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세계사 8 - 제국주의와 제1차 세계 대전 처음 세계사 시리즈 8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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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는 군사력을 앞세워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영토를 확장시키려는 팽창정책을 말한다. 고대 로마제국이나 중세 몽골제국도 이에 해당하나, 19세기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자본주의 열강'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침탈하는 과정을 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널리 퍼뜨려 미개한 민족과 저개발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폭력을 자행했는데,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사죄나 반성 따위를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직 국제관계는 '힘의 논리'로만 규정될 뿐이라는 사회진화론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모럴 해저드(도덕불감증)'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인류의 평화는 결코 이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서양은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렇게 쌓아올린 부를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한 서구열강은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는데, 그 시작은 영국과 프랑스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나라가 선점한 식민지로 후발주자였던 독일과 러시아는 깃발을 꽂을 땅이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러시아는 '부동항'을 찾아 흑해연안과 발트해, 그리고 연해주를 넘어 태평양까지 세력을 뻗어나갔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한편, 독일은 선발주자였던 영국과 프랑스가 미치지 못한 식민지를 찾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자 '같은 제국주의 국가'인 프랑스를 찝쩍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게 된 셈이다. 하지만 당사국인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만으로 전쟁이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범게르만족 vs 범슬라브족'의 대결양상으로 확대가 되더니 급기야 '영프러 연합국 vs 독오 동맹국'의 전쟁 양상으로 굳어지다가 1917년 미국의 참전으로 이듬해 독일의 항복을 하면서 일단락이 되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은 무기의 기술발달과 함께 수백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대량학살이 자행되었으며 지옥과도 같은 '참호전'이 펼쳐지면서 과거의 전쟁양상과는 완전 다른 전쟁이 펼쳐지며 참전했던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도 희생을 당하는 '대학살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등장해서 억울한 희생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열강들의 탐욕스런 욕망'이 저지른 만행인 탓에 딱히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지 못한 전쟁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1차 세계대전 덕분에 영국과 프랑스의 위상은 대폭 꺾이게 되었고, 새롭게 미국이 제국주의국가의 선두에 서서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편,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전제군주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하면서 레닌이 '소비에트 연방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다. 이로써 노동자와 농민이 주축이 되어 '모두가 공평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마르크스 사상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는 피튀기는 대결양상을 벌이며 전세계를 '실험의 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는 다음 책에서 더 자세히 전개될 것이다.

 

  한편, 청나라는 발빠르게 근대화를 진행하는 모습을 비춘다. 하지만 일본과는 달리 '완전개조'를 하는 방식이 아닌 전근대적인 왕조의 테두리 안에서만 벌이는 개혁이다보니 '근대화'라는 모양새만 갖췄을 뿐, 그 속내는 뿌리부터 썩어들어간 고목나무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 결과, 의화단 사건으로 내비친 청왕조의 어설픈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청일전쟁에서 일본제국주의에 처절히 발리고, 러일전쟁의 전쟁터를 제공하고도 그 피해보상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무능한 왕실의 모습에 실망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화국 건설을 꿈꾸게 된다. 이른바 '공화춘(공화국의 봄)'이란 이름으로 환영해 마지 않은 '신해혁명'이다. 그 주역은 단연 '손문(쑨원)'이다. 그는 중화민국의 임시총통으로 '삼민주의(민족, 민권, 민생)'를 내세우며 청왕조의 종말을 고한다. 허나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이 패착이 되고 말았다. 원세개는 청왕조를 협박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가게 하더니 손문의 동의를 얻어 '중화민국'의 대총통자리에 오르자마자 황제로 등극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러버린다.

 

  조선에서는 고종이 근대화를 이끌고 있었지만, 백성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헛발질만 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농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다. 부랴부랴 탐관오리 조병갑을 경질하는 쇼를 하며 성난 농민들을 달랬지만, 끝내 반성을 하지 못한 조선왕실은 도리어 '동학교도'들만 잡아들이는 못난 짓을 하고 만다. 이에 동학접주들이 들고 일어서니 '전주성'을 점령하고 도성인 한양으로 물밀듯이 올라갈 듯한 양상이 되자, 조선왕실은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게 된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니, 천진조약(텐진조약)을 빌미 삼아 일본군이 먼저 조선에 출병하게 되고, 동학군보다 더 먼저 '경복궁 점령'을 하더니 고종을 협박해 '청의 종주권'을 부정하라는 강제조약을 체결하고 한다. 그리고 일본군은 이를 빌미로 아산만에 주둔중이던 청군을 공격하니, 바로 '청일전쟁'이다. 청과 일본은 연이어 세 차례나 전쟁을 벌였는데, 어이없게도 청이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앞서 말했듯이 청의 근대화(양무운동)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조선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찜콩하고 만주로 뻗어나가려 한다. 여기에 제동을 건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는 앞서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제국이 얻은 '요동반도'를 독일과 프랑스까지 끌어들여서 도로 뱉어내게 했는데(삼국간섭), 러시아는 꿈에도 그리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만주와 한반도까지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마침맞게 고종과 민비(훗날 명성황후)는 일본제국을 견제하기에 '러시아'가 딱이라는 결심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러시아세력을 끌여당겼는데, 이를 간파한 일본제국이 조선의 궁궐안까지 일본낭인(자객)를 들여보내 민비를 욕보이고 난도질해서 죽여버리고 만다(을미사변). 자신의 안방에서 아내가 죽는 참변을 당하자 고종은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공사관'으로 도망을 가니(아관파천), 나라꼴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과 만주를 발판삼아 대륙전체를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대동아공영권'이란 허울 좋은 핑계를 대면서 침략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 제동을 건 사람이 바로 '도마 안중근'이다. 그는 '동양평화'를 위해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당시 러시아 관할지역이던 중국 동북지역 '합이빈(하얼빈)'에서 저격하는데 성공한다. 이등박문을 죽인 직후에 당당히 체포된 안중근은 한중일 삼국을 비롯한 동양의 평화를 구상한 '동양평화론'을 주장했지만, 일본제국의 재판부는 안중근을 하루빨리 사형시켜버리고 만다. 안중근은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여순(뤼순)에 뼈를 모았다가 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에 묻히고 싶다고 남겼지만, 일본 간수가 비밀리에 암매장을 하는 바람에 안중근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돌아오지도 못하고 말았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모두 성공한 서양열강국가들은 자신들의 잘남에 도취되어 전세계를 자신들의 깃발로 도배하다시피 했고, 그 잘난 깃발 아래에서 수많은 식민지인들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며 신음을 해야만 했다. 단지 '힘이 쎄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인간을 향해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엉뚱하게 이용당하게 된다. 생물종이 진화하는 것처럼 인간사회도 미개에서 문명으로 진화를 거칠 것이니 앞선 문명을 가진 나라가 미개한 나라에 문명을 전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흑인들과 같은 '유색인종'은 백인과 달리 천벌의 받아 낙인이 찍힌 것이 틀림없으니 우월한 백인이 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신 앞에서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성경' 어느 구절에서도 노예를 부리지 말라는 문구가 없으니, 그들을 노예로 학대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요상한 논리를 핑계삼고 있을 지경이었다.

 

  세상 천지에 죽어 마땅한 이는 없다. 동학에서는 '하늘이 곧 사람(인내천)'이라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말했다. 만민이 평등하니 모두가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라는 '좋은 말씀'만 담겨 있지, 그 어디에 사람을 함부로 '색깔'로 구분하고 '문명' 운운하면서 야만스럽게 굴라고 했느냔 말이다. 인류는 끔찍한 전쟁을 치룬지 불과 1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삼고 있다. 과연 제1차 세계대전을 치루난 뒤에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독재자가 등장한 것과 같은 전철을 또다시 반복하려는가.

 

  제국주의는 배부른 자들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전해준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그렇게 굴복시킨 상대의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빼앗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는 정복할 땅이 부족해지자 '제국주의자들끼리 전쟁'을 일삼고 말았다. 그 결과, 수많은 젊은이들이 더러운 참호에서 개죽음을 당했다. 고작 한뼘의 땅을 얻고자 수백명의 젊은이들에게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돌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그렇게 죽음의 난장을 벌였다. 1917년 미군의 참전으로 '스페인 독감'이 전세계에 유행하며 5000만 명이 감염되어 죽었다고도 한다. 사상 유래가 없는 참혹함이었다. 그런데도 조국을 사랑하면 기꺼이 죽으라고 전장터로 젊은이들을 열심히 실어날랐다. 그런 희생을 치루고서 얻은 승리는 도대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냔 말이다. 또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바보가 틀림없다. 우리는 그 바보가 얼마나 미치광이였는지 '또 다른 전쟁'을 하고서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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