌어졌다면, 대군을 반으로 쪼개서 신속하게 진퇴를 결정하며 적들을 능수능란하게 물리치는 용병의 귀재로서 손색이 없도록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많이 무뎌졌다. 한중을 차지하고서 굳이 대군을 되돌려서 '합비'를 치러 갔다. 공명이 형주의 일부를 손권에게 돌려주면서 '합비공략'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조도 동오를 정벌하기 위해서 군대를 보낼 작정이었기에, 장료에게 군대를 맡겨 합비를 공격하러 보냈으나, 손권이 먼저 선수를 쳐서 '합비'를 거의 함락직전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장료의 군대'가 합류하고, '악진'이 기를 쓰고 지켜내니, 도리어 손권이 섣불리 깊숙이 공격해 들어갔다고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때 '감녕'이 목숨을 걸고 지켜주지 않았다면 손권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게 손권군은 퇴각을 했고, 이때부터 '료라이~(장료가 온다)'라는 소리만 들으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손권이 동쪽에서 공격해 들어가자 공명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중공략'에 들어갔다. 애초에는 '촉오동맹'에 따라서 유비군이 위기에 처한 손권을 구하러 가야했지만, 공명이 그런 허튼짓을 할 까닭이 없다. 공명은 '한중'도 차지하고, 한중을 지키러 군대를 되돌릴 수밖에 없는 조조의 처지를 생각해서, 동맹국에게 도움도 주는 절묘한 방식으로 동맹의 의리를 지킨 셈이다. 자, 이때에는 '황충과 엄안'이 대활약을 펼친다. 칠순이 넘은 노익장을 제대로 보여준 것인데, '천탕산 전투'에서는 적장 하후연까지 두동강을 낼 정도였다. 그렇게 조조의 원군이 오기도 전에 황충과 엄안은 '정군산'까지 점령을 하면서 북위를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한중'을 완벽하게 점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쩌랴. 공명이 한중을 차지한 것도 잠시 '형주'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한중을 빼앗긴 조조는 '사마의'에게 점점 더 힘을 실어주고, 한편으로 동오의 손권을 자극해서 '형주'를 완전히 빼앗아 유비의 숨통을 조이도록 만들었다. 과연 유비는 '형주'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당시 형주를 지키고 있던 인물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다음 권에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