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8 : 양철북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8
곽은우 글, 팽현준 그림, 손영운 기획, 귄터 그라스 원작 / 채우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던 시절에 '나치'에 협력한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탔다면 말이 된다고 보는가? 사실 독일인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무엇'이 옳은 일인지 판단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 조국을 배신하고 국가권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역할'이 자랑스럽지 못했고, 옳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일을 더욱 힘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양철북>은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인들의 뒤늦은 뉘우침과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반성이 담긴 역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심지어 '나치'에 협력했었기에 더욱 생생한 증언과 잘못으로 얼룩진 과거를 정확하게 회고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임에 틀림없지만, 2차 세계대전 뒤에 '이념의 대결'이라는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마샬플랜)으로 인해 빠르게 회복한 뒤 거침없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나라다. 그럼에도 '유대인 학살'과 같은 과거의 짐이 발목을 잡히 않도록 확실한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서 '유럽공동체'의 리더를 맡을 정도로 신뢰를 얻는 나라로 거듭났다. 이는 '또 다른 전범국가'인 일본의 행보와 사뭇 다른 모습이라 일제의 피해당사국인 우리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암튼, 그런 독일의 '과거사죄와 반성'의 일환을 배경으로 과거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인의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쓰인 '전후문학' 가운데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사회고발'이라는 의도와는 다르게 야한 소설, 혹은 불륜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도 하다. 이는 영화 <양철북>의 상영이후 '그런 부분'만을 부각시켜 영상화한 탓도 있지만, 소설속에서도 다분히 그런 내용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난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소설속에 담겨진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큰데, 독일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은 폴란드의 비극,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유대인과 유대계 유럽인들, 그리고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폭력인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나치협력자들과 무도한 권력이 저지르는 폭력이 두려워 알고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나치부역자들, 그리고 그러한 나치에 끝까지 저항하던 이들과 그들을 응원하지만 끝내 '표면화'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벅차서 우물쭈물하던 평범한 독일인들까지 모두 그 '상징성'에 담겨 서술되고 있기에 난해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징성을 '모범답안'처럼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만이 가장 바람직한 독서법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오직 '하나의 정답'만을 이해하기 위해서 강조하는 독서법이 학창시절에는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당위성을 갖출 수 있을지언정, 정답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문학을 오랫동안 널리 읽고 읽히는 까닭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고 '새로운 감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면 <양철북> 또한, 그렇게 읽혀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도 '자유'롭게 읽어야 할 것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난쟁이를 '보는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색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스카'는 스스로 성장하길 거부했다.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기도 싫었는데, 딱 하나 '양철북'을 선물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탄생을 '선택'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상징성이 가득한 이 소설의 관점에서 풀이하자면, 오스카는 '독일, 그 자체'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광기로 가득한 독재자가 다스리는 혼돈스러운 시대는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야만의 시절'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몰염치와 이기적인 모습을 그대로 대칭시켰던 것일테다. 다시 말해,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독재자의 광기를 아직 미성숙한 오스카의 겉모습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테다. 허나 오스카에겐 '양철북'이 있다. 당시 성숙한 독일 어른들이 일삼던 행위들도 얼마간 '정상적'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미쳐돌아가는 세상속에서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따르던 이들도 바로 독일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오스카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양철북을 두드려 정화하려 들었다. 이를 테면, '사회고발'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던 오스카의 '양철북'만으론 나치라 불리던 폭주기관차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런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수많은 독일인들은 타고 있자니 불안했고, 내리자니 그 또한 목숨을 걸어야할 판이었다. 어찌해야 좋을까? 오스카는 수차례 '찣어지고 망가진 양철북'을 대신할 '새 양철북'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회고발의 명맥'을 유지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만 펼쳐졌을 뿐이다. 한편, 독일이 전쟁을 한창 진행하던 중에 오스카는 첫사랑을 만난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오스카가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는 없었다. 사랑이란 '정신적 성숙'뿐만 아니라 '육체적 성숙'도 함께여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카에게 '육체적 성숙'은 아직 일렀다. 오스카의 성장은 '독일의 성숙'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독일은 미쳐돌아가고 있었고,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스카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자신의 첫사랑을 아버지 마체라트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독일의 패망 직전 소련군의 침공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아버지를 '나치'라고 고발하며 소련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만들고, 그의 무덤에 '양철북'도 함께 묻으며 '성장'을 결심한다. '사회고발'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무뎌지고 만 것일까?

 

  전쟁이 끝나고 오스카도 '성장'을 한 뒤라 '한 사람의 몫'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특히, 사랑하는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모습에서 안타까움마저 느낄 정도다. 그러다 미술대학 교수의 의례로 '누드모델'을 하면서 엄연한 가장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발가벗겨진 몸도 '독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뒤늦은 성장으로 '꼽추'가 되어 버렸지만, 전쟁의 상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독일의 기형적인 성장'을 한 몸에 보여준다는 일념에 돈벌이는 쏠쏠해진다. 그러나 끝내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만다. 마리아에게 청혼을 하지만 마리아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리아와 헤어진 뒤, 오스카는 음악적 성공으로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다. '양파주점'에서 '북 연주가'로 데뷔해 독일인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허나 간호사 도로테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오스카에겐 '새로운 삶'을 살아갈 계기가 된다. 과연 그 삶은 어떤 모습일까? 깨끗한 반성과 뉘우침으로 '성장을 부정했던 잘못'을 씻고 아름답고 찬란한 행복을 꾸리며 살아가게 될까? 아니면 성장하려 노력했으나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좌절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광기'가 탄생해버리게 될까?

 

  어쩌면 <양철북>은 미성숙한 사람들이 벌인 끔찍한 일들을 나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양태의 '미성숙함'을 보며 자신에게 딱 맞는 '미성숙'을 발견하고 관찰하며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말이다. 궁극적으로 '나치의 만행'에 대한 고발을 하면서, 그런 부정함과 부도덕함에 알게 모르게 동참했던 사람들을 비판하는 소설이지만, 그러한 '독일'과 아무런 연관도 없고, 배경지식도 없는 독자들마저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미성숙'이란 말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성장'이 얼마나 힘들며,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개개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어야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걸작이라는 말도 된다. 과연 우리사회는 개개인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개인 스스로도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 갖춰야 할 조건들을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른다. 중요한 것은 반성과 성찰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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