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5 - 혁신주의와 '재즈시대' 미국사 산책 5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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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I / 인물과사상사 12번째 리뷰] 미국은 18세기에 독립을 한 이후로 1800년대를 '팽창주의'로 마감하고, 바야흐로 1900년대에는 '대혁신의 시대'를 맞이한다. '프런티어의 종말'이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영토를 차지하고서 마땅히 새로 개척할 곳을 찾지 못하자, 곧이어 '혁신주의'가 찾아온 것이다. 그로 인해 1910년대까지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새로운 것들' 때문에 혼란을 겪지만, 1920년대부터는 미국의 대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른바 '재즈시대'다. 그도 그럴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마감한 뒤, 미국은 '유럽의 재건'을 위해 날마다 공장을 새로 짓게 되고, 그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마다 미칠 듯이 팔려나갔다.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아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다 미국은 '하는 것'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온갖 이슈를 몰고 다닐 만큼 전세계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유럽은 이제 미국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 셈이다.

  허나, 미국은 두려워하게 된 것이 하나 생긴다. 바로 '공산주의'다. 1차 세계대전 도중에 벌어진 '러시아혁명'은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에 의해 성공하게 되고,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소련의 탄생은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이 되고 만다. '프롤레타리아(무산자)'가 '부르주아(유산자)'를 때려잡아 모두가 공평한 세상을 만든다는 이데올로기에 전세계의 '노동자들의 단결'이 실현될까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일은 없었다. 공산주의는 이념과는 달리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실현'되지 못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국가가 탄생한 초창기에는 얘기가 달랐다. 부르주아를 때려잡아 '공평하게' 부를 나누어 갖는 모양새가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국가의 노동자들이 행여나 '공산주의'에 빠져들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혁명'이 성공하자, 그 두려움은 곧 '실체'가 되어 열렬한 반공주의 노선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초기단계의 '노동조합'마저 억압하며 '노동자들의 결집'을 격렬하고 폭력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오늘날에도 '노동조합'이 크게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다. 그 흔한 '강성노조'를 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는 한편, 이 시기 미국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열광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그닥 환영을 받지 못한 '프로이트'가 미국에서 강연을 하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성(性)에 관련된 것에 유독 관심을 보이곤 했다. 쉽게 말해, '성욕'에 관련된 일에 미국인들은 깊은 관심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간 미국에서 '성욕'은 억압된 분위기였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관에서 '문란한 성행위'는 금기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욕'은 쉽사리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런 차에 '프로이트'가 등장해서 '성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견해를 밝히자 미국인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성욕'에 해방감이라도 느낀 듯이 프로이트를 열렬히 반겼고, '섹스'도 활발하게 진행시켰다. 어찌보면 미국인에게 새로운 '프런티어'를 제공해준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대륙의 거의 모든 땅을 '개척'해버린 상태에서, 새롭게 개척할 마땅한 것이 없었던 차에 프로이트는 미국인들에게 '미개발지'였던 성욕에 불을 붙여버렸던 것이다.

  마침맞게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젊은 남성'은 유럽의 전쟁터로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젊은 여성'은 해방구를 찾지 못한채 쌓여만 가는 '성욕'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가버리고 '섹스'에 열광해버리고 만다.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여성참정권'도 법안을 통과시키게 되고, 공공연한 장소에서 여성들이 '짧은 치마'와 '짧은 머리', 그리고 남성들과 '맞담배'를 피우면서 한층 성에 대해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때마침 '낙태금지법'도 폐지가 되며 합법화가 되자 여성들은 '피임법'을 배울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섹스'는 더욱더 자유분방해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성적 문란'은 공공연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섹스를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임신과 낙태까지 '양성화'되어 문란한 성풍속이 다반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합법적인 '낙태'는 여성의 인권을 높여주는 효과를 낳았다. 불법이었을 때에는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에도 아기를 낳아야만 했고, 그로 인한 '폭력적인'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고통에서 여성들은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태를 합법화하자 여성들은 '아이만 낳다' 삶을 마감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피임에 관한 정보'까지 여성들끼리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의 몸'은 더는 '남성의 것'이 아닌 '자유'를 얻게 된 셈이다. 이는 '피임약'의 발명과 더불어서 여성의 자유를 본격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1900년대 미국사회에 '섹스 열풍'이 분 까닭은 이렇게 '프로이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한편, 이 와중에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점점 더 심해졌다. 1900년대 들어서 신문, 영화, 전화, 백화점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선보였는데도, 이러한 변화는 어디까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유명한 '퓰리쳐 상'도 이 당시에 만들어졌는데, 그 상을 심사하는 위원들은 3명이었는데 반드시 '백인, 남성'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단다. 또한 사회 전반적으로 '와스프(White, Anglo, Saxon, Protestant)'가 아닌 것은 인정받을 수 없는 분위기일 정도로 '백인우월주의'는 팽배했던 시기다. 물론 지금까지도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세계대전에 참전할 병사들이 모자라 '흑인장병'을 징집할 정도였는데, 이들 '흑인 참전군인'들은 전장에서도 최악인 곳에만 보내질 정도였고, 참전하고 돌아온 뒤에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비단 흑인만 차별 받았겠는가. 아시아계 가난한 노동자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미국경제가 호황을 넘어 흥청망청할 지경인데도 '아시아계 거물'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사회는 여전히 '백인우월'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백인들 가운데서도 전쟁으로 인해 '독일계'는 빠르게 퇴장할 수밖에 없었고, '아일랜드계'는 가난한 노동자 신세를 면치 못했으며, '유대계'도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가운데 '독일계 유대인'들의 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고 한다. 여기에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노동조합'을 주도했던 이들이나, '아나키스트' 같은 사회주의계열의 사상가들도 '공산주의 탄압'과 맞물려서 똑같이 차별 당했다. 미국사회의 '물질주의'가 팽배한 까닭을 짐작케 하는 일면이다. 한마디로 '백인'도 아닌데 '돈'마저 없으면 얻는 것은 '천대'뿐이었던 것이다. 공평하고 동등한 '기회'를 달라는 목소리는 미국에선 좀처럼 듣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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