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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김탁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9월
평점 :
[My Review MDCCCXLI / 남해의봄날 1번째 리뷰] 권투선수와 시인과 화가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사각형'이다. '사각의 링' 위에 선 권투선수는 달아날 곳이 없다. '사각의 원고지'속에선 시인이 숨을 곳이 없고, '사각의 캔버스' 위에선 화가가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각형'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공간이며,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최후의 장이기도 하다. 김탁환의 소설 <참 좋았더라>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해서 멋대로 풀어보았다. 이 책은 '화가 이중섭'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소설로 옮겼는데, 내가 알고 있던 이중섭의 모습과 사뭇 달리 매우 '따뜻하고 아름답고 열정적인 화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던 이중섭 화가는 가난에 찌들어 살다가 전쟁통에 먹고 살기 힘들어서 사랑하는 가족과도 생이별을 하고서 예술혼을 불태우다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간 여느 예술가의 삶을 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해방이 되기 전 1943년까지 부유한 집안 형편 덕분에 일본 유학까지 다녀와 '미술가'로써 꽤나 실력을 인정 받던 화가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원산에 살며 활발한 작품활동까지 했단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원산에서 몸만 빠져나오듯 탈출해서 부산에 정착했고, 생계가 불투명해지자 아내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과 두 아들(태현, 태성)을 외가인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 예술가로 명성을 쌓고 돈을 벌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궁리를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뛰어난 그림 실력(특히, 소 그림)을 호평 받았으나 살아생전에 큰 돈을 벌어보진 못하고 마지막 생애를 정신병원에서 살다 41살(1956년 졸)이란 짧은 생으로 마감하였다고 전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생애 가운데 가장 희망찼던 '통영에 머물던 시절'을 중점적으로 써내려가며 화가 이중섭의 색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또 다른 모습은 화가 이중섭이 대단히 박식한 예술가였다는 점이다. 특히, '미술의 역사'에 꽤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웬만한 예술가들과 수준 높은 교양적 담론을 즐겼고, 화가들 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 교직원, 공예가 등등 수많은 예술가들과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모두들 이중섭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토록 '달변'인 그였는데, 평상시에는 무뚝뚝한 이미지로 보이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말 몇 마디 꺼내는 법이 없는 '눌변(더듬거리며 서툰 말솜씨)'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단다. 그건 이중섭의 고향이 이북(평남 평원군) 출신인 탓에 '이북 사투리'로 대화를 했기 때문이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던 탓에 '이북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어디서든 주목받기 쉬웠고, 오해(?)도 받기 쉬웠던 탓이란다. 그래서 이중섭을 좋아하는 사람 앞이 아니면 좀처럼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분위기 였단다. 그렇다고 이중섭이 '공산당'에 '빨갱이'는 더욱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살았고, 그 덕분에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고, 공부도 꽤나 잘하는 수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에서 '사상검열'을 당할 처지는 더욱더 아니었는데도, 그의 고향 사투리가 그의 출세길의 발목을 잡았다고 보아도 무방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화가 이중섭은 '이중'으로 섭섭한 삶을 살아야 했다. 전쟁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이 그를 '원산'에 어머니와 형을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산의 아픔'을 겪게 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마영일이라는 작자에게 속아 큰 돈을 빚을 지게되어 사랑하는 가족과도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중섭의 아내가 유학시절에 만난 '일본인'이었던 탓에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중섭은 '두 차례'나 가족과 헤어지는 '이산의 아픔'을 곱절로 겪은 것이다. 이런 고통을 이겨내는 원천은 바로 '화가'로 명성을 얻고 큰 돈을 버는 성공을 하겠다는 희망이었다. 그렇게 이중섭은 주변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예술혼을 불태우며 역작인 '소'를 그리게 된다. 이 성공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소'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바로 '이중섭'이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중섭이 바라는 큰 돈은 벌지 못했다. 뛰어난 화가로서 인정받긴 했지만, 그의 작품을 큰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질 않은 것이다. 이중섭은 여기에 크게 실망을 한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에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장면으로 '오버랩'되며 마무리 되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던 모양이다. 그럭저럭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작품대금'을 현금이 아닌 현물로 대신하거나 떼어 먹기 일쑤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전쟁 직후였던 상황이라 '예술작품'에 큰 돈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학시절부터 그의 '천재성'을 눈여겨 보며 응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은 점점 쪼들리고 피폐해져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이중섭'과도 사뭇 다른, 희망에 부풀고 예술가의 기질을 맘껏 뽐내는 이중섭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감명 깊었다. 그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으니, 앞으론 그의 그림에서 '어두운 이미지'는 싹 걷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이중섭의 '화양연화'가 시기적으로 조금 앞당겨졌거나 조금 더 늦춰졌었더라면, 그의 '천재성'과 더불어 한국미술의 수준이 한층 더 진일보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만 더욱 커지기도 했다. 암튼, 학창시절에 이중섭의 '소'를 보면 한없이 쓸쓸하기만 했더랬는데, 이 소설 덕분에 그 소의 눈망울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