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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 허무의 늪에서 삶의 자극제를 찾는 철학 수업 ㅣ 서가명강 시리즈 32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8월
평점 :
갈수록 [서가명강]의 매력에 빠져든다. 처음엔 호기심에 몇 권 읽어보았고, 읽다보니 '서울대 강의'가 그다지 난해한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고 난 뒤에는 '일반대중서적'을 읽어대듯 마구잡이로 읽어재끼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독학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인문학 분야'를 사사받는 기분마저 들게 되었다. 그간 홀로 '개똥철학'하느라 민망해 죽을지경이었는데 말이다. 올해는 [서가명강]과 함께 하려고 계획을 잡았다. 아이들 논술수업 교재로 삼고서 전권을 독파해보련다.
이번 책은 [인문학-철학-예술철학] 분야로 '독일철학자 니체'의 <비극의 탄생>(1872년)에 관한 내용의 강의다. 니체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고, 28살의 젊은 나이에 써서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정평이 난 책이기도 하다. 그 내용이 제법 난해하다고 하기에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를 통해서 간접적이나마 전체적인 내용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엿본 주된 내용은 바로 '그리스 비극'을 통해서 현대문명의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 하는데, 청년 니체가 쇼펜하우어에게서 영감을 얻어서 썼다지만, 니체만의 독자적인 철학이 돋보이고, 아울러 현대문명을 예리하게 비판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밝음과 질서를 상징하는 '아폴론적인 예술'과 황홀경과 도취에 빠져드는 '디오니소스적인 예술'로 대비시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이야기하듯 '빛과 어둠'의 상반적인 요소를 예로 든 것이 아니라 '조형예술'과 '비조형예술'로 나누어 한 쪽이 대낮처럼 환하게 드러나게 볼 수 있는 대상이라면, 다른 쪽은 비록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대상을 예로 제시하였다.
한편, 니체는 선과 악의 대립적인 구도를 타파하고 '강함과 약함'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웠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강한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폭력적이거나 약육강식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훗날 '위버맨시(초인)'라고 설명을 덧붙이며, 선하고 올바름을 바탕으로 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가 많아진 세상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울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아, 니체가 말한 '강자'는 결코 폭력을 일삼는 독재자가 절대로 아님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곧잘 '강자'가 되어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리는 삶을 꿈꾸곤 한다. 덩치도 크고 힘도 쎄며 머리도 똑똑할 뿐만 아니라 경제력까지 차고 넘쳐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절대강자'가 되고픈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렇지만 그런 '강자'는 아무도 존경하지도 않고, 오히려 배척의 대상이 될 뿐이다. 비록 강한 위세에 눌려 앞에서는 굽신거릴지라도 뒤돌아서면 언제든 '없애'버릴 궁리만 받게 될 존재가, 절대로 '강자'라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강자는 '도덕적인 우월함'과 '정의로움', 그리고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관대함'까지 갖춘 존재여야만 한다. 니체는 바로 이런 '선한 존재'를 강함의 진면목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니체가 말하는 '절대강자'를 힘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부류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니체는 술의 신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마저 알콜에 쩔어 헬렐레하며 '현실도피'나 하는 나약한 존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는 시, 음악, 춤과 같은 것에 흠뻑 도취하기도 했다. 실제로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을 최고라 칭하면서 진정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을 말할 수 있다고까지 하였다. 현대인들이 음악과 춤에 빠져들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것'을 즐기는 것을 보면, 니체의 해석이 맞아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니체의 철학은 온통 '긍정적'이고 밝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 '예술적인 소양'이 부족한 관계로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술'에 대해서 뭐라 썰을 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예술적 소양을 닦은 뒤에 다시 니체철학의 진면목을 이야기해보련다.
이런 니체의 철학이 '염세주의(비관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정도다. 물론 나중에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모든 것이 덧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뿐이라는 '니힐리즘'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좀더 '관련책'을 살펴보고, 연관지어 파악해보아야겠다.
아무튼, 니체의 철학은 '건강미'로 가득한 듯 싶어 매력적이었다. 특히, 강함을 추구하면서도 약자를 괴롭히고, 착취하는 것과는 멀리하겠다는 '의지'를 말할 때 멋져보였다. 그러면서 '권력을 쥐고 뒤흔드는 자'에 대해 비열하고 위선적인 자들이라고 날선 비난을 던질 때, 전세계 정치인과 종교인 들의 덜 떨어진 행위에 대해 '니체의 철학책'을 함께 직구로 날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가는 '니체의 책들'을 보면서 선한 강자를 떠올리며 함께 비판을 해주길 상상해보기도 했다. 진정한 강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제발 좀 '부끄러움'이 뭔지 깨닫길 바란다고 말이다.
박수 칠 때 떠나는 모습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성찰'하고 진정 '반성'하는 모습이 더욱더 아름다운 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실수는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법이다. 그렇지만 실수를 밥 먹듯이 하고서도 '반성'하지 않는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엄격함을 추구하는 '니체의 철학'이 절실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