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한국 기업에 거버넌스의 기본을 묻다 서가명강 시리즈 23
이관휘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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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 / 21세기북스 24번째 리뷰] 기업은 '경제의 주체'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국가경제의 기틀이 되는 '경쟁력'도 기업이 그 척도가 되며, 나라살림의 원천이 되는 '세금'도 기업의 경영이익에 따라 더 많이 낼 수도 있고,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또한 그 양질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까지 좌우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은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기업의 목적 또한 '단순한 이윤추구'만이어선 곤란하다.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지구와 국가와 사회와 개인에게 '해악'을 끼치며 벌어들이는 이익이라면, 그런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은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테면, 범죄집단과 다를 바가 없는 기업에 의해 국가운영이 휘둘리고, 그런 범죄집단에서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맘 편하게 살 수 있겠느냔 말이다. 또는 이윤추구를 한답시고 '공해물질'을 제대로 된 정화장치로 거르지도 않고 배출해서 우리 주변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에서 아무리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해도 결국 '인간조차' 살 수 없는 환경에서 병들어 고통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좋은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지구환경을 걱정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사회전반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직장일을 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개개인의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안정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좋은 기업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 그럴까?

  그건 '기업의 주인'이 명확하지 않은 까닭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의 '창업주'가 위와 같은 좋은 취지로 기업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경영권'을 유지하며 기업을 끌어나가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기업을 '위기'에서 살리는 일이 기업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 버리고, 그러기 위해서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맡기는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살려내고 이윤을 극대화시켜 '좋은 기업'으로 새출발을 하면 된다. 그러나 '경영권'을 지켜내다보면 주주와 채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좋은 기업의 활동으로 이윤추구를 극대화시키는 프로젝트(사업)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주주와 채권자 들이 되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주주나 채권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기업은 '위기' 앞에서 흔들리기 마련이다.

  21세기 들어서 지구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기후변화, 탄소중립, 원전제로 등등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나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마저 들 정도다. 인류가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오면서 이토록 '급격한 환경변화'에 직면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구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인류가 살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50도가 넘는 폭염에,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의 추위, 종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은 전세계 곳곳을 홍수와 가뭄, 그리고 야구공보다 더 큰 우박을 떨어뜨리고, 2개 이상의 강력한 태풍과 토네이도가 시도때도 없이 강타하는 등 재앙의 빈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의 급감'은 단순히 식량난을 불러오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난'까지 동시에 불러와 사회전반을 뒤흔들고 만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류는 어디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엉뚱하지만 '좋은 기업'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경제적 풍요'에 따라 삶의 수준이 결정된다. 바로 대한민국이 '산 증인'이지 않은가 말이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빠른 경제 성장'과 더불어 전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한 나라다. 물론 그 경제성장 과정에서 '불합리한 점'이 발생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경제성장으로 인해 '삶의 질'이 개선되자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합리한 점'들을 하나둘 고쳐나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를 통해 그 수준에 맞는 품격을 만들어내는 위대함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높은 도덕성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문화선진국'이었기에 뛰어난 경제력에 걸맞는 아름다운 전통을 되살리며 '불의'와 '불공정'을 참지 않는 정의로운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는 대한민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런 대한민국이 앞으로 해나갈 일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바로 '좋은 기업'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일이다. 기업을 지지하는 일은 당연히 '소비와 투자'를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갖춘 경제력으로 '좋은 기업'을 지지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먼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 적극적인 기업을 지지하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전 국민의 99%가 노동자인 나라가 '노동환경'에 무심하게 되고, 그저 싼 값의 물건, 유명 브랜드에 치중하는 소비나 투자를 일삼게 된다면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처우개선을 하려 들지 않게 된다. 오히려 노동자를 혹사시키면 시킬수록 매출이 늘어나니 더욱더 혹사시킬뿐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환경을 쾌적하게 만들려 노력한다는 기업의 속사정에 관심을 높이면 '기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를 가혹하게 착취하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퇴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기업 뿐만 아니라 국외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수입해서 소비하고 '해외투자'하는 기업 가운데 '좋은 기업'을 선별한다는 자세만 취해도 기업문화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윤을 추구한다면 억지로라도(?) '좋은 기업, 흉내'라도 낼테니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구환경'을 깨끗하게 만들려 노력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소비와 투자를 하게 된다면 전세계적으로 '좋은 기업'은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상식적으로 기업의 주인은 '창업주', '주주', '채권자' 일 것이다. 누구 하나라고 하기보다는 '모두'가 기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은 그 '주인'이 바라는대로 운영되기 마련이다. 기업의 경영을 통해서 이윤추구의 극대화시키는데 어느 누가 반대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 운영을 잘해서 해마다 이윤을 빵빵하게 늘려나간다면 누가 주인인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모두'가 만족할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윤배분의 불균형, 불공정이 일어나게 되면 '주인 자격'을 갖춘 이들은 서로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려 싸우려 들 것이다.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어 '부도'나 '폐업'을 할 지경에 이르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것이다. 그럴 때는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지' 더욱 신랄하게 따지며 서로 더 적은 손해를 보려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책에서 논하는 거의 대부분이 바로 '그 최선'이었다.

  그러나 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소비자'다. 아무리 좋은 상품(또는 서비스)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가 없다면 누가 주인인지 따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그렇기에 기업은 '소비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그렇게 존재할 가치를 부여하는 이가 진정한 주인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소비자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좋은 기업일 수밖에 없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쁜 기업은 바로바로 솎아내야 한다. 그 역할도 소비자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기업들이 그러한 정보를 순순히 내놓을리 없다. 자신들이 좋은 기업인지 나쁜 기업인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일반 소비자들이 기업을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좋은 기업'이 스스로 티를 팍팍 내고 있다는 것이 희소식이다. 기업들 스스로 '선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홍보전략을 짜고 있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이려 애쓰고 있단 말이다. 이는 과거에 '단순한 이윤추구'만을 하던 기업의 역할에서 한단계 격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일하기 좋은 기업'의 명단을 작성해 언론홍보는 경향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좋은 기업'이 더 빨리 망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면 할수록 '기업활동'하기 힘들어지게 되어 '실적'도 떨어지고, '주가'도 떨어지고, '수익률', '수익성'이 다 떨어저 주주에게 돌아가야할 이득도 현저히 떨어지는 경향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주에게 돌아가야할 이득을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데 써버려서 '배당금'이 줄어들게 된다면, 이를 좋아할 주주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업의 진정한 주인인 '소비자'가 깨어나 현명한 투자를 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 당장 나에게 돌아올 배당금이 줄어들지라도 '좋은 기업'이 살아나 더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이 펼쳐져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환경이 개선되고, 노동환경이 쾌적해지게 되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둔 '깨어있는 주인'이 되도록 말이다. 그저 꿈같은 기적을 바라는 몽상적인 이야기 같겠지만, 우리 모두가 '실현'시키지 않는다면 인류의 절멸을 우리 세대가 직접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현실을 맞딱뜨리고서 얻을 '이윤추구의 극대화'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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