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3 -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 미국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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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VII / 인물과사상사 10번째 리뷰] 1882년(고종19년)에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미국을 '영토 욕심이 없는 나라'로 인식하고서 서양인들 가운데 예를 안다는 뜻으로 '양대인(洋大人)'이라 존칭했다고 한다. 일본과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고 다른 서양국가와도 '불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한 고종은 미국에 거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에 큰 관심이 없었다. 조선에서 '보빙사(답례로 외국을 방문하는 사절단)'를 파견할 때만해도 미국의 기업은 큰 관심을 두는 듯 싶었으나 '통역'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사업 이야기를 제대로 꺼내지 못한 탓인지 미국의 관심은 금방 시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국 정부도 조선을 외면하고 말았다. 이후 1905년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을 인정해는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맺고 말았으니,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하릴없이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잡고서 버둥거렸으나, 미국은 조선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는 '국권피탈 이후'에도, '한국전쟁 이후'에도 오매불망 미국만 바라보고 있는데, 미국은 우리에게 얼마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3권의 내용은 미국의 '노예제'와 '남북전쟁'을 주로 다뤘다. 사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노예해방전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노예해방'을 주장했던 북의 연방군이 승리를 했음에도 흑인노예들의 처지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인기도 당시의 흑인들 사이에서 그리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어리둥절할 법도 싶다. 지금도 미국 흑인들의 이름 가운데 '링컨'이란 이름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남북전쟁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아닐지 의심해본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도 '노예제 폐지'에 적극적인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미국사에서 '남북전쟁'을 중요하게 다루는 까닭은 바로 '미국 흑인노예해방의 시작'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흔히 알고 있기로 미국의 북부는 '상공업'이 발달해서 자본주의 시장이 활성화되어 노예보다는 '자유민(노동자)'가 더 필요했고, 남부는 면화, 담배 등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대농장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노예'가 더 많이 필요했었기에, 남북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를 중재하려던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선언'까지 하면서 노예제 폐지를 통해 미국의 통합을 끌어내려 했지만, 남부쪽에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부득이하게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이것이 거의 틀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남북전쟁의 시작은 남부의 연맹군이 아닌 북부의 연방군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면서 발발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애초 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도 '노예제'와 하등 상관이 없었고 말이다. 그리고 남북전쟁 초기만해도 북군이 아닌 남군이 더 우세했다고 한다. 왜냐면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미군의 군사장교들이 대부분 '남부쪽 사람'이었기 때문이란다. 아무래도 장교들은 일반서민 출신보다는 돈 많은 부자나 배운 것이 많은 엘리트 들이 차지하기 마련이라, 당시 미국 경제의 부는 거의 대부분 '남쪽 주'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황이 남부연맹쪽으로 유리해지자 북부연방군의 수장인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선언'을 내세우며 불리한 상황을 타계하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술책이었다고 한다. 이건 또 뭔소리고 하면, 애초에 남부에서 생산된 면화는 70% 이상 영국으로 수출이 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하면 원활한 면화수입을 통해 자국의 산업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영국군의 참전'이 있을 거라는 예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남부연맹군이 유리한 상황인데, 영국군까지 연맹군 편을 들게 되면 북부연방군 처지에서 좋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컨은 영국의 참전을 막을 방법으로 '노예해방선언'을 단행한 것이다. 영국이 참전하게 되면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쪽을 편들게 되는 것이라면서, 참전하면 찝찝해지게 만드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만약,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에 진심이었다면, 연방군의 승리와 동시에 미 전역의 '노예들'을 자유민으로 보장하고, 더 이상의 흑인노예에 대한 탄압이나 폭력, 수탈,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법안을 단호하게 시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링컨은 헌법에 '노예해방'에 대한 언급을 넣는데까진 진척시키지만, 실질적으로 흑인노예들이 처한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나몰라라'하며 방조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전쟁에서 패배한 남부연맹 주에서는 전쟁 패배에 대한 충격과 좌절 따위를 풀기 위해 '흑인을 향한 폭력'을 자행했다. 그 유명한 KKK단원의 활동의 시작이 바로 이 시절이다. 그러나 흑인노예를 향한 폭력은 '인디언의 처지'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에도 북부연방군들의 주요 표적은 남부연맹군이 아니라 '서부의 인디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영토야욕'은 정말이지 끝이 없었다.

  미국 정부는 '명백한 운명'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앞세워 '멕시코 전쟁'을 일으켜 태평양 연안까지 영토를 확장시키는데 머무르지 않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을 학살하며 그 땅에 '철도'를 깔아버렸다. 이런 만행은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에도 만연했고,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더욱 박차를 가했다. '대륙횡단열차'를 완공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로부터 '알라스카'까지 사들여 야심차게 '캐나다 영토'까지 차지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자, 영국은 부랴부랴 캐나다를 '영국령'으로부터 '자치독립' 시켜버리고 미국의 야욕을 한풀 꺾어버리게 된다. 이런 미국을 '양대인'이라 추켜세우며, '영토야욕'이 없는 예의를 아는 서양인으로 바라보았으니, 고종의 안목도 형편 없거니와 당시 조선지식인들의 인식수준이 정말로 형편없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정도로 높은 '혜안'을 갖고 있느냔 말이다. 문재인정부 때 다른 것은 차치하고 '외교력'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현 정권인 윤석열정부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못하지만 '외교'를 가장 못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대통령의 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무슨 외교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할 말은 있는지, '한미일 공조'만큼은 탄탄하다고 자랑질인데...글쎄, 고종이 일본에 이어 미국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해놓고서 '한미일 공조, 어쩌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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