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8 - 입헌운동과 의화단 사건 본격 한중일 세계사 18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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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VIII / 위즈덤하우스 38번째 리뷰] 1898년은 한중일 삼국의 '민주주의'가 구축될 수 있었던 가능성의 해였다. 중국에서는 '변법자강운동'이, 일본에서는 '정당내각(의원내각)'이, 조선(대한제국)에서는 '만민공동회'가 활기차게 움직이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만약 각각의 나라에서 이런 '민의(民意)'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국정운영체제가 자리매김을 했다면 '입헌군주국가'로 발돋움하여 서구열강이 그토록 외치던 '근대문명국가'를 완수하는데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삼국 모두 보란듯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 실패의 원인도 비슷하다.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백성들의 역량이 그에 따르지 못하고, 몇몇 엘리트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그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위로부터의 자강운동'은 결국 '강력한 왕권'의 견제를 받고 하릴없이 스러질 수밖에 없게 된다. 아직 어리숙한 백성들은 이렇게나 실패한 운동들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들이었는지 알아채는데도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만민공동회'는 주목할 만하다. 조선의 '동학운동'이 백성들의 꿈만 들썩이게 하고 정작 엘리트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실패했던 것이고, 그 반대로 '갑신정변'은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작당을 하고서 백성들의 지지도 얻지 못한채 섣불리 밀어붙이다 실패한 것이라면, '만민공동회'는 백성들의 의식 개선을 바탕으로 '민의'를 모아 중앙정부를 견제할 수 있었으며, 엘리트지식인들의 동참으로 세계정세를 파악하여 대한이란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정으로 '의회민주주의'를 실현시킬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만약 고종황제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세계정세에 더 큰 눈을 뜨고서 '자국 백성들의 역량'을 뽐내어서 서구열강의 침탈을 막으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또한,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교육', '기업', '군사', '문화'를 바탕으로 힘을 모아 '문명국 vs 문명국'으로 당당히 맞짱을 뜰 생각을 깨우쳤더라면, 20세기 코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서 서구열강의 암묵적 합의 아래 '일본제국'에게 식민지로 전락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안다. 역사에 '만약'은 있을 수 없고, 만약 그럴 경우 '망상'에 가까울 거라는 사실도 명백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리 쉽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 힘든 걸 이루어내기 위해 숱한 피를 흘리고, 애꿎은 목숨을 잃어야 하는 비극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허나 21세기 대한민국이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역사를 통해서 이토록 빠르게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때의 정세를 살펴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이웃나라인 청과 일제가 하는 뻘짓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기도 하고 화딱지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일제가 하는 짓은 '서구열강이 한 나쁜 짓'을 고대로 벤치마킹해서 자신들이 당한만큼 톡톡히 얻어내겠다는 못된 심보가 가장 괘씸할 따름이고, 그런 괘씸한 짓조차 너무나도 '야만적인 행보'로 달성하려 했으니, 우리가 결코 일본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청에 대해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잘 한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특히나 '서태후'가 한 짓을 보면 '권력욕'이 참으로 끝이 없구나 싶다. 그리고 그 끝이 '의화단 사건'으로 이어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총 앞에서 맨주먹으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기괴한 망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걸까? 더 나쁜 것은 그럴 줄 뻔히 알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 당하라고 지시를 내린 '서태후'다.

이쯤 되면, 누군가가 떠오른다. 야당 계몽을 위한 계엄령을 내렸는데, 엉뚱하게도 법원을 파괴하고 법관을 죽이려는 폭동이 일어났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자신이 권력을 되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자신의 행동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니 자기에게 '권력'을 되찾게 도와달라고 외친다. 그런데도 재판정에서는 자신은 '권력욕'이 없다고, 두 번 다시 계엄을 하지도 않을 거라고, 오직 국민들만을 위한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말만 번지르르한 궤변만 늘어놓는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서태후를 위한 청나라에 끝까지 애국하겠다던 '의화단'들이 저지른 행동이며, 그들의 행보에 의해 끝장난 청의 최후였다. 그게 어디 '애국'이었던가? 그렇게 극렬한 시위와 끔찍한 만행의 결과는 서구열강의 강력한 보복전이었고, 그 결과 청은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정녕 이꼴을 대한민국에서 재현하려는 것인가?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하지 않겠는가? 민주주의는 시끌벅적한 것이 정상이다. 허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그 승복을 바탕으로 '승리한 이유'와 '패배한 원인'이 무엇인지 판가름한 뒤에 다시 시끌벅적하게 담론을 나누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다. 그런데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폭력을 휘두르고, 폭동을 일으키며,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죽여도 된다는 식의 선동은 결국 '의화단의 꼴'을 답습할 뿐이다. 그게 나라를 망치는 일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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