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1 - 몽고의 영웅들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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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독서를 즐겨하기 시작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고3수험생 시절'이었다. 남들은 공부하느라 학원이다, 과외다, 정신없이 바쁘던 와중에 나는 천하태평하게 학교를 파하면 집에 가서 '만화책'과 '무협지' 삼매경에 빠졌다. 뭐 그래서 성적은 바닥을 쳤지만 어찌어찌 대학은 들어갔고, 졸업하고 취업하려 하니 때는 IMF 시절이라 '정규직'은 뽑아주지도 않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그마저도 4000: 1 이라는 그지 같은 경쟁률과 합격점수 백점 만점에 127.3점이라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통에 알바와 비정규직의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맞게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간병비'라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지나갔다. 이 시절의 나를 웃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우혁'과 '김용'의 소설들이었다. 그야말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아직도 집에 모셔서 있다.


  그 시절엔 <영웅문>라고 불렸다. 곽정과 황용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동사서독 남제북개'라는 네 명의 무림고수가 펼쳐내는 무협의 세계는 정말이지 판타스틱 그 자체였다. 고교시절에는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이 책을 한권쯤 '독파'하고 난 뒤에야 공부에 탄력을 받을 정도였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면서 공부할 수 있었던 '각성제'가 바로 <영웅문 1, 2, 3부>였던 것이다. 지금에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그리고 <의천도룡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출간되었다. 그 가운데 1부에 해당하는 <사조영웅전>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사조영웅전>은 이전에 출간되었던 '해적판'과 달리 '정식라이센스'를 받아 출간한 '정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초판이 나왔을 때만해도 오탈자를 비롯해서 파본이 엄청났었기에 그닥 '소장하고픈 책'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수정판'이 나왔으니 괜찮을 법도 하다. 그래서 꽤나 오랜 시일이 지났지만 다시금 읽고자 마음 먹은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리뷰'를 쓰지 못했으니, 다시 기억을 새롭게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써보려 한다. 암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과거의 '해적판'과는 내용이 사뭇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읽었을 때 보니 <영웅문>에서는 곽정과 함께 했던 동물이 홍마, 흰수리, 그리고 칼새(?)까지 모두 세 마리였는데, <사조영웅전>에서는 홍마와 흰수리만 등장하고 작고 날쌨던 조그만 새는 등장하지 않았더랬다. 이번 '완역본'에서도 두 마리만 등장할 것 같은데, 더 달라진 것들이 있는지도 살펴보아야겠다.

  <사조삼부곡>이라 불리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는 각각의 주제를 담고 있다. 먼저 <사조영웅전>에서는 '영웅'이란 무엇인가? <신조협려>에서는 '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의천도룡기>에는 '정사(正邪)란 무엇인가?'다. 먼저 <사조영웅전>의 주제인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이다. <사조영웅전>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시대배경이 금에게 쫓겨 남송으로 내몰린 형국이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곽정은 초원에서 새롭게 등장한 '테무친(훗날 칭기스칸)'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다. 남송과 금, 몽골(훗날 원)의 세 나라가 각축을 벌이던 어지러운 시절이니 '난세의 영웅'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혼란한 시기에 굶주리고 핍박받던 백성들은 난세를 평정할 '영웅'을 고대하던 시절이었으니, <사조영웅전>의 주제가 '과연 '영웅'은 누구란 말이냐?'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세 나라 가운데 최종 승자는 몽골이니 '영웅'은 몽골인 중에서 골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세 나라 가운데 금과 몽골은 '오랑캐'니 진정한 영웅은 '한족출신'에서 골라야 한단 말인가?

  여기서 작가인 '김용'의 고심이 엿보인다. 오늘날의 중국은 수많은 '소수민족'을 포용(?)한 채 '한족' 중심으로 체제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한족'이 아니면 영웅대접 받기조차 버거운 실정인 것이 사실이다. 허나 '중국의 역사'는 한족만의 '단일'역사가 아니다. 역대왕조 가운데 수없이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 세운 왕조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그들 이민족 왕조가 끝내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왕조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역사관이 '중화사상'을 넘어 이웃나라까지 '한족문화의 틀'안에 들어와 있었다며 자국의 역사를 한껏 부풀려 보려는 오만함마저 보일지경이라 '국제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판국에 한낱 <무협지>에 불과하지만, 자국의 역사를 시대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객관적 서술'이 곤란했다고 작가 스스로 고충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그럼 독자의 판단에 맡기자니, '김용의 소설'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한족출신 영웅'만을 고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민족의 나라였던 '금의 역사'도 중국사, '원의 역사'도 중국사인데, 어찌 '한족왕조의 영웅'만 돋보이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영웅'이 누구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겠기에 작가 나름대로 '주관'을 펼쳐냈으니, 한국의 독자 스스로 읽어가면서 그 답을 찾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작가도 '영웅'이 누구냐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니 정답은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영웅'이란 힘이 가장 쎈 사람일까? 역사적으로는 '칭기스칸'이 대륙을 통일하니 영웅이라 할만하다. 허나 무공으로 보면 '동사서독 남제북개'를 따라온 자가 없다. 이 네명은 그 유명한 '화산논검'에서도 실력을 겨루었으나 결판을 내진 못했더랬다. 허나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수는 없기에 강호의 무림고수들은 싸우고 또 싸울 뿐이다. 그러나 무림고수들도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기에 '내공'과 '외공', 그리고 권모술수에 능한 '지략'과 음험하기 짝이 없는 '독극물'까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자가 승리하는 강호의 세계에서 누가 가장 힘이 쎄다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때로는 '가위바위보' 대결처럼 승패가 엇갈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경우엔 누구를 승자로 삼을 것인지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영웅을 찾는 것도 찾는 것이지만 '기준'을 세우는 것이 가장 곤란하다.

  그렇다고 '영웅'으로 뽑는 기준을 도덕성으로 가를 수도 없다. 평범한 진리로만 따지면야 진정한 영웅은 가장 선한 영웅을 뽑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통일왕조를 세운 이를 영웅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런 영웅은 대부분 '전쟁영웅'이 대부분이고, 전쟁영웅은 거의 모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학살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사조영웅전> 말미에서도 전진교의 도사를 초빙해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칭기스칸이 전쟁중에 학살을 많이 하면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도사들은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하고 말았다. 물론 무능하고 포악한 군주에게 핍박을 당하는 불쌍한 백성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군대를 일으키고 정벌한 지도자는 영웅이라 불릴만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정의로운 전쟁(침략)'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그러니 도덕성으로 기준을 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진정한 영웅 찾기 어려운 와중에 <사조영웅전>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남송 강남 우가촌에 곽소천과 양철심이란 의형제가 살고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이라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을 정도인데, 이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 첫번째 사람은 전진칠자 중 한 사람인 '장진자 구처기'다. 구처기는 무림고수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애국심을 가졌기에 '금나라 사람'과 그들을 돕는 '역적' 무리를 대단히 싫어한다. 그가 이 한적한 마을로 방문한 이유도 '역적'을 처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금군이 구처기를 뒤쫓아 왔다가 그만 곽소천과 양철심이란 애국자가 애꿎은 희생을 당하고 만다. 구처기는 일면식도 없었던 자신을 돕다가 도리어 해를 당한 두 애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이 둘의 후손을 살려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이런 복잡한 사연으로 구처기는 '단천덕'이란 두 영웅을 죽인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뒤를 쫓았고, 이 과정중에 '강남칠괴'와 단단히 큰 오해를 사서 강남 취선루라는 곳에서 엄청난 무공대결을 펼쳤다가 엉뚱한 희생자를 낳게 되고, 서로 오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대결'을 약속하게 된다. 그 대결이란 다름 아닌 억울하게 숨진 '두 애국자의 후손'을 각각 찾아서 18년 뒤에 다시 이곳 '강남 취선루'에서 두 제자의 대결로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었다. 큰 대결을 치룬 직후라 서로 피투성이가 되었고, 큰 오해를 사서 양쪽 모두 망신살이 뻗쳤으니, 18년 뒤에 승부를 다시 가리자는 말에 솔깃했던 것이다. 더구나 '애국자'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니 무림고수의 명예에도 도움이 되는 아주 좋은 승부라 여기자 '구처기'와 '강남칠괴'는 18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두 애국자의 후손을 찾아 떠나게 된다. 여기서 영웅의 첫 번째 조건인 '나라사랑'이다. 흔히 말하는 '우국충정'이 영웅의 조건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한족의 관점'에서 영웅의 조건을 이야기하였다.

  한편, 두 애국자(영웅)의 후손은 곽정과 양강이다. 곽소천과 양철심 두 의형제가 한시에 두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정강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곽정, 양강'이라고 이름 짓자고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일대 혼란이 벌어지면서 두 명의 아내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곽소천의 아내 이평은 저 먼 북쪽의 초원에서 '곽정'을 낳았고, 양철심의 아내 포석약은 동북의 금나라 황실 안에서 '양강'을 낳게 되었다. 1권에서는 곽정의 어린시절만 나오고, 2권에서야 양강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암튼, 곽정은 몽골의 초원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여섯살 무렵에 강남칠괴와 만나게 된다. 그렇게 곽정은 일곱명의 사부와 만나게 되어 무공을 익히게 된다. 12년 뒤에 있을 대결을 위해서 말이다.

  또다시 한편, 양철심의 아내 포석약을 탐한 금나라 여섯번째 황자 완안홍열은 곽소천과 양철심을 죽인 원흉이었다. 비록 그의 두손으로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미녀 포석약을 얻기 위해서 몰래 사주했으니 불구대천 원수임에 틀림없다. 허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포석약은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금나라 황궁에 머물게 된다. 그런 개인적인 일을 마무리한 완안홍열은 주변국을 정탐할 목적으로 몽골의 초원으로 행차한다. 그곳에서 완안홍열은 몽골 부족의 추장 '테무친(훗날 칭기스칸)'과 조우한다. 그리고 금나라의 가장 큰 적은 남송이 아니라 몽골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몽골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웃한 금나라가 송나라를 격파하고 크게 위세 떨치자 금나라에 사대를 하며 속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테무친'을 비롯해서 몇몇 부족들은 주변 부족들보다 훨씬 탄탄한 세를 과시할 수 있었다. 아직 금나라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정예병'이라고 할만한 강한 기병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몽골인들은 서로 '신의'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길만큼 순박하고 착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거짓을 품거나 약속을 어기면 부족끼리 똘똘 뭉쳐서 '부정한 짓'을 한 무리를 무너뜨리는 소수민족의 결기를 보여주었다. 과거의 여진족 시절엔 금나라도 그러한 '탄탄함'을 보였지만, 대륙을 정복한 뒤에 나태하고 나약해진 '금나라 군대'는 겉모습만 웅대하고 거창할 뿐, 내실은 조금도 몽골의 전사보다 허약할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완안홍열은 간파했더랬다. 이런 강건한 몽골의 기운을 고스란히 머금은 순박한 '한족 소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곽정'이다.

  여기서 영웅의 두 번째 조건이 나타난다. 영웅은 '민족'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차피 주인공은 '한족'이다. 허나 금나라에도, 몽골에도 '영웅의 기질'을 타고난 인물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오롯이 밝히고 있다. 심지어 '역사속 인물'뿐 아니라 소설속' 가공의 인물'일지라도 가리지 않았다. 아직 초반이라 무림고수는 '전진교'와 '강남칠괴'만이 등장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무림인들 중에서도 '영웅의 기질'을 가진 이들이 속속 보인다. 그리고 영웅의 반대쪽 편에 서있는 '악당'도 등장했다. 바로 진현풍과 매초풍이라는 '흑풍쌍살'이라는 악당이다. 이들은 사실 동해 도화도주 황약사(동사)의 제자들이었으나 괴팍한 스승 덕분에 문파에서 파문을 당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이 스승님 몰래 사랑을 나누고, 그 죄를 물을까 무서워 황약사가 보관중이던 <구음진경> '하권'을 몰래 빼돌려 섬에서 도망쳐 나왔기 때문이다. 그 후 그 둘은 스승님이 자신들을 찾을까 무서워 몰래 숨어져 훔쳐온 비급을 연마하며 지냈으나, 워낙 고도의 절기가 담긴 '무공비급'인지라 함부로 연마하지 못하고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이라는 두 가지 무공만 간신히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무공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쎘다. 암튼, <무협지>라서 무공 얘기로 새고 말았지만, 영웅은 특정 민족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공평한(?) 조건을 작가는 내세웠다. 심지어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도 않는다.

  어쨌든, 1권의 내용은 18년 뒤의 대결을 위해서 강남칠괴에게서 무공을 배운 곽정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마무리 하였다. 곽정과 평생을 함께 할 '홍마'와 '흰독수리'도 순탄하게 등장했고 말이다. 아직 1권에서는 그밖의 달라진 내용이 크게 없었다. 다음 2권에서는 곽정과 황용의 만남과 함께 '동사서독', 그리고 '북개'가 등장할 것이다. 2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파란만장한 무협의 세계로 빠져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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