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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푸른 수염 ㅣ 짜릿하게 즐기는 세계 공포 추리 소설 23
샤를 페로 / 바로이북 / 2018년 11월
평점 :
[My Review MCMLIX / 바로이북 1번째 리뷰] 샤를 페로는 17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이자 비평가로 어린이를 위한 수많은 동화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가 쓴 동화를 요즘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무서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른바 '잔혹동화'라 불리는 것들인데, 대표적인 잔혹동화가 <상드리용>이다. 흔히 <신데렐라>라고 불리며 <재투성이 아가씨>가 원래의 제목이라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워낙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기에 '원래의 이야기'가 언제 어디에서 먼저 시작되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우리 나라에서도 <콩쥐팥쥐전>으로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암튼 그 <상드리용>에서도 잔혹한 장면은 새엄마의 두 딸이 발에도 맞지 않은 유리구두에 억지로 신기 위해 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내고 피가 철철 넘쳐 흐르는 장면이고, 유리구두의 원래 주인이 '샹드리용'으로 명명백백히 밝혀지자 두 딸은 엄마의 묘비 위에 앉아 있던 새가 두 언니의 눈을 파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 내용이라서 '잔혹동화'라고 불린다.
17세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으로 소개했던 것일까? 수많은 비평가들이 말하는 이유로는 뚜렷한 '권선징악'을 나타내기 위해서 상벌을 극명하게 보여주어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지만 나쁜 일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것을 어린아이에게 아주 짜릿하게 심어주기 위함이라고들 말한다. 딴에는 그럴 듯 하다. 침대맡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착한 아이가 될게요. 벌 받는 것은 싫어요"라는 말을 아주 듣기 쉬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어린 나이에 '충격요법'을 잘못 쓰면 애먼 공포감만 심어주어서 '정신착란'에 빠져들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페로 동화집>보다는 내용이 좀 더 순화된 <라 퐁텐 우화집>을 선택하는 똑똑한 부모님들도 많다. 현대적인 부모님들은 차라리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 경우에도 심한 '공주병'에 시달리게 되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암튼 '선택'은 부모님의 몫이고...
<푸른 수염>의 이야기를 다들 아실 것이다. 나이가 마흔이 넘으신 분들은 [소년소녀 세계명작소설](전50권) 이란 제목의 전집을 하나씩은 가지고 계셨을테니, 이런 제목의 글을 한두 번쯤은 읽어보셨을 것이다. 줄거리도 아주 간단해서, 어느 옛날 푸른 수염의 귀족이 여섯 아내를 살해하고서 일곱 번째 아내를 맞이 했는데, 결혼한 첫날밤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아주 잘 해주더란다. 그런데 첫날밤을 보낸 남편이 아내에게 집안 열쇠꾸러미를 주면서 "이 성안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기도 하니 마음껏 꺼내 써도 좋다. 하지만 가장 작은 방에는 들어가지 말아라. 그곳은 아주 볼품 없는 곳이니 당신이 보아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면서 신신당부를 했더란다. 아내는 그러마하고 약속을 하고서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열었는데,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남편이 들어가지 말라는 작은 방이 너무 궁금해서 열쇠로 열고 들어갔단다. 그랬더니 그 방안에는 여섯 구의 시체가 있었고, 남편의 전 부인들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더란다. 그 끔찍한 모습에 그만 아내는 열쇠를 떨었뜨렸고, 열쇠에 피가 묻어서 얼른 지우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더란다. 서둘러 문을 잠그고 침착한 척 하려 했지만, 그 사이에 남편은 가는 도중에 일처리가 다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일찍 되돌아왔다면서 열쇠꾸러미를 되돌려 달라고 하자, 아내는 '피가 묻은 열쇠'만 빼고 남편에게 돌려줬으나, 남편은 작은 방의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며 어디에 두었느냐고 아내를 추궁했고, 되돌려받은 열쇠에 피가 묻어 있자 아내가 그 방에 들어갔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서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봤으니 아내도 똑같이 죽이겠다고 하자, 아내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고 남편은 허락했다. 아내는 그 사이에 탑 위에 올라가서 오기로 약속했던 오빠들이 서둘러 오게끔 손짓을 했고, 용기사와 근위대 기사였던 오빠들이 동생의 손짓을 보고 서둘러 달려와 남편을 단 번에 찔러 죽여 여동생을 구했단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푸른 수염은 상속자가 없었으므로 아내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고, 아내는 그 재산으로 언니의 혼수비용을 마련했고, 오빠들은 장교가 되도록 힘썼으며, 아내는 정직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얘기한 것 같은데 '아내를 살해한 살인자의 최후'에 걸맞지 않게 찜찜한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그런 까닭 때문인지 <푸른 수염>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그 소설에서는 '푸른 수염'이 그렇게 나쁘지 않게 묘사되곤 한다. 오히려 일곱 번째 아내가 '푸른 수염'의 재산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하고 내연남과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샤를 페로가 쓴 <푸른 수염>의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허구적인 내용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기인했는데도 페로는 그 인물의 모습을 완전히 '정반대'로 서술하였다고 쓴 비평까지 수두룩하다.
이런 지경에 놓이니 더욱더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복기해보자. 샤를 페로는 푸른 수염을 가타부타 아무런 서술도 없이 '그는 어마어마한 부자였다...하지만 그는 비참했다. 푸른 수염 때문에 여자들이 그를 두려워하며 피했기 때문이었다'라고 서술한 뒤에, 이웃의 어느 귀부인에게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는데, 푸른 수염은 그들 중 한 명과 결혼하기로 마음 먹고, '선택'은 귀부인에게 맡기겠다고 말한다. 두 딸은 죽어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데, 두 딸이 질색하는 이유는 푸른 수염 때문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결혼했다는 것도 아니고, 진짜 이유는 그의 아내들이 하나같이 실종되었는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푸른 수염은 8일 동안 쉴 새 없이 화려하다 못해 휘황찬란한 주연을 베풀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즐거워하고 잠자는 시간조차 아쉬워하며 놀고 또 놀았다고 한다. 그러자 귀부인의 둘째 딸이 푸른 수염을 보면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곧바로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서는 앞서 언급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의심스럽지 않은가? 둘째 딸은 왜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다가 8일 동안 흥청망청 놀고 나서야 푸른 수염과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을까? 애초에 완강히 거부했던 이유는 '푸른 수염의 전 아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아니었나? 그렇다면 그 이유가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기에 푸른 수염과 결혼까지 서둘렀던 것일까? 변한 것은 딱 하나다. 푸른 수염이 '가진 재산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둘째 딸이 알아챘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남편이 집을 나간 날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는데, 파티를 연 주인공(다시 말해, 호스트)이 파티에서 사라져 잠겨진 '비밀의 방'을 열고 들어갔다는 점이다. 남편이 분명 6주 간 집을 비울 거라고 말하고 갔는데, 파티를 연 첫날에 사람들에게 '남편의 성'을 실컷 구경시켜주고서, 왜 자신은 '비밀의 방'으로 향했느냔 말이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그리고서는 끔찍한 장면을 보았노라고 말한다. 사실 이건 남편을 죽이고 난 뒤에 한 말이다. 남편이 예상보다 서둘러 돌아와서 보니 들어가지 말라는 방에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편은 아내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상실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도리어 그 방안에서 끔찍한 것을 봤노라고, 그 방에 남편의 전 부인들이 죽은 채 매달려 있었노라고 증언한다. 이걸 확인한 사람은 오직 '아내(둘째 딸)' 뿐이다. 다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남편을 찔러 죽인 오빠들도 동생의 말만 듣고 죽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재판 내용이나, 끔찍한 현장을 확인했다는 서술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직 '아내의 증언'뿐이다. 더 정확한 사실은 '남편을 살해해달라고 부탁한 아내의 증언'뿐이다. 그리고서 '푸른 수염의 재산'은 아내 측 식구들에게 골고루 유용된다.
여기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겠다. 둘째 딸이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다 8일만에 흔쾌히 승낙하게 된 까닭은 '푸른 수염에게 엄청난 재산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교훈은 '쓸데 없는 호기심으로 하나 뿐인 목숨을 걸지 마라. 운이 나쁘면 예상보다 빨리 죽을 수 있으니까'라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변신은 무죄지만, 변심은 유죄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하나 뿐인 목숨 뿐만 아니라 재산까지 홀라당 빼앗길 수 있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푸른 수염>..그냥 '잔혹 동화'에 변태 사이코 스토리인줄 알았는데, 까고 또 까서 보니 '미스터리 추리소설'이었다. 더구나 살해동기는 '치정극(?)'으로 의심되고 말이다. 이 이야기가 유명한 까닭은 또 있었다. 그건 다음 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