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음나무 숲 - 완전판
하지은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하지은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으로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고, 시선은 행간을 뚫고 아래로아래로 내리꽂게 하며, 귀에선 천재음악가들의 음률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정말 대단한 소설이었다. 근데 말이다. 언제나 '극찬'을 마치고 나면 어딘가 구멍이 숭숭 뚫린듯한 헛헛함에 빈구석을 채우기 위한 '비판'을 찾기 마련이다. 뜨거운 조명 아래서 배우들의 열띤 연극이 끝나고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던 관객들까지 모두 떠난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은 것처럼 말이다. 한 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차가운 '분석'만 남고 만다. 이제 하지은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한 '나의 리뷰'가 공연될 차례다.
음악을 소재로 한 소설은 드물다. 귀로 듣는 음악이 가능한 뮤지컬, 오페라, 연극, 영화, 드라마 장르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음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만화'로는 음악을 표현한 것들이 부쩍 늘기도 했다. 비록 귀로 들을 수는 없는 '그림'이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와, 음악을 듣는 청중, 그리고 '그림'으로 그린 음표와 선율 따위로 음악이 전하는 감동을 나름대로 표현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은 오직 글로만 음률과 박자, 그리고 멜로디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오직 '상상력'만을 발휘하도록 만들 뿐이다. 그래서 음악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크게 히트를 한 작품을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책 <얼음나무 숲>도 전형적인 '음악소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판타지소설'이나 '추리/공포소설'로 분류해야 마땅할 정도로 기괴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하지은 장르소설'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좀더 읽어보아야겠지만 말이다.
암튼, <얼음나무 숲>의 첫 인상은 '그로테스크'였다. 기괴하다는 뜻인데, 음악으로 가득한 도시라는 설정도 뜻밖이었고, 그런 곳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도 의외였고, 그 사건속에서 밝혀지는 살인자가 '음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정말 상상밖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얼음나무 숲>은 영락없는 '추리소설'이다. 실제로 살인사건을 파헤치며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피해자'로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인자가 밝혀지기까지 참으로 미스테리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판타지소설'로 읽을 수밖에 없다. 애당초 '가상의 도시, 상상의 현실'에서 그려지는 소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소설의 초반부에는 '천재적인 음악가'들이 등장하며 전형적인 '로맨스소설'로 시작한다. 아니, 그렇기엔 '남녀커플'이 아니라 '남남커플'인 관계로 '브로맨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추리소설'과 '판타지소설', 그리고 '브로맨스소설'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니, 어찌 기괴하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거기다 살인사건의 모티브가 되는 것은 음악도시 '에단'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니,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공포스럽다'고 표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도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얼음나무 숲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악마가 실체를 드러냈다. 납량특집이 따로 없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언제나 음악이 들리고, 음악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음악도시, 에단에 천재적인 연주자 세 명이 등장했다. 하지만 수많은 청중들이 열광하는 인물은 오직 한 명이다.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나토제 바옐'이다. 그 바이올린 신동이 세계투어를 마치고 에단에 돌아오자, 곧이어 '악기경매'가 펼쳐졌고, 그곳에서 전설적인 악기 '여명'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바옐에게 넘겨지게 되었다. J 카논이라는 악기장인이 자신의 혼을 갈아넣어서 만들었다는 딱 하나 뿐인 바이올린인데, 여명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문과 함께 '30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마침맞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하자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제 관심은 바옐이 여명을 연주하고도 살아남느냐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옐이 여명을 연주하고 오랫동안 감춰졌던 '얼음나무 숲'으로 가는 길을 열자마자, 한 여인이 하룻밤 사이에 수십년 동안 방치되어 버린 것처럼 썩어버린 채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여명'이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공교롭게도 그 죽은 여인은 바옐이 연주하던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여명의 소리를 들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정말로 여명은 살인을 저지르는 악기였단 말인가? 근데 왜 연주를 한 당사자가 아니라 연주를 '들은' 사람이 죽었던 것일까? 혹시 그동안 여명을 연주했던 연주가의 실력이 형편없었기에 연주가들이 죽었었는데, 이번에 새로 주인이 된 '바옐'은 천재적인 연주가였기 때문에 살아남고, 오히려 듣는 사람의 수준이 떨어지면 죽게 된 것일까?
하지만 이런 예상은 가뿐하게 즈려밟고 엉뚱한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름 아니라 '바옐'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들, 또는 '바옐의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바옐은 아예 연주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옐이 가장 아끼던 사람들이 죽기 시작하는데, 바옐은 사랑하던 사람들을 위해서 '진혼곡'을 연주하기에 이르렀고, 바옐의 진혼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미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바옐의 진혼곡을 듣기 위해 좀비처럼 달려들기 시작하는데, 과연 진정한 살인자는 누구이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음악을 사랑하는 도시 에단은 점점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둘 죽어나가는 '연쇄살인의 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도대체 '살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런데 살인자의 실체는 뜻밖의 실마리가 잡히게 되고, 바옐과 그의 절친 '피아니스트 모르페'는 그 살인자와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 '얼음나무 숲'으로 달려가게 된다. 과연 그 숲에서 벌어지는 결말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음악이 살인의 소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가? 그 비밀이 모두 풀리게 된다.
그런데 '살인사건'과는 별개로 달달한 로맨스가 동시간대에 펼쳐진다.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 사이에 말이다. 물론 둘 다 남자지만, 천재 음악가이기에 그 둘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찐하다. 더구나 그들의 신분은 평민과 귀족, 그렇기에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셈이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가 아니라 '정신적 관계'였기에 더욱 애뜻하게 펼쳐진다.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짝사랑'은 실체하지만, '짝우정'은 듣도 보도 못했기에, 그 둘의 사이는 '우정'보다는 '사랑'에 어울릴 것이다. 까닭인즉슨, 어릴 적부터 천재, 신동 소리를 듣던 바옐은 첫 눈에 초보 피아니스트 모르페를 보고서 '천재'인 걸 알아챘던 것이다. 그래서 바옐은 모르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연주를 해왔던 것인데, 모르페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반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에 겨워 자신의 모자란 실력 따위에 자격지심을 갖기는커녕 되려 '바옐과 함께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해버리는, 아니 오히려 천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주하며, 바옐을 '동경'해 마지 않는 '단 하나 뿐인 청중'이 되기 위해 열심이다.
반면에 바옐은 자신을 이길 생각도 없이 그저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만족해버리는 모르페가 점점 실력이 늘어 자신의 실력을 앞지를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보고 질겁을 하게 된다. 허나 어릴 적부터 천재소릴 듣던 바옐이기에 겉으로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실력을 향상시키며 모르페에게 범접하지 못할..아니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인식을 콱 심어주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위치까지 쑥쑥 성장하는 모르페를 바라보면서 진정한 천재는 자신이 아니라 '모르페'라는 위기감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결코 티를 내지 않곤 한다. 그러면서 둘은 '함께' 연주를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친구가 되어 버렸다. 비록 모르페가 바옐을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허나 둘 사이를 가로막는 딱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바로 '음의 언어'를 이해하는 바옐과 그렇지 못하는 모르페였기 때문이다. 바옐은 어느날 자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에서 '음'이 '말'로 들리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바옐은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한음 한음에 실어서 들려줄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연주를 하면서 '음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바옐은 거기서 심각한 공포를 느껴버렸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 말이다. 자신은 열심히 말하는데 상대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의 말에 '응답'하지 못하는 고독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절망에 빠져서 살게 된 셈이다. 한편, 모르페는 바옐의 연주가 '보통의 연주'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끝내 '바옐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오직 한 명인 '단 하나뿐인 청중'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남들이 자신을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부르게 된 까닭도 바로 '바옐의 전하는 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둘 사이는 '말하고' '들으려는' 밀접한 사이였던 셈이다. 이토록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최강의 짝꿍', '최고의 사랑'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만약 바옐이 연주하는 '음의 언어'를 이해하는 악마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이 한순간에 '공포소설'로 변모하는 까닭은 바로 '음의 언어'를 알아듣는 악마의 등장 때문이다. 그 악마가 등장하므로써 소설은 삽시간에 '핑크빛'에서 '핏빛'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악마가 이해하는 '바옐의 음의 언어' 덕분에 바옐은 음악에 더욱 정진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청중들은 그런 바옐의 멈출 줄 모르는 황홀한 연주에 열광을 하며 '음악도시 에단'을 더욱 들뜨게 만든다. 만약 사람을 신들린듯 미치게 만들고 황홀하게 죽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단연 '음악'일 것이다. 마치 소프라노가 펼치는 '고음의 향연'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 기절을 하며 픽픽 쓰러지는 청중들처럼 말이다. 바옐이 여명을 켤 때면 그런 일이 펼쳐졌던 것이다. 그렇게 악마는 바옐로 하여금 여명을 계속 켜게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청중들은 더욱더 열광을 하며 바옐로 하여금 연주를 멈추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 들을 때마다 심장을 쥐어짜면서 발작을 일으키고 픽픽 쓰러지는 일을 겪으면서도 말이다. 정말이지 좋아서 죽을 지경...아니, 죽어도 좋을 지경에 이르고야 만 것이다. 이렇게 악마는 자신조차 전율케 만드는 '바옐의 여명, 혹은 여명의 바옐'을 듣기 위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다 다 죽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은 과연 어떻게 극복하게 될 것인가?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읽는이'로 하여금 전율할 수밖에 없게 만든 소설이 대단원을 맞이하게 되었다. 비록 그 전율이 끝나지 않으면 살인사건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죽고 죽이다보면 에단의 시민들도 다 죽을테고, 하나도 남지 않으면 '읽는이'까지 죽여버리고 말텐데,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 굴뚝 같은데, 죽기는 싫으니까...독자까지 죽여버릴 수는 없으니까. 소설이 먼저 끝나고 말았다. 다 읽고 나니 '외전' 하나 남았고, 헛헛한 마음에 '외전'까지 후루룩 읽고마니 더욱더 갈증만 남게 되었다. 정말 죽어도 좋을만큼 짜릿했는데 말이다. 그 짜릿을 하지은의 다른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