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1 최후의 오디세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4
아서 C. 클라크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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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자면, <3001 최후의 오디세이>는 전작들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매 시리즈를 더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충격'을 선보였던 것에 비해 '최후의 오디세이'는 비교적 잔잔한 마무리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 클라크가 언급한 것처럼 '2001', '2010', '2061', 그리고 '3001'에서 이어지는 줄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인류보다 앞선 문명의 산물이었던 'TMA-1(일명 '티코석판')이 지구에서 초기 인류에게 '발견'된 이후 인류가 달에 발을 딛는 순간 '새로운 티코석판'을 발견했고, 인류가 태양계로 확장시켜 눈을 돌리는 순간 '또 새롭고 거대한 티코석판(일명 '큰형')이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에서 발견하는 '순서'로 점차점차 독자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켜나가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이 그린 '미래'는 오류투성이였다. 작가가 살던 시기는 7080 '냉전시대'였지만, 작가가 그린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1세기였기 때문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그 시기에서 보았을 때에는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화합을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최후의 오디세이'를 집필하던 90년대에는 느닷없이 독일이 통일하고 구소련이 붕괴를 하는 등 작가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뻥뻥 터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최후의 오디세이'는 어떤 면에선 '방향전환'이 필요했었을 거라 짐작이 된다. 더구나 세 번의 밀레니엄을 거쳐 네 번째 밀레니엄 시대를 맞은 '3001년의 지구'는...아니 '우주'는 온인류가 '지구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나의 체제 아래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구인들이 이렇게 똘똘(?) 뭉칠 수밖에 없게 된 까닭은 지구인들이 더는 지구에서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속에서도 지구인은 '지표면'에서 살지 않았다. 바로 '인공위성이 돌던 궤도'상에 인공건축물을 만들고, 그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0년 대에 수없이 많이 일어났을 것이 분명한 '기술적 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보다 손쉽게 우주로 나아갈 수 있고, 우주 어디서든 머물 수 있게 되었을 것이 틀림없을 거라 작가는 상상했던 것이다. 이른바 '테라포밍(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지구환경과 비슷하게 조성하는 일련의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테라포밍'은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고 현재의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기도 한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46억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듯이 가장 가까운 달을 비롯해서 화성과 수성, 그리고 거대한 기체행성들의 위성들을 '테라포밍'해서 지구인들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만들기까지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수억 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긴 시간들조차 137억 년전에 만들어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그런데도 작가 클라크는 비교적 짧은 '1000년'이라는 시간안에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걸 가능케 한 '작가적 상상력'에 뜨거운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가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목성'이 '또 하나의 태양(루시퍼)'으로 빛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티코석판'이라는 외계 문명의 결정체가 지구인과, 그리고 '인공지능'과도 결합(?)하여 최고의 지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의 '지적설계론'이 한몫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작가 클라크는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두고 상상력을 펼칠 것은 아닐 것이다. 티코석판이 '어떤 존재'인지 밝히지 않았기에 독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배경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작가도 '새로운 생명체'가 지구인과 조우하기 위해선 '운명적인 만남'을 주선할 '무엇'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설계)이 필요했을 뿐일 것이다. 또한 이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특정' 종교가 이야기하는 '종말론'이 전혀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 클라크의 소설에서는 '지구의 종말'이나 '외계의 침공', 그로 인해 지구에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허황된 짓을 전혀 하지 않아 고마울 따름이다. 뭐, 소행성 충돌 따위의 위험인자까지 싹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시나리오는 우주적 관점에서 평범한 일상이고, 이미 지구가 경험한 '사실(팩트)'이니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의 줄거리를 짤막하게나마 소개를 해야 겠다. <3001 최후의 오디세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놀랍게도 1편에서 등장했다가 우주선(디스커버리 호) 밖으로 튕겨나간 프랭크 폴이다. 미친 인공지능 HAL과의 싸움에서 어이없게 소외(?)되었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니 얼떨떨한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렇게 차가운 우주속에서 그야말로 '얼어붙었다가' 거의 1000년 만에 다시 깨어나게 된 것이다. 아무리 태양계 안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광활하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그 넓고 텅빈 공간을 떠돌다가 기적과 같이 지구로 생환하게 된 셈이다. 신호가 끊긴 인공위성도 찾지 못하는 21세기 과학수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31세기에는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더 기적같은 일은 1000년 가까이 꽁꽁 얼었던 사람에게 '생명의 숨결'을 다시 불어넣는 '의료기술'일 것이다. 마치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 있던 미라를 다시 되살리는 것과 같은 기적이 미라클처럼 펼쳐진 것이다. 물론 '미라'와 '동면기술'은 엄연히 다른 방식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폴의 기적같은 생환이 벌어진 이후의 묘사들은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마치 '고대 중세사람'이 오랜 잠을 자다 '현대'에 깨어나서 벌이는 에피소드처럼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이 책이 쓰여진 1996년 당시의 상상력이 그려낸 먼 미래와 현재 2024년에 펼쳐진 현실과 상상하는 미래 '사이'의 묘한 이질감이 집중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30년 전의 독자들은 이 책에 묘사된 이야기에 열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전편에서 다루었던 '지적외계인의 존재', '목성의 대폭발', '에우로파(유로파)의 생명체' 등의 '충격'에 비하면 너무나도 밋밋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31세기 사람들은 모두 '대머리'...아니아니 스포일러가 될 수는 없기에 이쯤 하겠다.

 

  그럼에도 대작의 결말은 긴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인류는 오랜 꿈인 우주로 나아가기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우주정복'과 같은 심술궂은 야망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났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의 불빛이 사라진 깜깜한 어둠속에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면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이다. 그 까닭은 세이건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런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까닭은 우리가 '거기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다시 우주로 돌아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작가 클라크는 우리의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담은 것일테다. 그리스의 지략가 오디세이가 온갖 험난한 모험을 겪으며 기나긴 항해 끝에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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