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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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I / 민음사 20번째 리뷰] 지금은 이 책이 '교양'을 쌓기 좋은 고전문학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해도 초판이 출간된 미국에서조차 '금서(禁書) 목록'에 올라간 책이었다고 한다.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이 책의 주인공인 허클베리 핀이 어린 나이인데도 '거짓말'에 능숙하고 '비속어'를 남발했기 때문이란다. 그런 까닭으로 주인공이 10대 소년인데도 같은 또래의 '10대 독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되어 미국의 여러 주에서 금서로 지정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까닭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던 책으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는 이 책들이 '문학고전의 반열'에 올라 청소년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고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사회는 '프로테스탄스 윤리(청교도적 윤리의식)'를 강조한 경건한 사회를 지향했다. 그래서 사회구성원들이 독실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청빈하고 정의롭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낯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인디언 학살', '흑인노예의 처참한 삶', 그리고 '천박하기 그지 없는 백인들의 만행' 따위에는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추고 있는 미국시민들조차 외면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더했다. 그런 사회적 문제들을 방치(?)하고 있음에도 고작 어린 소년이 '거짓말'하는 것에 그토록 가혹한(!) 판정을 내리다니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점이다.

그렇지만 시일이 지나니 이 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지닌 가치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여러 문학 평론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정평 높은 문학작가들의 호평이 나오자, 이 책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이 책을 두고서 '미국 문학의 시작'이라고 평가했고, 마크 트웨인을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부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문호의 걸작으로 소개되며 오늘날까지 꾸준히 읽히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이 문제 삼았던 미국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먼저, 허클베리 핀이라는 '순진무구한 소년의 시선'으로 고발하고 있는 미국사회의 단상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마치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등장하는 '옥희'처럼 말이다. 그 문제점들 가운데 첫째는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른은 '어린이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사회구성원을 배출하는 요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클베리 핀의 친아빠부터 '아빠자격 상실'이다. 아빠가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기본도 망각한 채, 되려 허클베리의 소유인 '6000달러(살인범 인디언 조가 숨겨둔 보물)'를 제것인 것마냥 쓰기 위해서 제 자식을 납치(?)하듯 데리고 가서 '감금'시켜 버린다. 제 아빠가 이럴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허클베리는 '대처 판사'에게 그 돈을 주어 버리고 강도 같은 아버지가 그 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대처 판사'는 눈치 빠르게 그 돈을 맡아서 허클베리 핀의 아빠가 함부로 탕진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이다. 그나마 '대처 판사'같은 올바른 어른들도 있긴 하지만 '강도에, 주정뱅이'인 허클베리의 아버지 같은 못난 어른을 갱생시킬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당시 미국사회의 문제였던 것이다.

심지어 허클베리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왕과 공작'으로 등장한 '사기꾼'들이다. 이들은 정말이지 몰염치하고 뻔뻔한 사람들이다. 버젓이 사람들을 속이고 골탕먹이면서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조금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불같이 화를 내는 철면피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못난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사기를 치고 번번히 도망을 칠 때, 허클베리와 흑인 노예 짐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허클베리가 '나이 어린 소년'이란 것과 짐이 '흑인노예(혹시라도 '도망노예'일 것이라 의심)'라는 이유로 철저히 이용해먹다가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 같으면 자신들을 '대신'해서 봉변을 당하더라도 아무런 죄책감조차 같지 않는 무뢰배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안 되는 훌륭한 어른들 덕분에 허클베리는 착한 마음씨를 잃지 않고 정정당당한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둘째는 자유를 찾아 미국땅에 정착한 백인들이 정작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억압하고 자유마저 빼앗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바로 흑인노예 짐의 삶이 그 증거다. 백인들은 저들의 자유를 위해서는 자유란 '소중한 것'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기본이라고 말하면서, 흑인에겐 '노예'라는 멍에를 뒤집어 씌운 채 살아가야 마땅한 일이라고 확정지어 버렸다. 도대체 그 근거가 무어란 말인가? 청교도인들답게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것은 억지주장에 불과한 것을 백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미국사회의 백인들은 그런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흑인노예가 '자유'를 찾아 도망이라도 간다면 끝까지 뒤쫓아가서 죽여버리든지, 다시 붙잡아와서 죽을만큼 고통스런 학대를 한 뒤에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다른 흑인들에게 본을 보여 '도망칠 생각', 아니 '자유를 찾을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저들(백인)의 자유는 그토록 갈망하고 소중하다고 여기다니 정말로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여러 평론가들은 이 책을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비교하며 '흑인 해방'을 부르짓는 역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허클베리 핀의 순수함이다. 말마다 '거짓말'을 늘어놓고 말끝에는 '비속어'를 달고다니는 버릇없는 철딱서니를 보고서 '순수하다'니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허클베리가 순진하다 못해 무구한 증거는 무수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 근거는 바로 '흑인노예 짐'과 미시시피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여행을 하면서 여러 차례 짐의 목숨을 구해준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허클베리는 짐과 잭슨섬에서 만났을 때부터 불안해한다. 왜냐면 '도망노예'를 숨겨주거나 도망가도록 도와주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클베리도 투철한 '준법정신'을 발휘해서 짐의 행적을 '백인 어른들'에게 알려주어 붙잡히게 하거나 '현상금 200달러'를 챙길 수도 있었다. 심지어 '도망노예'를 돕는 일을 하느님이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 뜨거운 불구덩이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도 허클베리는 짐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하지 않고 '법망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도 여러 번 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허클베리 핀은 일종의 '죄책감'을 갖게 된다. 법을 어기는 것이 중죄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조차 없었다. 그저 다른 어른들(백인)에게 들통이 나지 않게 잘 숨어다니는 것으로 만족했고, 그런 짐과 함께 어울리며 '인간다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허클베리가 굉장히 순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직은 어른들의 잘잘못을 가릴 줄도 모르고, '사회비판의식'조차 갖지 못했지만, 순수함이라는 '본능'에 충실하느냐 못하느냐 따위로 '죄책감'이 들거나 '만족감'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순수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경고문'을 떠올려 보라.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하면 기소하고, '어떤 교훈'을 찾으려하면 추방하며, '어떤 플롯'을 찾으려한다면 총살시켜버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독자인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모든 것을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마크 트웨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말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욕구'에 충실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경고문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책의 전작에 해당하는 <톰 소여의 모험>처럼 그냥 심심풀이 책으로 '재미'나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경고문을 읽고 나니, 웬일인지 더 찾고 싶어지지 않은가 말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사회적 문제'에 고심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미국사회는 많이 변천하여 '아동학대'와 '인종차별'을 심각한 범죄로 처벌하고 있으며, 거짓말과 비속어 따위를 문제 삼아 '금서 목록'을 만드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무엇을 안겨주는 것일까? 그건 바로, '어린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다. '순진무구한 안목'으로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직접 찾으라는 귀띔일 것이다. 그래야 문제가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그럴듯한 변명'으론 사회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쌓이고 쌓인 대한민국 사회문제 해결도 이렇게 '순수함'으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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