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3 : 세계편 - 완결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DCCLXXIV / 엘릭시르 7번째 리뷰] 세계편의 결말이 드러났다. 퇴마사들은 지옥을 다스리는 '아스타로트의 재림'을 완성하고 온세상을 파멸로 이끌려는 블랙서클의 마스터와 최후의 결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최후의 결투를 하기까지 '3명의 승정'과 대결을 해야만 한다. 각각 '증오', '공포', '고통'의 주술을 이용해 퇴마사들과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살짝 아쉬운 점은 저자 이우혁이 '세계편의 말미'를 써나갈 당시에 대단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상황이었는지, '3대 승정과 마스터'와 싸우는 이 장면을 대단히 휘뚜루마뚜루 써내려간 흔적을 지우지 못한 것이다. 물론 '국내편'에 비해 세계관이 엄청나게 확장되어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탓도 있겠지만, '세계편'을 읽을 때마다 드는 느낌은 '용두사미'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으로 스토리를 정리하면서 약간이나마 깔끔하게 이야기가 정리된 듯 싶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편'의 엔딩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첫번째 까닭은 '3대 승정을 다룬 분량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점이다. 원래 '단계'가 거듭 될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이 당연한데, '증오의 승정, 코제트'를 물리치고서 만난 '공포의 승정, 젠킨스'는 허나 허탈할 정도로 쉽게 클리어하고, 그 분량 또한 너무 짧다. 그 뒤를 장식한 '고통의 승정, 히루바바'는 대단히 강력한 힘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 '현암, 홀로' 대적하고는 대결이 마무리 되는 전개방식이 너무 아쉽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대결을 치루고서 마주한 '마스터와의 대결'은 더욱더 장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또한 분량이 너무 짧다. 그런 뒤에 등장하는 '악마, 아스타로트의 등장'은 기대한 것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이전 '국내편'에서 보여준 '사악한 뱀, 브리트라의 등장'보다 초라했다고나 할까? 암튼 '세계편'은 <퇴마록>의 팬들에게 엄청난 기대와 함께 실망을 동시에 안겨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리즈다.

  그럼에도 퇴마사들은 '세계편'을 마주하며 그 능력이 대폭 향상되었으니 나름 흡족한 부분이다. 박신부의 기도력은 '베케트의 십자가'를 얻게 되어 아우라를 막으로 펼치는 것 뿐만 아니라 '공모양'으로 발사하는 등 공격력이 대폭 증가하였다. 이현암의 기공력은 '승희의 도움'을 받아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탄'자 계열까지 발휘할 수 있게 되어서 더욱 강력한 공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장준후의 주술력은 애초부터 '완성형 신동'이었으나 아직 어린 나이라서 발휘할 수 없던 힘이 '성장기'를 거치며 자연스레 봉인해제가 되는 느낌으로 점점 거센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승희는 '애염명왕'을 몸속에 깃들고 있기에 '신, 그 자체의 힘'을 발휘해야 마땅하지만, 그 힘이 철저히 봉인된 상태라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의외로 꾸준히 성장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의 생각을 읽는 '투시력'은 점점 컨트롤이 정확해졌으며, 퇴마사들에게 전해주는 힘을 '역이용'해서 상대를 폭주하게 만드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힘'을 주체할 만한 정신력이 따라주지 않아 퇴마사들 가운데 가장 약한 캐릭터로 보이고 있는 점이 살짝 아쉽다. 그밖에도 여러 '서브 캐릭터들'의 능력도 향상이 되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를 테면, '윌리엄스 신부의 이블 파워', '서연희의 심연의 눈' 등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부분으로 '세계관'을 확장시키지 않았고, 독자들의 막연한 기대감만 부풀린 셈이었다.

  <퇴마록>의 주된 주제는 '악령을 물리쳐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세계편'에서 강력한 악의 무리는 '블랙서클'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최종적으로 지옥문을 열어 '악마, 아스타로트'를 이 세상에 재림케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블랙서클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모두를 미워하라"는 마스터의 명령(?)에 따라 제각각의 재주를 발휘해 온 세상을 향해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의 행적은 각국의 고위급 인사를 '좀비'로 만들어 저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대한민국에 이집트의 망령인 '세크메트'를 부활시켜 전쟁위기를 고조시켰고, 영국에서는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을 불러내어 캘트족의 영광을 위한다며 온세상에 저주를 퍼부으려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네트워크 저주를, 독일에서는 늑대인간의 출몰을 부추겨 대혼란을 불러 일으키려 했다. 그리고서 마주한 '3대 승정' 코제트, 젠킨스, 히루바바를 차례로 격파한 퇴마사들은 블랙서클의 마스터와 최종 대결을 벌인다. 하지만 '지옥문'은 이미 열려 있는 상태였고, 그 지옥문을 통해서 '악마, 아스타로트'가 재림하게 된다.

  아스타로트는 루시퍼, 벨제부브와 지옥을 다스리는 '3대 악마'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악행을 활발하게 저지르는 루시퍼와 벨제부브와는 다르게 아스타로트는 '참모 역할'로 주로 하며 본격적인 활동(?)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스타로트의 원'과 같은 저주의 흑마술 주문에는 자주 거론되지만, 직접 등장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악명 높은 악마는 아닌 셈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스터에 의해 '재림'한 아스타로트는 별다른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서 순순히 지옥문을 닫고 물러나는 모양새를 보인다. 물론 악마가 선행을 베푼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아스타로트가 원하던 것은 따로 있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퇴장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고통'이었다.

  아스타로트가 말한 '영원한 고통'은 무엇일까? 그건 인간들끼리 싸우면서 생기는 '부산물'이었다. 미워하고,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해 피를 흘리고, 끝없이 죽고 죽이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인간 스스로 파멸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로 인해 인간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한없이 기쁘게 즐기는 악마가 바로 '아스타로트'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공급해주는 퇴마사들의 활동이 아스타로트는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이게 과연 무슨 말일까? 왜 악마가 퇴마사들의 활동을 환영하냔 말이다. 그건 '악의 힘'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따르고 마는 나약한 인간들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울부짓는 인간들의 외침만으로도 충족할 수 없는 '고통의 쾌락'을 퇴마사들이 악령과 맞서 싸우면서 '악마의 진정한 힘'을 깨우쳐 나가는 퇴마사들 덕분에 '고통의 강도'는 더욱더 강력해지고 순수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모르고 저지르는 악행보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악행 때문에 '죄책감'에 휩싸여 더욱더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퇴마사들은 악령들을 물리치고 '순수한 영혼'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악령'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악령은 그때문에 더욱 인간에게 달라붙길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악령은 악행을 저지르는 일보다 '인간이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에 더 즐거움을 얻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올바르게 실천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깨닫고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악마는 즐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악의 힘'에 빠져서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악마 같은 인간'은 어찌해야 할까? 그들도 '인간'이기에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기에는 '악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선의 힘'이 너무 초라해보여 답답해지게 된다. 그렇기에 퇴마사들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한 셈이다. 퇴마사들이 왜 좀비나 흡혈귀에게 물어 뜯길 위기에 처했을 때도,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좀비와 흡혈귀를 파괴하지 않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망설이는 것인지, 답답해 미칠지경에 이를 지라도 우리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못말리는 악당은 그 자리에서 바로 '처형'을 하면 속시원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악당 하나를 처단하는 것으로 '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또 다른 악당'이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악당이 등장할 때마다 처단하는 방법으론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위해서라도 '악당'이 만들어지는 원인을 찾아 발본색원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악당들의 변명'을 듣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변명은 듣되, 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아야 한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악당에게 일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높은 도덕성을 갖춘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닌 '죄 많은 사람'이 따끔한 일침을 놓아봐야 악당의 조롱거리만 늘어날 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퇴마사'를 등장시켰다. 악령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말이다. 이들의 행보는 '혼세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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