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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3 : 오만과 편견 ㅣ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3
윤주연 글, 최익규 그림, 손영운 기획, 제인 오스틴 원작 / 채우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로맨스 소설'로만 보게 되면, 자존심 강한 엘리자베스와 무뚝뚝한 다아시가 만나서 서로를 오해하고 불만을 쌓다가 끝내는 사랑의 결실인 결혼에 골인한다는 이야기로 끝맺게 된다. '해피 엔딩'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에 이 소설은 그렇게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오만과 편견>이 그 정도의 소설이라면 이처럼 오래도록 사랑받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결혼을 꿈꾸는 여성'이 통속적 사회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과 마찬가지로 '여성해방'을 담고 있는 소설이기에 더욱 사랑받았던 것이다.
19세기 영국여성들이 왜 결혼에 목을 매달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경제적 독립'을 하기 위해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상속'은 오직 장남에게만 주어진 권리였다. 남자조차 차남과 삼남은 상속의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물려받을 재산은 거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군인'이나 '성직자'가 되어 사회고위직과 명예를 얻어 부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여자는 아예 상속의 대상에서 제외 되었고, 만약 물려받을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가까운 남자친척'이 대신 물려받는 '한정상속제'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속제도에서 멀리 떨어진 여성은 철저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돈 많은 남자'를 잡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못되는 낮은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무도회 순례'를 나서는 까닭은 한창 예쁠 때 '돈 많은 남자'를 꾀어내 안락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녀는 좀 남달랐다. 결혼의 조건이 '진실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남자가 아니라면 청혼에 승낙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그런 '완벽한(?) 남자'에게 걸맞는 숙녀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 덕분에 수많은 남정네들이 '그녀'를 탐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눈높이에 딱 맞는 남자가 아닌 까닭에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노력'만으로 성사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오만불손해도 첫눈에 꽂히는 '무엇'이 있어야 불꽃이 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그런 경우였다. 둘은 첫만남부터 사랑의 불꽃이 튀어 올랐으나 서로가 갖고 있던 '고집스런 조건'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받은 첫인상 때문에 줄곧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장점'이 아닌 '단점'만 확인하며 급기야 서로를 오해하게 된다. 서로의 단점이란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이었다. 사실 둘은 모두 '합리적인 성격'으로 모든 상황을 꼼꼼하게 따지는 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랑의 감정이 불타올랐음에도 사랑에 휩쓸리지 않고 서로를 관찰하는 용의주도(?)함마저 닮았다.
그런데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매력을 느꼈음에도 그녀의 집안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낮은 지위(젠트리: 하급귀족)'이고 가난하며 돈 많은 남자만 밝히는 천박한 언행을 일삼는 가족들의 대화를 듣고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부류라고 섣불리 판단을 내려 버린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걸맞게 '오만한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사게 된다. 한편, 엘리자베스도 첫만남에서 다아시에게 묘한 호감을 느꼈으나 그가 내뱉는 말과 행동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냉혈한일 것이라는 섣부른 '편견'에 빠지고 만다. 둘은 이렇게 서로의 단점만 확인하고서 자신의 가슴속에서 싹튼 사랑의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만다.
이런 둘의 '오만과 편견'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며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내놓게 된다. 특히, 엘리자베스를 비롯해서 다섯 딸들을 시집 보내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인 베넷 부인을 통해서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을을 찾은 '명문가 청년들'을 상대로 자신의 딸들이 신부로 선택된다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을 여성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자에게 '결혼' 이외의 경제적 독립 방법이 없고, 노처녀로 늙어서 '경제적 부담'이 된다면 평생을 천덕꾸러기로 살아야 한다고..심지어는 여기저기 구걸이나 하는 거렁뱅이 취급을 받게 된다며 '결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둘째딸인 엘리자베스다. 설령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원치 않는 결혼'이나 '사랑 없는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마을을 찾은 사람은 콜린스라는 베넷가의 친척이다. 그는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죽음과 동시에 그의 재산을 모조리 상속받을 유일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돈 많음'을 앞세워 다섯딸 가운데 한 명과 결혼을 목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당시 영국사회는 사촌간의 결혼도 허용하였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으며, 아버지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와의 결혼을 놓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첫째딸 제인은 '명문가 자제'인 빙리와 이미 사랑에 빠졌고 혼담이 오고 갈 상황이었기에 콜린스는 둘째딸인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한다. 당연히 엘리자베스는 사랑없는 결혼에 승낙할 리가 없다. 그러자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의 이웃이자 친구인 샬롯에게 청혼을 하고, 샬롯은 '풍족한 미래'가 보장된 그와의 결혼을 망설이지 않고 승낙해버린다. 물론 사랑도 없고, 무조건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 역할이라는 부당한 요구를 할게 뻔하지만 샬롯은 결혼한다. 그게 그 당시 여성이 처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기꾼에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위컴과 엘리자베스의 동생인 리디아가 '야밤도주'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당시의 여성은 교육을 통해 지식을 쌓는 일이 허락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생각'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인식되던 시절이라, 이런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하더라도 여성 스스로 이혼을 요구하거나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잘못된 결혼을 했더라도 남자쪽에서 내치지 않는 이상 그냥 참고 살아야만 했다.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남자들은 돈 좀 있는 여성을 어떻게 해서라도 꾀어낸 뒤에 그 집안의 남자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뻔뻔한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곤 했다. 위컴도 바로 그런 부류였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렇게 '열악한 처지'에 놓인 여성들을 해방시키고자 고집 쎈 엘리자베스를 주인공으로 발탁했고, 그런 그녀에게 딱 어울릴 만한 멋진 남성인 다아시를 등장시켰을 것이다. 여성은 사랑받아 마땅하고 남성은 그런 여성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완전한 사랑과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제인 오스틴이 스무 살에 이 책을 썼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녀도 부유한 청년들에게 청혼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작가 생활에 만족했다고도 전한다. 그녀는 애정없는 결혼은 '무덤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긴 듯 싶다.
결혼의 조건은 무엇일까? 평생을 써도 줄지 않는 경제력,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걸어도 꿀리지 않는 외모,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지 않을 나이차이, 남부럽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는 명성, 그리고 하고 싶은대로 해도 걸리적거리지 않는 성격 등등 결혼상대로 부족할 것이 없는 조건만 충족이 되면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아무런 조건도 없이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결혼을 선택하면 행복이 아니라 '도박'일 것이다. 분명 따질 건 따져보아야 한다. 허나 하나하나 따지기만 하면 평생 '홀로 살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사랑과 결혼은 '완벽히 마련한 결과'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맞춰 나아가는 과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변변한 사랑도 못해보고 결혼도 못한 총각이 내린 서툰 결론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