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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과학사
팀 제임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4년 8월
평점 :
[My Review MDCCCXIII / 한빛비즈 153번째 리뷰]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알면' 참 유용하다. 굳이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명언을 끄집어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살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학문을 꼽자면 어느 과목을 가장 중요하게 공부해야 할까? 초등생 시절부터 죽어라 공부했던 '국영수사과'에서 답을 고르자면, 나는 '과학'을 꼽고 싶다. 물론 모국어인 '국어'를 몰라서도 안 되고,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영어'를 등한시해서도 안 되며, 논리적 사고력의 기틀을 잡아줄 '수학'도 꼭 필수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살펴볼 안목을 길러주는 '사회'도 중요한 과목이긴 하지만, '과학'을 콕 짚어서 필수중요 과목이라 꼽은 까닭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척도'가 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눈에 알고 싶다면 과학공부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나름 20년째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친 경험을 토대로 드리는 말씀이니 믿어도 좋다.
좀더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과학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과학을 잘하면 '이과', 과학을 못하면 '문과'를 지향하는 선별적인 차이에 불과하다면서 '단순암기 과목'으로 치부하곤 했지만, 7차 교육개정 이후로 '통합교과'에 따른 수시개정이 보편화된 현재의 교육과정에서 '과학'은 명문대를 갈 수 있느냐, 가지 못하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과목 뿐만 아니라 '수학'도 중시된 까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학보다는 과학이 더 중시되는 까닭은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과 관련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학지식'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긴요하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과학을 모르면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첨단제품이 쏟아져 나온다고해도 '메뉴얼'에 나와있는 '사용설명'을 읽고 '간편조작 버튼'이 어디 있는지만 알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데에 복잡한 '과학이론'까지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편리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며 '경제적 윤택함'을 누리면서 살고 싶다면 과학공부는 필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육체적 힘)'으로 먹고 살아가는 방법으론 택도 없고, '돈(자본)'이 돈을 버는 투자를 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망한 기업에 투자를 해야 하고, 어떤 기업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려면 '과학' 정도는 '상식'이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남들의 귀띔을 엿듣고서 뒤늦게 투자할 셈인가? 세상이 돌아가는 원천은 '과학기술'에 있고, '과학기술'을 선점한 국가가 선진국인 것이 당연시 되는 세상이다. 하다 못해 침대를 고를 때에도 '과학'을 따지던 세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과학공부가 맘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맘잡고 과학상식 좀 넓히려고 '과학책'을 꺼내들었다가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다시 덮은 일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요즘 과학은 너무 어렵다. 어찌어찌 '뉴턴과학'까지는 기초 상식으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에 이어 '왼손 법칙'까지 따지다보면 본의 아니게 쌍권총을 들고 춤을 추게 된다. 그러다가 '아인슈타인과학'으로 넘어갈라치면 '특수상대성이론'은 특수하게 어렵고, '일반상대성이론'은 일반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되고 '양자물리학'으로 넘어가면 우주가 왜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그렇게 까마득한 우주의 끝자락으로 과학이해의 경계를 넓히다보면, 문득 그 넓은 우주속에 자그마한 지구가 '창백한 점' 하나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왜냐면 시작은 '과학'이었지만 그 끝에는 '철학적 사유'로 귀결되는 오묘한 진리를 깨우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고 난해한 과학공부를 꼭 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올 즈음에야 겨우 '알기 쉽게 풀이된 과학책'을 찾기 마련이다. 그럴 때 딱 좋은 책이 있다. <뜻밖의 과학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팀 제임스'라는 영국의 과학선생님이 직접 쓴 책이다. 이 책 이전에 <원소 이야기>, <양자역학 이야기>, 그리고 <천문학 이야기>까지 줄줄이 히트작을 내놓은 인기만점의 '유명 유튜버'이기도 하다. 제임스는 그렇게 인기를 끈 강의를 필두로 하여 책을 펴냈는데, 이 책 <뜻밖의 과학사>는 그 책들의 '종합편'이라고 해도 좋다. 앞서 펴냈던 책들에서 소개한 내용을 이 책에서 다시 선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과학사'라고 하는 역사적인 이야기꺼리를 조목조목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앞선 책보다는 '부담'은 줄이고 '재미'와 '흥미'는 높이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제임스는 이 책을 통해 과학에 관한 '부담'은 낮추고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항상 '성공'하는 패턴이 있다. 여기서 성공이라함은 '성적향상'을 말한다. 어느 과목일지라도 '재미'를 느끼고 즐기듯 즐겁게 공부하면 반드시 성적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없던 과목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언제나 '흥미유발'이 필요했다. '흥미'를 유발시키야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공식에 따라서 '흥미+지식', 다시 말해 '흥미'에 '지식'을 더해야 성적향상이라는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를 느끼기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흔한 속담 가운데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것처럼 아무리 교사가 '흥미'를 유발시키고 '지식'을 더해주려 노력해도 아이가 '관심'을 갖지 않고 꺼버리면 말짱도루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 안에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이것만큼은 누구도 해줄 수가 없었고, 오직 '본인'만이 스스로 갖는 방법밖에 없었다. 20년째 그 노력을 해보았지만 '관심사'까지 아이에게 억지로 가지게 만드는 참교육 방법은 없다는 것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관심'이 생기면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다. 그 뒤부터는 파죽지세처럼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흥미폭발'을 어디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지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깨우친 '원리와 이치'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그 '열의와 열성'을 막을 수도 없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사'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쉽사리 얻어낸 결과가 없다는 점에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물론 페니실린처럼 '실수'가 위대한 발견의 시작이 되기도 했고, 고무나 플라스틱처럼 '엉뚱한 결과물'이 위대한 발명을 낳기도 했으며, 빅뱅이론처럼 '남들의 비아냥'을 받던 것이 과학계의 새로운 정설로 탄생되는 일도 흔하지만,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그러한 실수와 실패, 또는 비웃음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학의 혜택'을 무궁무진하게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과학이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했어도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의 미래에도 그럴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첨단과학기술이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TV가 만들어지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봐야 할 수고를 덜고, 가정에서 편하게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저 '일방적으로' 시청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OTT를 기반으로 '원하는 것'을 골라서 따로 시청이 가능해졌다. 가까운 미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르긴 몰라도 TV를 대체할 새로운 콘텐츠를 '시청자'가 직접 만들어서 유통하는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제작과정'이 간편해지면서 다채로운 상상력을 발휘한 이들의 데뷔가 관건이 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니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면 그러한 '창작물'을 직접 제작하지도 못하고 소외되는 계층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완벽한 '양방향 상호소통'이 가능해진 제작환경에서 24시간 라이브(생방송)가 펼쳐지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무엇이 관건이 될까? 무엇보다 '창작력'이 가장 절실할 것이다. 창작과 창조의 영역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다. 첨단과학기술은 머릿속에 상상한 것을 그대로 표현해낼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상력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말해, 창조교육의 시작은 '모방'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기초교육'은 지식교육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암기과목'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는 '데이타'를 쌓고 난 뒤에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이 '창의력'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줄 학문은 단연코 '과학'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머나먼 미래를 그린 것에 '공상과학(SF)'이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결국은 '상상의 날개를 단 과학'이란 뜻과 상통하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사'들은 한결같이 뜬금없다. 나름 '과학의 연대기'에 걸맞게 흐름을 쫓으려 노력했지만, 읽다 보면 중구난방 어지러움을 느낄 뿐이다. 그만큼 과학이 '방대하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다간 길을 잃고 헤매기 딱 좋은 서술방식이라는 비판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허나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되짚어가다보면 '뜻하지 않게 놀라운 과학사'를 마주하고 있는 독자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리와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넘나드는 과학사의 나열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이치를 헤아리다보면 어느새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달아오른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놀라운 경지에 오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지 않겠는가. 이 책이 당신도 깨닫지 못했던 '과학적 관심'을 일깨우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