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허승진 옮김 / 더클래식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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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읽기의 참맛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 다채로운 영감이 떠오른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고전을 처음 접할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맛이지만, 누구라도 '읽고 해석하고 또 읽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반짝 인기몰이를 한 뒤에 철저히 잊혀지고마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오래도록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더 끌린다. 그 가운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비교적 짧은 이야기라 읽기에도 편하고, 사랑이야기라서 감상도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아하는 고전문학이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을 두고서는 수많은 논란을 거듭해야 하므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문제작'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베르테르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로테를 보았다면 그녀보다 사랑스런 여자를 발견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허나 로테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사랑스럽긴 하지만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는 여자였다. 그녀에겐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행운아는 알베르토라는 성실한 남자였다. 그녀에게 더할나위 없이 딱 맞는 젊은 신사였던 것이다. 베르테르는 그런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그녀를 향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었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로테는 베르테르도 좋아했지만, 자신의 짝으로 알베르토를 이미 선택했고, 그 선택은 변함이 있을 수 없었다. 로테의 사랑은 알베르토였고, 알베르토 역시 로테를 사랑하는 이미 완벽한 짝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그런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고서도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이렇게 사랑의 열병에 빠진 딱한 청년은 그녀를 잊기 위해 몸부림도 쳐보지만 베르테르의 사랑, 역시 진실된 것이었기에 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면 '죽음'으로 멈추게 하리라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소설이 '문제작'일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랑에 빠져본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 따른다하더라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이다. 그토록 아픈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분명 어리석은 짓이긴 하지만 십분 공감하고도 남으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선택한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당시만해도 종교상의 이유로 '자살'은 금기시 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자살'하려는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자살방조죄'가 성립해 법적인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니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살한다는 것은 쉬이 '공감'하기 힘든 대목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베르테르의 죽음을 두고 많은 이들은 낭만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죽음으로 베르테르의 사랑은 고결하고 완벽함을 증명한다면서 '사랑한다면 베르테르처럼'이라는 수식어를 남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모방해 짧디 짧게 생을 마감하는 현상이 붐처럼 일어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동반자살에 이르는 젊은 남녀를 두고 '베르테르 효과'라고 지칭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허나 죽음은 절대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 해서는 안 될 사랑이 곧 '숭고한 사랑'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아름다운 사랑은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게 지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절망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자살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되면 남겨진 사람들, 특히, 로테의 마음이 결코 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또 다른 이름의 '상처'를 남긴 꼴이 되고, 그 상처 때문에 베르테르의 사랑은 완벽할 수도, 고결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베르테르는 자신만의 욕심으로 남을 배려하지 못한 '잘못된 선택'을 하고만 셈이다.

 

  그럼에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고전명작에 반열에 오른 까닭은 당시의 널리 퍼졌던 이성적인 '계몽주의'에 반기를 드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성세대들이 철옹성처럼 구축한 '합리주의'에 반하여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진솔한 것이라며 당시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이성'을 따르는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기성세대들의 갑갑한 사회적 풍습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독일사회에 열풍처럼 번졌던 '질풍노도'였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드러내는 베르테르'에게 열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잣대가 반드시 옳은 것만은 결코 아니라는 퍼포먼스를 베르테르가 '자살'을 함으로써 확인시켜준 셈이다.

 

  이런 젊은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기성세대의 성공담이 젊은이들에게도 '성공의 지름길'을 보장해주면 좋겠지만, 세대가 바뀌면 '성공의 기준'도 함께 변하게 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젊은세대들 앞에 놓인 여러 문제들도 시대가 변천하는 것만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기에 그에 맞는 해법을 쉬이 찾기 어렵다. 기성세대들도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들도 젊은 시절에 '맨땅에 헤딩'을 하며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저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산적한 문제들에 당당히 맞섰을 것이다. 그 가운데 몇몇 사례가 성공을 이루었고 숱한 실패와 좌절을 맞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의 성공담이 언제나 '만능열쇠'가 되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니 현명한 기성세대들이라면 우리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충을 이해하고 열띤 응원을 해주어야지 '어줍잖은 저들의 성공담'을 들먹이며 젊은이들을 조롱거리로 삼거나 나약하다며 우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 '자살'은 권장사항이 될 수 없다. 또한 절대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고결하고 순수함과도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기성세대의 견고한 고지식함에 반기를 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식으로 젊은 세대의 고충을 털어놓는다고 기성세대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의 '불굴의 의지'만이 어리석은 기성세대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을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21세기 '베르테르 현상'은 나약한 젊음이 아닌 강인한 젊음을 통해서 사회변화를 유도하는 진정한 횃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21세기 베르테르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희생할 것이 아니라 '하나뿐인 인생'을 바람직하고 후회없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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