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 흔들리는 삶을 위한 괴테의 문장들
임재성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DCCCVI / 한빛비즈 151번째 리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누구나 들으면 다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풀네임이다. 아니 이름보다 더 유명한 소설이 있으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라는 책제목만 들어도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너무 유명해서 읽지 않았음에도 '다 읽은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질만큼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괴테는 소설가로 유명하기보다는 '철학자들의 스승'으로 더 유명하다. 그 유명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괴테의 사상을 칭송하며 아낌없는 갈채와 존경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괴테 철학의 핵심은 바로 '올바른 삶'이다.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보다는 1분 1초라도 아껴서 '무엇이라도 사랑하라'고 말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긍정하라'고 말했으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괴테는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으로 옮겼다.

자신의 철학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을 겪으며 세상살이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느냔 말이다. 그러면서 남들에겐 '철저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한'...그런 '내로남불의 삶'을 살아가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괴테는 달랐다. 남을 평가하기에 앞서 자신을 드러내놓고 먼저 평가받기를 바라며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고, 인생이 제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에는 깊은 고뇌와 사색을 통해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 증명하고자 했다. 이런 모범적인 삶을 살아서인지 괴테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평생을 살았다. 하긴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올바르지 않으면 행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니 얼마나 바른 생활을 했겠느냔 말이다.

물론, 바쁜 현대인들의 눈높이로 본다면 '괴테의 삶'은 고리타분한 꼰대의 삶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도덕이니 윤리니, 질서니 신의니 이딴 것을 아무 것도 모른다해도 '돈'만 많이 갖고 있으면 평생을 플렉스(돈지랄(?))하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데 언제쩍 '도덕군자' 타령이나 늘어놓느냔 말이다. 다 필요 없고 '부자가 되는 방법'이나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나 알려주면 감사할 따름인 인생들이 허다한 세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돈 지랄도 '있어 본 놈들'이 해야 멋있는 법이지 '없던 놈'이 돈 지랄을 하면 왜 그렇게 꼴보기 싫은 것일까? 한마디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부자들도 자기가 뼈 빠지게 일해서 한푼 두푼 모은 부자는 절대로 허투루 돈을 쓰지 않기 마련이다. 제 분수에 넘치게 졸부가 되었거나, 나쁜 짓으로 부당하게 번 돈이거나, 재벌 2, 3세쯤 되어서 엄청난 상속을 노력도 없이 꿀꺽 한 놈들이 '돈 지랄'을 그렇게 흥청망청 써 재끼는 법이다. 하긴 '돈에 대한 철학'뿐 아니라 '인생철학'도 없으니 그모양 그꼴로 살다 아무런 보탬도 없이 썩어버릴 몸뚱이를 함부로 굴려대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살다가 방황을 할 즈음에 '철학'을 찾기 마련이다. 굳이 유명한 철학자의 어려운 사상을 찾아야만 풀리지 않는 인생의 해답을 찾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우리에겐 전혀 어렵지 않은 '괴테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더러워도 살아갈만한 인생이라고 썰을 풀어주는 '쇼펜하우어'와 '니체'라는 철학자도 있다. 이 두 철학자는 '세상이 엿같다'는 염세주의자였지만, 그럼에도 '엿같은 세상 폼나게 살아보자'고 주장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런 긍정의 아이콘 같은 세 사람의 소중한 말씀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바로 <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란 책이다.

이 책은 '괴테'로 시작해서 '괴테'로 끝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괴테가 남긴 책 속의 '말씀'을 해석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려움을 쉽게 풀어내는 열쇳말이 담겨 있다. 괴테의 말씀 가운데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구절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해석을 가미해서 책의 내용이 너무 딱딱하지 않고 말랑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책내용은 전반적으로 쉽다. 다른 '인문학책'아니 '철학책'처럼 읽고 이해하지 못할 내용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내용이 쉽다고 인생이 쉬워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성공비결'이 담긴 책을 탐독했어도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관건은 바로 '행동하기'다. 말씀을 듣고 깨달았으면 곧바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괴테의 삶이 그랬다. 그는 옳다는 판단이 서면 망설임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옳은 일이라면 반드시 실천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귀감이다. 또한, '해야 할 일'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괴테의 철학이 담긴 어느 문구라도 펼쳐 봐도 딱 이 두가지를 명심한다면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진리로 향하는 길'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어려운 것이 있다면 '옳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행동이요, '그르다는 것'을 절대 하지 않는 행동력이다. 이렇게나 간단한데도 우리는 의지를 잃고서 '건강'을 해치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몰염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도 무심결에 뱉어버리기 일쑤고, 남을 속이고 해치는 짓인데도 '제 잇속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자위하는 몹쓸 짓을 근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끼지 말고 하라는 '사랑'과 '칭찬'에는 왜 그리 또 인색하기만 한 것일까...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우리가 왜 그랬는지 말이다. 괴테는 '좋은 일'이면 망설이지 않았고, '나쁜 일'이면 수백, 수천 번 생각을 고쳐먹으며 끝내 하지 않으려 했다. 그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저지른 경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고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맘에 드는 구절을 찾기도 할 것이다. 내 경우에는 "가장 오래 버티는 사람이 결국 무엇인가를 성취해 내는 법이지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라는 구절이었다. 괴테는 평생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가 20대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공존의 히트를 치며 엄청난 인기를 끌지만, 그의 두 번째 소설은 그가 죽기 일 년전에 완성한 <파우스트>였다. 무려 60년 동안이나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 결과였다. 괴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럽도록 긴 저술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첫 번째 소설이 너무 큰 인기를 끌었기에 '부담감'이 작용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보다는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는 자살이 끊이지 않은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괴테는 소설속 베르테르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 '덧없는 삶' 때문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그의 책을 읽고 젊은 나이에 삶을 종결짓는 철부지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이 때문에 괴테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끌어내기 위한 역작 <파우스트>를 쓰는데 그만큼 오랜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 결과 60여 년이나 고뇌했다. 만약 괴테가 '오래 버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파우스트>는 끝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괴테는 <파우스트> 완결본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장롱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다 쓰고 난 다음에도 '고칠 것'이 없는지 망설인 까닭이다. 그렇게 망설이다 <파우스트>를 내놓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그가 세상을 위해 내놓은 역작 <파우스트>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결국 '인간은 이상적인 삶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마저 건다'는 숭고한 삶에 대해 피력해 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책 제목처럼 '인간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답지 못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짐승들이 판을 치는 현재에는 더더욱 그렇다.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자국이 이익'을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전쟁의 참상이 어떤가?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는 하던가? 오히려 소중한 생명만 헛되이 사그라들게 만들지는 않던가? '경제위기'다, '기후위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똑똑하다는 정치가들이 내놓은 정책들은 허구헌 날 '쌈박질'하는 것밖에 내놓은 것이 없다. 마치 '쌈박질'이라도 해야 '열심히 일 하는 것처럼' 보이듯이 말이다. 그럴 바에야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일도 하지 않고 '나랏돈'을 축내는 몰염치한 일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참으로 열심히 '쌈박질~ing'이다. 차라리 괴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러면 눈이 번쩍 뜨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