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2 : 국내편 - 완결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퇴마록-국내편>의 백미를 꼽는다면, 단연 '생명의 나무'와 '초치검의 비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 편은 드디어 퇴마일행 4명이 모두 힘을 합쳐 '악령의 힘'을 물리치는 대서사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으며, '초치검의 비밀'에서는 퇴마사들의 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며 각각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퇴마(또는 구마)의 힘은 '영능력자'마다 결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친다거나 도움을 준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쉽게 이해하려면, 무당이 굿판을 벌이며 한창 신들리는 대목에 이르러서 마침내 악령을 물리치려는 대목에서 누군가 찬송가를 부르며 주님을 찾는 성경구절을 외거나 찬송가를 목청껏 부른다면 서로의 힘을 북돋기는커녕 도리어 악령의 힘에 영력자들이 다치고 말 것이다. 그런 판국에 기공술 같은 '외공'을 다루거나 '검기'를 뿜어내며 귀신을 썰어버리겠다고 나선다면 홍수를 불로 막겠다며 횃불을 들고 설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유파'의 영능력자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힐러'가 등장해서 나머지 영능력자의 힘을 더해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 <퇴마록>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인 셈이다. 이렇게나 서로의 개성이 뚜렷한 서로 다른 퇴마사들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딱 한 가지는 바로 '악을 물리치는 힘'에 있지 않고, 악령조차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 따뜻한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4명의 서로 다른 영능력자들의 힘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퇴마사의 수장격인 박윤규 신부는 기이한 경험 때문에 늦은 나이에 가톨릭 신부가 되었으나 악령으로부터 가여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구마행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결국 엄청난 영능력을 얻었지만 그 힘을 인정받지 못하고 '파문'을 당한다. 그럼에도 박신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더 많은 사람과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퇴마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자 다짐할 뿐이다. 박신부의 영능력은 그리스도 신앙에서 말하는 '성령의 불꽃, 아우라'다. 대개는 박신부가 들고 다니는 '은십자가'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지만 기도력을 발하면 온몸을 통해서 그 힘을 발휘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을만큼 넓게 펼쳐낼 수도 있다. 아우라는 주로 악령을 제어하는 힘을 발휘할 뿐, '물리적인 타격'은 전혀 줄 수 없지만, 박신부의 아우라는 종종 악령뿐 아니라 영적인 힘이 실린 사물까지도 물리칠 수 있는 일종의 '보호막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승희의 도움을 받을 땐 아우라를 광폭으로 넓힐 수도 있고, 때때로 구체 형태로 뿜어서 내던질 수도 있다.

 

  기공술의 익힌 이현암은 '태극기공'을 홀로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져 죽을 고비를 맞았는데, 한빈거사를 만나 기이한 도움을 받아 주화입마에서 풀려나고 파사신검, 사자후, 부동심결을 익혔으나, 물귀신에게 죽임을 당한 여동생 현아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복수심에 불타서 무리하게 수련을 하다가 또 다시 주화입마를 당했는데, 또 다시 도혜스님의 공력을 받아 수십 년의 내공을 전수받게 되는 무술의 달인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외공과 내공을 모두 갖춘 기인이 등장하기란 매우 어려운 법인데, 마침맞게 이현암에게도 아킬레스건과 같은 결점을 갖게 되었다. 바로 무리하게 고난도의 기공술을 익히다 꼬여버린 기혈 때문에 엄청난 내외공을 갖춘 고수임에도 겨우 상반신과 오른팔에만 기공을 모으고 뿜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엉켜버린 기혈을 뚫기 위해 '해동밀교'의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박신부와 주술의 신동 장준후와 만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주술을 다룰 수 있는 천재아이 장준후는 '해동밀교'의 수제자이자 유일한 전수자로 등장한다. 원래 밀교라는 것은 인도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뿌리는 '불교'와도 인연이 깊고, '도교'의 신선술과도 맥락을 같이 하며, 우리 토종신앙에 해당하는 '무당'의 모든 결을 한 몸에 흡수한 인재 중의 천재인 소년으로 등장하였다. 이 세 가지 유파는 공통적으로 '부적술'을 다루는데, 따라서 장준후는 동양의 모든 술법을 다룰 줄 아는 영능력자로 보아도 무방하다. 허나 불교과 도교, 무속신앙이라는 것조차 서로 다른 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이를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손치더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소설속에서는 '해동밀교'라는 비밀종파를 만들어서 서로 다른 주술을 한데 엮어낼 수 있도록 '5대 호법(장로)'가 몰래 기른 수제자라는 보충설명까지 하였다.

 

  마지막으로 현승희는 고고학을 전공한 유학파로 초기에는 별다른 영능력이 없는 캐릭터였다. 하이텔 연재 당시에도 애초부터 등장 계획이 없던 캐릭이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국내편에서는 별다른 능력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만다. 다만 승희의 아버지가 사물을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염력자인 관계로 승희도 애초부터 대단한 초능력을 소유할 것이라는 단초만 주어졌다가, <퇴마록>의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면서 승희가 갖게 되는 영능력도 점차 대단하게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말세편'에서는 4명의 퇴마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는데, 아직 '국내편'에서는 그 힘에 눈을 뜨지 못하고, 다만 승희의 몸속에 '애염명왕'을 품고 있는 '아바타라(화신)'의 현신인 탓에 큰 힘을 밖으로 뿜어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몸은 보호할 수 있는 영능력자이면서, 동시에 다른 퇴마사에게 자신의 힘을 보태줄 수 있는 능력과 약간의 투시력(독심술)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다른 퇴마사에 비하면 '엑스트라(보조 출연자)'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4명의 퇴마사들이 처음 힘을 합쳐 활약하는 '생명의 나무'편에서는 수메르의 흑마술사들과 대결을 펼쳐야 했다. 특히, 브리트라라고 불리는 '거대한 뱀'을 불러 영생을 바라는 사악한 집단과의 대결이 압권이었다. 원래 뱀을 숭배하는 종교집단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주 출현하였다. 그 가운데 '브리트라'는 인도신앙에서 등장하는 악신으로 사악한 힘으로 사람을 유혹해서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불살라 사라지게 만드는 악마로 등장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 보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신비한 동물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악한 집단은 '뱀'을 숭배하는 것만으로도 영생을 누릴 수 있다며 신도들을 속이는 '사이비 종교'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나타나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홀려 인생을 망치게 하곤 만들었다. 박신부를 비롯한 퇴마사들은 이러한 '사악한 종교'로부터 잘못된 믿음으로 삶을 송두리채 망치고 마는 어리석은 짓을 막고자 힘을 모으게 된다.

 

  그리고 '초치검의 비밀'은 강화도에 감춰져 있던 '단군의 신물(흔히 '천부인'으로 불리며, 칼, 방울, 거울로 알려져 있으며 '천부삼인'이라 부르기도 한다)'을 빼앗으려는 일본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국내의 지킴이들이 벌이는 대활극이다. 이 작품에서는 퇴마사들의 능력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덜 알려진 다른 유파의 능력자들까지 총출동하는데, 암튼 이 작품 한 편만으로도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를 전달하고 있다. <퇴마록>의 매력을 이 한 편에 다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정황까지 겸하 '팩션'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실감이 나고, 흔히 말하는 '국뽕'의 느낌도 가미되어 있으나, 단군을 섬기는 신앙이 '홍익인간(널리 이롭게 하라)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기에, 아무리 우리를 침략한 외적이라하더라도 목숨은 소중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더 강하기 때문에 감히 '인류애'로 승화시킨 드라마라고 소개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매력을 잠시 소개하자면, 우리 나라 강화도에 대단한 영능력의 소유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한날 한시'에 말이다. 여기에 신문기자와 퇴마사들까지 합류하여 대난장을 벌이게 되는데, 그 까닭은 다름 아니라, 고려말로 추정되는 5백명이 넘는 왜구들의 시체들이 온전한 형태의 해골 모습으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들은 당연히 '역사적인 자료가 발굴되었다'면서 취재를 하러 도착했지만, 퇴마사들은 그보다는 심상치 않은 영의 기운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기에 행여 사람들이 다칠까 걱정이 되어 강화도에 왔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5백이 넘는 왜구들이, 그것도 한 방향으로 자세를 잡은 채 가지런하게 출토된 것이 수상쩍기 그지 없기에, 이들이 단순한 도적질을 하러 온 왜구가 아니라 애초에 수상한 목적을 갖고 출병한 군대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수상한 왜구의 해골들이 온전한 형태의 모습으로 하나둘 땅속에서 솟아나게 되고, 이를 더욱 진행시키려는 '3명의 일본 영능력자들'과 여러 유파에서 한데 모여든 스무 명 남짓의 국내 영능력자들의 한 판 대결이 시작된다. 과연 왜구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왜 그들이 '일왕의 삼종신기' 가운데 하나인 '초치검'을 들고 왔으며, 그 초치검으로 우리 땅에서 훔쳐가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 걸까? 이야기를 직접 읽기 전에는 단순한 호기심뿐일테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가슴속에서 울컥 치밀어오르는 '왜놈들의 시커먼 속셈'이 속속 들어나게 되고, 영능력자들의 술수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점점 깊이 빠져들어서 헤어나올 수 없는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설마 아직도 <퇴마록>을 읽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초치검의 비밀'부터 읽어도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