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16 - 제국의 그늘 미국사 산책 16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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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XCV / 인물과사상사 23번째 리뷰]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까지도 미국인들은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을 믿는다고 한다. 심지어 과학을 전공한 박사들조차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이 세상을 조물주이신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그런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는 곳은 미국인들이 사는 땅이라는 결론을 천연덕스럽게 내놓는다. 오죽하면 신앙의 과학적 접근을 허용하며 '지적 설계론'이라는 것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서 미국 공립학교에서 '과학과목'의 내용을 과학선생님이 가르치면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는 법까지 제정하고, 이를 어기면 과학선생님이라도 불법을 저지르게 된단다. 이미 '지적 설계론'으로 인해서 종교적 믿음조차 과학적으로 증빙이 되었으니 과학선생님들은 '빅뱅'이 아닌 '천지창조'로 우주의 탄생을 가르쳐야 한다고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단다.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과 어둠으로 갈라졌고, 이것이 첫째날이다"라는 성경구절을 과학시간에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들은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법'이다. 아직까지도 미국 법정에서 증인이 선서를 할 때 손을 올려놓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미국의 헌법책'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바로 그런 나라다. 유대인들만 하느님께서 콕 집어 지목하고 영원토록 보살펴 주겠다는 '선민의식'을 가진 게 아니다. 미국민들도 <성경>의 말씀에 따라, 인간이 세상 모든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던 것처럼, 인간 가운데 오직 '백인'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만하니 '유색인종'을 짐승처럼 다루고 소유할 권리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미국인이다. 이런 미국에서 아직까지도 '흑백갈등'이 찬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미국에선 신앙심이 깊으면 그만큼 대접을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다른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오직 <성경> 단 한 권의 책만 읽는 조지 W. 부시가 2004년에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강한 미국'을 선호했고, 아들 부시는 이에 부응해 '강경한 대외정책'을 표방하며 미국 이외의 나라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철저하게 악을 응징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들 부시 시절에 '9·11테러'가 일어난 것이 과연 우연일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부시행정부에 속한 측근들의 입을 통한 소문은 거의 대부분이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하는 일이라곤 <성경> 공부뿐이었다고 한다. 중대한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아들 부시는 어김없이 '성경구절'만 달달 인용하였고, 심지어 '이라크 전쟁'을 할지 말지 찬반을 논의할 때에도 아들 부시의 명령은 "이라크 침공이 합당하다는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내라"면서 장관과 보좌진들을 닥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대통령인데도 미국민들은 아들 부시를 또 다시 선택했다. 실수가 아니다. 미국민이 원하는 바였던 것이다. 왜냐면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성경구절'을 들을 때면 애국심이 철철 넘쳐나는 듯한 감성에 푹 빠져드는 유권자들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그렇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하느님이 미국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 가슴 뭉클해지는 무언가가 샘솟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신앙심이 이 정도다.

이런 신앙심은 상식적으로, 또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과학자라면 '검증가능한 것'만을 믿을 수 있다고 해야 하는데, 종교와 신앙에서의 '맹목적인 믿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과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적 설계론'을 옹호하면서 '신앙'조차 '검증가능'한 분야로 확장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지적 설계론자들의 논리는 이런 것이다. 온갖 것을 다 갖춘 '쓰레기장'에 우연히 허리케인이 불어닥친다고해서 비행기가 뚝딱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만약 '비행기'가 만들어졌다면, 이건 '신의 섭리'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가능한 것이다. 왜냐면 전지전능한 신이 이 세상을 만드는 '개입' 없이는 이토록 정교한 시스템을 갖춰서 만들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일부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연'이 개입해서 어떻게 이토록 정교한 것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오직 '필연'만이 가능케 한다. 우리는 이런 '필연'을 '지적 설계'라고 말한다. 바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다. 그럴 듯한 논법을 전개했지만, 이것을 어찌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연히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을테니 필연적인 개입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신의 섭리'라는 주장이 어찌 '과학적 검증방법'이란 말인가?

그런데 '교회의 힘'이 막강한 환경속에서는 이런 주장이 통용될 수도 있다. 또한 '과학'처럼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무장했다는 점이 '지적 설계론'을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미국인들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소문은 거의 대부분 사실로 확인된다. 아니 '무지'하다기보다는 '관심'조차 없다. 자기 조국이 초강대국이 되어서 전세계를 호령하고 있는데, 굳이 뭣하러 역사공부를 하러 골머리를 썩혀야 하겠는가 말이다. 골머리를 썩히기보다 그냥 누리는 것이 훨씬 더 편한데 말이다. 역사공부만 하지 않을까? 다른 공부도 안하긴 마찬가지다. 미국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우려할 정도로 형편없다고 걱정하면서 '한국의 교육'을 본받으라고 입 아프게 외친 이가 바로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이다. 그렇게 형편없는 상식으로 뽑아놓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우려할 정도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강한 미국'을 선호하고, 그 강력함에 취해 있으면서 미국에는 점점 더 많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가고 있었다. 온갖 매체를 통해서 양산되는 '폭력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빈부격차는 초강력한 나라인 만큼 더할 나위 없이 극과 극으로 갈라졌으며, 다인종·다민족·다문화 사회속에서도 소통과 화합보다 우위에 선 '백인우월주의'가 꿋꿋이 자리매김하며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LA한인폭동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위력 앞에 '빈민들'을 처리(?)하는 미국의 기득권 세력들의 행태가 그 단적이 증거들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승자독식주의'는 미국 선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은 '승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횡포를 부렸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 초반까지도 미국은 그런 횡포를 저지르더니 지금에 와서는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만 간다. 그간 미국만의 부려왔던 '권위주의', 또한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이스라엘 따위가 부리기 시작하자 미국의 위협은 더는 먹히지 않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연 미국이 자초한 '승자독식주의'가 더는 미국에 이익을 수반하지 못하게 될 때, 과연 미국은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이래저래 미국이 갖고 있는 딜레마가 나의 호기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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