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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ㅣ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평점 :
누구나 그렇겠지만 '장르'에 흠뻑 빠지면 너무 즐겁다. '시즌제 드라마'를 비롯해서 '수십 편에 달하는 소설'까지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시간이기에 절대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뭔소린고 의아한 분들이라면 '마블영화'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아이언맨>으로 시작해서 <어벤져스 : 엔드 게임>까지 무려 12년(2008년~2019년)의 세월이었지만, 마블팬들에겐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더구나 '엔드 게임' 이후에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캡틴 아메리카, 블랙팬서, 스파이더맨이 사라졌을 때 눈물을 펑펑 쏟은 팬도 있었고, 울적한 감정에 빠져 우울감을 호소한 팬도 많았다. 비록 현실의 인물이 아닌 상상속의 캐릭터였지만, 그 캐릭터를 더는 연기할 수 없다는 소식에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SF장르에 빠지리라는 걸 상상조차 못했다. SF보다 더 먼저 '판타지장르'에 빠졌었기 때문이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호빗>, J.K. 롤링의 <해리포터>,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그리고 이우혁의 <퇴마록>, <치우천왕기> 등을 비롯해서 웬만한 '판타지장르'는 거의 섭렵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판타지물'이 아니어도 '엘프'와 '드래곤', 그리고 '칼을 든 전사(<야만인 코난> 같은 '스워드 앤 소서러 장르')'만 나오면 환장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루카스의 <스타워즈>와 스필버그의 <백 투더 퓨처>의 추억을 떠올리며 F. 허버트의 <듄>, A.C.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I. 아시모프의 <로봇>, <파운데이션>, 그리고 P.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비롯한 숱한 SF 소설을 탐닉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SF소설에는 어떤 매력이 있었던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궁금해서 이 책 <SF, 시대정신이 되다>를 펼쳐들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길, 사실 '판타지'나 '공상과학' 장르의 소설들은 모두 '현실도피'를 위해서 고안된 장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장르소설이 유행을 할 시점은 실제 현실이 고달픈 시기라고 한다. 허나 딱히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신빙성'은 높겠지만, 내가 이런 장르를 좋아한 까닭은 딱히 '현실도피'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판타지'나 '공상과학'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것이지 팍팍한 현실이 괴로운 탓에 뭔가 새로운 활력소를 찾다가 매료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해리포터> 소설을 읽던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살인적인 스케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져들었다거나 <마블영화>를 즐겨보던 20, 30대 젊은이들이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현실도피한 것은 아닐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저 '재밌으니까' 본 것 뿐이다.
어쨌든, '냉전시대'를 맞으며 전세계적인 '공상과학(SF)' 장르가 대유행을 했더란다. 미소가 펼친 우주경쟁시대 속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거둬야만 했는데, 그 세금을 자발적(?)으로 내기 위해선 'SF' 장르에 대한 대유행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1969년 달착륙에 성공하면서 SF 장르는 한 풀 꺾이기 시작했다. 왜냐면 기대했던 막상 도착을 해보니 '외계생명체'가 살 수 없는 척박하고 황량한 모습에 관심이 급감했기 때문이란다. 그 전까지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우주전쟁>까지 벌이곤 했는데,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그런 상상력이 더는 통용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달 착륙 이후에도 화성과 금성 등 생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되었고, 더 먼 목성과 토성, 그리고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탐사위성을 쏘아올리며 SF 장르는 최대 흥행을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생명체의 흔적'은 찾지 못했고,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 재확인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칼 세이건을 비롯해서 '지적외계인'을 찾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점점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실망(?)한 대중들의 관심을 주목받게 된 것이 바로 '판타지 장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신비한 대상이 필요했는데, 시기적절하게 '판타지 장르'가 그 대상으로 발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2000년대 <해리포터> 등이 대유행을 했던 거란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SF장르는 또다시 흥행을 이끌게 되었단다. 바로 'SF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들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1900년대에 이미 출간된 소설들이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 나라에 상륙하게 되었고, 올드팬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던 소설들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된 셈이다. 그리고 더는 '우주'를 배경으로 '로켓(우주선)'을 쏘아대지 않는 SF장르가 쏟아지듯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작을 소개하라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같은 암울한 미래사회를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이렇게 SF 장르는 단순히 '상상력'만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혼란과 불안'까지 담아내며 '문제작'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는 실제로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데서 많은 '공감'을 얻게 된 점이 인기비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SF소설과 영화속에서나마 그런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 들었는지 분석하며 막연하게나마 현실의 사회문제를 간접적으로 접해보고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점이 '색다른 맛'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SF적인 상상력'이 왜 필요한지 제시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런 'SF적 상상력'이 필요를 넘어 절실한 시점에 SF 소설에 위기가 찾아왔더란다. '장르소설'은 전적으로 팬덤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왜냐면 대중에게 '팔려야' 소설가가 '더 쓸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더 많이 사주어야 할 대중들에게 '너튜브' 같은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장르소설'이 외면받게 되었단다. 실제로 '장르소설'의 판매량은 점점 줄어드는 형편이고, 대중들은 점점 더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숏폼'에 빠져드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단다. 이래선 결국 'SF 장르'는 다시 침체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울한 전망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SF 장르를 읽고 'SF적인 상상력'을 키워야 한단다. 왜냐면 '인공지능 로봇' 같은 것이 멀지 않은 미래에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공상'에 불과했던 일이 곧 '현실'이 되는 시점에서 무언가 '대책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시모프가 '로봇 3원칙'과 같은 것을 이미 마련해놓긴 했다. 1원칙,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 된다. 2원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원칙,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물론 '앞선 원칙'이 우선 되어야함은 당근이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로봇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한다.
어디 이뿐인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 '재정립'해야만 한다. 이젠 인간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삶의 터전을 넓히려다 동물의 터전을 보장하지 않으니 당장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대유행하고 말았다. 이젠 '조류독감(AI)'는 해마다 터지며,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다른 동물에 비해 건강하던 돼지마저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물론 '항생제'를 먹여 인간이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할 순 있겠지만 결국엔 '언 발에 오줌누기' 같은 처방일 뿐이다. 언젠간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항생제'가 더 많이 함유된 고기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 동물뿐이랴. 식물까지 확장해서 생각을 한다면 인간이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인류세'를 넘지 못하고 절멸을 맞이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들 지경이다.
우리는 이런 '지구적인 문제점'을 더 깊은 생각을 해보기 위해서라도 'SF적인 상상력'이 담뿍 들어 있는 소설을 더 많이 접해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젠 SF 장르는 '취향'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의무'로 접해야만 할 것이다. 특히 '과학'적인 공상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과학으로 연구되어야만 할 것이다. 정리하면, SF 소설이라고해서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모험만을 떠올리지 말라는 얘기다. 물론, 그런 장르의 소설임에 틀림없지만, 이제는 우주가 아닌 '지구'에서도 얼마든지 '공상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골소재였던 '시간여행(타임루프)'뿐만 아니라 '남녀의 구분'이 없는 세상, '동식물'이 일체인 세상,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더는 지구가 아닌 지구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모든 것이 SF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들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를 '사변'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굳이 (외국에서 들여온) 새로운 용어를 써가며 생각하지 않아도, 우린 그냥 '생각'하면 될 뿐이다.
끝으로 SF장르는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듦과 동시에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새로운 장르가 모두 그렇다. 새로 보여주기 때문에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세계에 빠져들면 결국 '낯설었던 것들'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아직 현실에는 '없는' 그런 것들에 익숙한 자신을 '낯설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경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런 경지에 다다른 이들이 맞이할 미래는 결코 '낯선 것'에 당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슬기롭게 대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SF 장르'에 흠뻑 빠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셈이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