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와 고구마 도둑
허윤 지음, 김유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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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LVI / 거북이북스 1번째 리뷰] 가장 완벽한 견생(개의 삶)이란 무엇일까? 지금은 '애완견(사랑스런 장난감 강아지)'이란 표현 대신 '반려견(평생을 함께 동반할 개)'로 고쳐부르고 있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강아지들 대부분은 여전히 '애완용'이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만만찮은 반론을 주장하며 자신은 '개'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기르듯 소중히 여긴다는 견주(강아지주인)도 있겠지만, 그저 비싼 사료 먹이고 동물병원에서 값비싼 치료를 받으며 한 침대에서 물고 빨고 좋아 죽겠다는 식으로 기르는 것이 과연 '강아지의 삶'으로 최적인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그게 '사람의 만족'을 위한 생활인지 '강아지의 삶'을 최선으로 배려한 삶인지 말이다.

흔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반려동물'들은 어김없이 배변훈련을 받고 '목줄'을 차며 바쁜 현대인들의 삶에 최대한 적응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정작 반려동물들은 출퇴근이 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왜 주인이라는 것들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기 바쁘게 집을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와서야 좋아죽겠다면서 물고 빨다가 저들의 방에 들어가 코하고 잠을 자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반려동물'들은 평생을 외롭게 홀로 지내야만 한다. 그렇게 방구석에서 얌전히 있다가 주인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온갖 귀염을 떨면서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 잘 자는 얌전한 '반려동물'이 되어야만 사람(주인)들에게 환영받는다. 그게 절대로 '반려동물의 삶의 질'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도리어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인데도 말이다.

거꾸로 한 번 생각해보란 말이다. 사람인 당신의 목에 '목줄'을 채우고서 하루종일 '홀로' 외롭게 지내다가 주인이 돌아오면 온갖 귀염과 애교를 떨며 밥과 간식을 주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좋아 죽겠다는 시늉을 날마다 해야 하는 '반려동물의 삶'처럼 한 번 살아보란 말이다. 대부분의 개들이 소파를 물어뜯고 떠나가라 울부짓고 성질 사나운 짓을 하지 않고서는 베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암튼, 이 동화책의 줄거리는 도시에 살던 강아지 '포메라니안(견종)' 보보스'가 말썽(?)만 피우다 시골로 쫓겨나 '고구마 도둑'으로부터 할아버지 고구마 밭을 지키는 용감무쌍한 개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실 '포메라니안'은 지금은 작고 귀여운 견종이지만, 먼 조상은 북극에서 썰매를 끌던 견종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덩치도 컸고 잘 짖었으며 사냥도 훌륭히 해내는 '사냥개의 후손'이었단다. 지금이야 복실복실 털 많고 장난 많은 귀여운 악동 견종으로 유명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도시에 살던 '보보스'가 시골로 내려가 도둑 지키는 '복실이'로 변신한 것이 그리 큰 삶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하긴 다양한 견종들의 조상은 대부분 '사냥개'였다. 인류가 늑대에서 개로 길들였기 때문에 '개의 본성'은 야생의 사냥 본능을 갖고 있을 것이며, 가장 최근까지도 개를 기르는 주목적이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일'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면 거의 모든 개들이 '컹컹' 사납게 울부짖고 '집요하게' 물어뜯으며 '주인'이 아닌 다른 생물(!)에게 무시무시한 공격본능을 보여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행동인 것이다. 애초에 사람들이 그런 견종을 선호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런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못하게 발톱도 자르고, 성대도 작살내고, 입마개까지 물리고서 '얌전'하길 바란다. 사냥개의 본능으로 충만한 강아지들인데 말이다.

그런데 복실이의 삶은 다르다. 시골로 내려간 초기에는 당혹스럽고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 같아 속상하지만 '복실이(보보스)의 엄마'가 늘 말씀하신대로, "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머니는 아주 훌륭하고 용맹한 사냥개였단다"는 말을 떠올리며 할아버지 댁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다. 예쁘게 치장하고서 주인에게 사랑을 독차지하는 '장난감(애완견)'이 아닌 '진정한 견생'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냥개로서 말이다. 그래봐야 한주먹보다 조금 더 큰 덩치일 뿐인 강아지에 불과하지만, 포메라니안이 '사냥개의 본능'으로 잃지 않은 것은 바로 덩치에 비해 엄청 큰 목청이었다.

그렇게 '복실이'는 고구마 도둑으로부터 할아버지의 고구마밭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것도 한밤중에 밭 한켠에 목줄로 단단히 묶이고서 말이다. 도시에 살 때는 사람처럼 낮에는 산책하고, 밤에는 주인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자며, 주인과 함께 하는 생활이었는데, 할아버지댁에서는 방안은커녕 마루에조차 올라서지 못하고 쫓겨나는 설움을 당해야만 했다. 더구나 개밥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먹다 남은 밥찌꺼기'였고 말이다. 그것도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데워주는 바람에 복실이 입천장이 홀랑 타서 벗겨질 지경에 이르자 '개밥 거부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이런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고구마 도둑'으로부터 할아버지의 고구마밭을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복실이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과연 복실이는 훌륭히 '고구마 도둑'을 쫓아내고 당당한 견생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것인가? 아니면, 견생의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충실한 '주인의 장난감'으로 생을 마감하는 평범한(?) 견생으로 만족할 것인가? 이 동화책을 읽는 어린이에게는 '변화된 삶에 훌륭히 적응하는 모습'이라는 주제를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진정한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주인공'이라는 주제를 귀띔해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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