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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원작 소설, 공식 출판작,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추리소설의 맛은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기에 앞서 미리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러 추리소설을 섭렵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단서에서 사건을 유추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렇게 유추를 한 것을 '소설 속 탐정의 추리'와 비교하면서 사건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는 '나도 명탐정'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짜릿함을 만끽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소설속에서 던져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찾아낼 수 있도록 추리 프레임을을 아주 잘 짜아놓은 추리소설이어야만 한다. 그런 관점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꽤나 훌륭하다.
흔히 '살인사건'의 범인은 '한 명'일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추리소설 마니아들도 등장인물이 내놓은 정황과 알리바이가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으레 범인에서 제외를 하고서는 엉뚱한 인물을 범죄자로 몰기 일쑤다. 하지만 어디에도 '범인은 오직 한 명'이라는 근거는 없다. 그래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의 범죄자를 찾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더구나 범인으로 확신할 수밖에 없는 인물의 특징이 '주홍색 잠옷 차림의 키가 작은 남자의 뒷모습에 여자처럼 가냘픈 목소리'의 소유자를 봤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으며, 심지어 탐정인 푸아로마저 그 인물을 직접 목격했기에 수사선에 살인용의자는 '남자'인 동시에 '여자'인 사람을 찾도록 수사의 혼선을 빚게 만들었다. 더구나 범행도구는 '칼'이었으며 피해자의 몸에는 이곳저곳에 칼에 찔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칼에 찔린 정도로 봤을 때, 힘쎈 남자가 찌른 듯 깊숙이 찔린 자국도 있었지만, 여자가 힘없이 찌른 것처럼 아주 얕게 찔린 흔적도 여럿 보였다. 여기서도 범인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고 단서를 던져주었다.
더구나 범죄현장은 달리는 기차 안의 객실에서 벌어졌다. 때마침 눈보라가 치는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달리는 기차에서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끝내 눈보라로 인해 기차는 역과 역사이의 중간에서 멈춰서게 되었고, 살인범은 멈춘 기차에서 내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너무나도 추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인자가 범죄현장을 떠났다면 기차 주변에 도망친 흔적이라도 발견이 되었을텐데, 그런 흔적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기차에 탑승한 인원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정리하면, 기차에 탑승한 인원이 달라진 것도 없었고, 멈춰진 기차에서 내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아직 '오리엔트 특급' 편 기차 안에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한밤중에 벌어진 사건이라 '객실칸-식당칸' 딱 두 개의 차량만 통행할 수 있었고, 모두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 '식당칸'으로 통하는 통로도 닫혀버렸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범행현장은 '객실칸'이 유일한 셈이다. 이른바 '밀실 살인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객실칸에 탑승한 승객은 모두 열두 명이다. 탐정 푸아로도 '같은 칸'에 머물고 있었고, 살해된 피해자도 주검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승객 열두 명 가운데 범인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열두 명의 승객은 살인현장에 가본 적도 없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이를 증명할 근거로는 서로가 서로를 범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더구나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준 열두 명의 승객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범죄현장에는 '뚜렷한 단서'가 두 개 있었다. 알파벳 H가 수놓인 최고급 여성용 손수건과 고급 담배파이프 소제기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살인을 저지른 어둠속에서 범죄자가 떨어뜨리고 간 듯 했다. 그렇다면 범죄자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아님, 범죄자는 두 명인걸까? 그도 아니면 그 이상인걸까?
사실, 사건이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논리적 오류'로 인해 범인색출에 난항을 겪게 되면 답은 뻔해진다. 그 뻔한 답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매력인 관계로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이미 100여 년전의 작품이라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분들이 많겠지만, 아직 책을 읽지도 않고 영화도 관람하지 않은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 지금까지의 단서만으로도 대충 범인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한편,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는 살인자보다 피해자가 더 나쁜놈이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기차 안에서 칼로 난도질을 당해 죽은 피해자가 다름아니라 '어린이유괴 연쇄살인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풀려나서 사업가로 성공해 부족할 것이 없는 넉넉한 삶을 살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호사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나쁜놈을 찾아 칼빵을 놓고 단숨에 죽여버린 살인자는 다름아니라 이 나쁜놈에게 희생을 당한 가족에게 크나큰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린 자식이 비명횡사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온가족이 불행하게도 슬픔속에서 하나둘 죽고 말았고, 애꿎은 사람이 범인으로 대신 지목되어 살인자로 낙인이 찍히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등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살인사건은 '연쇄살인범'인데도 사법적 정의가 구현되지 못하고 범죄자를 '증거불충분'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게 하고, 엉뚱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더 큰 비극의 정점을 찍게 만든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써내려간 소설이다. 이럴 때 '사사로운 복수'를 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인가? 아니면 또다른 범죄일 뿐인가?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분명 벌을 받아 마땅한대도 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유죄판결을 받긴 받았는데 말도 안 될 정도로 '가벼운 형벌'을 받고 풀려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물론, 현실에서는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해야만 하고, 사법정의가 명명백백하게 실현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사법부의 판단에 일일이 '불만'을 표하거나 '불신임'을 하게 된다면, 사법부의 독립이 지켜지지 않아 더욱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매우 신중하게 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 딸을 죽인 살인범이 '무죄방면' 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나 같아도 '너죽고 나죽자'는 심정으로 복수를 감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사사로운 처벌'이 용인된다면 어떻게 될까?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고, 누가 보더라도 정당한 처벌처럼 보일지라도 '사사로운 처벌'을 용인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 판결'은 무조건 존중하고 따라야만 하는 걸까? '유전무죄 무전유죄'처럼 사법부의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한 현대사회에서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편파적인 사법 판결', '불공정한 사법 판결'조차도 무조건 존중하고 따라야만 하는 걸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구'로 만들어진 '소설'속에서 이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너무 자주 등장하는 까닭에 제목조차 '어벤져스(복수자들)'라고 대놓고 복수를 정당하다고 짜놓은 극본이 연출되곤 한다. 또한 관객들도 그러한 '사사로운 복수'를 통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말이다. 외계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명분까지 내세우면서 말이다. 여기에 사법/행정/입법 시스템 따위는 끼어들 틈마저 없다. 끼어들더라도 무능하고 무지할 따름이다. 그래서 '사사로운 복수'를 저지르는 개인은 '히어로(영웅)'이라 불리고, 더욱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빌런이 등장하자 '영웅들이 집단화'하여 쳐부수는 장면에 관객들은 더욱 열광하곤 한다. 과연 '사사로운 복수'는 매우 짜릿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다. 현실에서도 그럴까? 일상속에서 그런 빌런이 등장해선 안 되겠지만, 간혹 독재권력을 휘두르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빌런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빌런이 나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 우리 사회, 우리 나라, 우리 지구를 위협에 빠트리는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려고 할 때, 그때도 '사법/행정/입법' 시스템의 절차를 지켜가며 차분하게 하나씩 단계적으로 정의를 실현시켜 나가는 나약한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인걸까? 사사로운 복수에 대한 깊은 고찰은 이렇게나 거창하게(?) 나열할 수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