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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평점 :
[My Review MDCCCXXIV / 현대지성 10번째 리뷰] 고전은 왜 오랫동안 읽혔을까? 수 세기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또 읽었을텐데,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어릴 적 '소인국편'만 따로 있는 책까지 포함하면 꽤나 많이 읽었다. 어린이책으로 여러 출판사의 책이 나왔으며, '영어공부'를 위해서 영문판까지도 읽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대인국편'을 발견했을 때의 놀랍고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최고의 충격은 고등학교때 '완역본'이 출간된 것이다. 그 책에서 처음으로 접한 '천공성 라퓨타 여행기'와 '마인국 휴이넘 여행기'는 놀라자빠질 정도였다. 걸리버 본인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야후(사람짐승)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제서야 <걸리버 여행기>가 '어린이동화책'이 아니라 '풍자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뒤로도 여러 출판사의 '완역본'을 거듭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은 사뭇 달랐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개인적으로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데, 그간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읽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정말 다채롭게 읽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채로운 느낌을 시공간을 초월해서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재밌었을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고전은 바로 '이런 맛'으로 읽는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다채로운 느낌을 받는다고해도 고전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고전읽기'는 수박 겉핥기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가 아무리 풍자소설이라고 해도 '300여 년전 영국사회'를 비꼬는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읽고서 단박에 깨우칠 현대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과사전적 지식'으로 풀어 쓴 친절한 해설서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책 가운데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걸리버 여행기>를 추천한다. 여러 출판사 가운데 '가장 해박한 해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친절한 해설이라고 해도 '나의 견해'와 다르다면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다시 말해, '해설'은 해설일 뿐이지 결코 '정답'이나 '모범답안'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용감한 독자라면 '권위 있는 해설가'에게 주눅 들지 말고 저만의 느낌 충만하게 읽어나가면 그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소개한 해설 가운데 한눈에 쏙 들어온 대목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걸리버'란 이름에 감춰진 뜻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735년 영문판 <걸리버 여행기>에 걸리버가 그려진 삽화가 있는데, 그 삽화 밑부분에 '레뮤얼 걸리버 선장, 멋진 거짓말쟁이 선생(Hon. Splendide Mendax.)'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단다. 멋진 거짓말쟁이라니 무슨 뜻일까? 그건 'Gull(바보, 또는 잘 속는 사람)'과 'ver(진실, 또는 진리)'의 합성어가 'Gulliver(걸리버, 진실을 말하는 바보)'라는 뜻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바보는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말이다. '어리숙한 사람이 솔직한 말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바보가 말하는 것의 대부분이 거짓임에 틀림없다'는 뜻으로 '진실 vs 거짓'이 서로 대립하는 뜻으로 해석하여 '걸리버,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쟁이'로 해석해야 하겠다. 한마디로 <걸리버 여행기>란 '진실과 거짓'이 한데 섞여있는 여행기란 말이니 독자가 알아서 잘 판단하라는 뜻일 것이다. 정말이지 '최고의 풍자소설'답지 않은가.
이렇게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쟁이'가 전하는 여행기라고 해석을 하니 4편의 여행기가 새롭게 정립이 된다. '소인국 릴리펏 여행기'부터 '대인국 브롭딩낵 여행기', '천공성 라퓨타 및 여러 나라 여행기'와 대미를 장식한 '마인국 후이늠 여행기'가 뜻하는 바가 꽤나 의미심장해졌다. 먼저 '소인국'에서 걸리버는 무슨 진실과 거짓을 말한 것일까? 물론 인간보다 작은 소인들이 사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영국사회'를 비난하고 풍자한 내용이 한가득이다. 바로 이야기 자체는 '거짓'이지만, 이야기가 빗댄 내용은 '진실'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인(거인)들이 사는 나라는 '거짓'이지만, 그 이야기가 빗댄 내용은 '진실'이며, 천공성도, 마인국도 모두 '거짓 속에 진실'을 감추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무슨 진실일까? 소인국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을 빗대며 사소한 원한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앙숙이 된 것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더구나 겨우 '달걀깨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영국에서 프랑스로 망명을 간 사람을 발본색원하여 처형하고자 하는 소인국 국왕의 째째함을 실컷 비웃어주고 있다. 대인국에서는 정반대로 영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한껏 뽐내는 걸리버가 대인국의 국왕 앞에서 심한 꾸지람을 듣고 크게 반성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대인국의 국왕이 '세계정복'이라도 꿈꾼다면 대영제국이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전쟁'이라는 것을 귀띔해드리겠다고 말했다가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된다. 너처럼 작은 사람이 어찌 그리 방법을 알고 있느냐면서 참으로 못된 짓을 일삼는 소인들을 경멸하는 말을 걸리버에게 했기 때문이다. 한편, 천공성에서는 '최고의 지성'을 갖추고 있지만 '하는 일마다 비이성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마인국에 도착하면서 걸리버는 최고의 풍자를 남기게 된다. 바로 '후이늠(말)이 완벽한 존재'이며, '야후(인간)가 비참한 존재'라는 거짓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짓'이라면 진실은 그 '반대'인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짐승은 말할 것도 없는 비천한 존재'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감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느냔 말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암(癌)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오히려 '동물의 인권'이 급상승하면서 여객선이 침몰했을 때, 승객명단에 적혀 있는 구출순서는 '어린이, 여자, 노약자, 강아지, 그리고 나머지(남자 포함)'이라는 농담까지 유행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인 스위프트는 300년 뒤의 미래를 예측한 대단한 작가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파악한 '진실'조차 우리는 다시 한 번 '거짓'으로 판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히 '풍자소설'이 아닌 '인간 혐오'에 입각해서 쓰여진 비정상적인 소설인 까닭이다. 이 책에서 '마인국 후이늠 여행기'를 중점적으로 보았을 때 작가는 모든 인류를 '야후(짐승)'으로 빗대고 말았다. 이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개과천선'하라는 갱생의 기회마저 박탈한 채, 야후를 맹비난하며 걸리버 스스로 야후라는 것을 인정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아니, 스스로 짐승 같은 어리석음을 깨닫고 '후이늠'처럼 거듭날 수도 있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걸리버는 '마인국'에서 추방 당하고서 '인간'이길 포기하고 고국으로 되돌아와 헛간에서 짐승처럼 변해버린 '말'과 대화를 나누며 여생을 보낸다. 스스로 인간으로 남길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따지다보면 이 책의 곳곳에 '인간 혐오'와 함께 '여성 혐오'가 아주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두고서 수많은 평론가들은 스위프트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도 사이가 별로 안 좋았던데다가 스위프트가 사랑했던 여인들마저 번번히 실패로 끝맺고, 영국 여왕에게서 심한 홀대까지 받은 영양 탓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런 경험을 했더라도 '성직자'이기도 했던 그가 '신의 섭리'에 따라 따뜻한 인간애를 앞장 서서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지독한 염세주의로 가득찬 소설을 써내려갔다니 다시 한 번 놀랐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걸리버 여행기>는 재밌다. 재밌는 소설은 언제든 다시 읽기 마련이다. 그리고 '고전'답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다음에 다시 읽을 땐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