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 덕의 정치, 사랑의 정치, 힘의 정치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1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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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정치는 '전쟁'이다. 어설픈 꼼수를 부린다거나 어리숙한 낭만적 감성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정치를 한다면 두 번 볼것도 없이 '걍 아웃'이다. 특히나 한국정치는 더하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죽여야 '우리'가 사는 약육강식의 '정글 정치'가 징글맞도록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인 홍성민 교수는 한국정치가 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까닭을 정치시스템이 성숙할 시간적 여유가 없이 '왕조정권'이 무너지자마자 '식민지배'를 당했고, '해방정국의 혼란'에 이어 '군사독재'를 넘어 '민주주의'가 이만큼이나 성장한 것만으로도 대견하긴 하지만, 성숙할 수 있는 '단계적 발전'을 이루기도 전에 급박하게 '강대강의 대결정치' 양상으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독립과 친일 등으로 파벌싸움만 일삼았기에 대한민국의 정치는 오직 '힘의 논리'로만 우열을 가르는 안타까운 모습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국정치는 이대로 괜찮은가? 정녕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아무리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라도 무너뜨릴 방법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한국정치의 정상화'도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다. 그저 정치꾼을 정치인처럼 활동하도록 감시하는 수준 정도로 관심을 두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부터 차근차근 이해하게 되면 '정치꾼들의 꼼수'도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고, '정치인들의 행보'도 낱낱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만이 어지럽고 복잡한 '한국정치'를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아니 적어도 저들의 일가친척만 잇속을 챙기는 난장만큼은 일거에 근절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온국민이 '정치철학'에 깊이 관심을 두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 이 책도 지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정치를 보는 3가지 관점>을 펴냈다. 그 세가지란 '덕의 정치', '사랑의 정치', '힘의 정치'라고 한다. 어려운 얘기는 빼고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정치를 함에 있어 '인덕'이 있어야 하고, 무릇 정치인이라면 마음씀씀이가 '(종교적 관점에서) 사랑'으로 충만해야 하며, 승리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과감한 결단, 다시 말해 '힘'을 적절히 발휘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는 시기적으로도 '고대의 정치'는 덕을 중요시 했고, '중세의 정치'는 사랑을 중요시 했으며, '근대의 정치'는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힘'만 갖추고 '덕'과 '사랑'이 부족해서는 올바른 정치를 이끌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인이라면 세 가지를 고루 갖춰야 매우 훌륭하다 할 수 있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정치철학에 관심을 두었다면 오늘날의 '정치판'이 위의 세 가지 중 어느 쪽에 치우쳤고, 어느 것이 절대 부족한지 파악하면서 살펴보면 틀림없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그람시까지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을 살피며 덕의 정치에서 사랑의 정치를 거쳐 힘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계보를 나열하며 설명하기도 했고, 동서양의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을 서로 비교분석하며 동서양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정치철학의 양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며 '균형잡힌 시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정치철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올바르고 균형잡힌 정치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조선왕조까지는 '덕의 정치'를 중요시해왔다. 허나 급변하는 시기에 외세의 문물을 뒤늦게 받아들이면서 '사랑의 정치'를 펼쳐보기도 전에 '힘의 정치'를 받아들이기 급급해서 '정치적 미완성', 또는 '정치적 미성숙'한 상태로 오늘날의 혼란한 정치양상을 띠게 되었단다. 다시 말해, 우리 정치의 역사는 몇몇 뛰어난 인물(지도자)가 등장해서 훌륭한 인품으로 백성을 덕으로 감싸는 정치를 오래도록 해왔으나, 이런 '덕의 정치'가 발전해 마음씀씀이를 베풀줄 아는 지도자와 백성들이 조화를 이루는 '사랑의 정치'를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왕조의 패망과 함께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를 받게 된 셈이다. 서구 유럽에서는 이 시기에 '종교(그리스도교) 혁명'이 일어나며 왕족과 귀족 뿐 아니라 민중들까지 종교적 영향력이 파고들어 한마음 한뜻으로 '사랑'을 떠받들며 지내온 경험을 축적해왔는데,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덕의 정치'를 마감해야 했고, '사랑의 정치'는 협소한 의미의 포교활동(?)만 해본 채, 승패에만 집착하는 '힘의 정치'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정치는 '지도자'에게만 '덕'을 갖추라고 요구할 뿐, 국민들 스스로 '덕'을 갖출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지도자(정치인)와 국민들 간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씀씀이를 베풀 여력도 없이 오직 '이기는 정치'만을 위해 상대를 파멸시키거나 나락으로 내몰 궁리만 하는 저급한 정치풍토를 갖추게 되었다고 분석한 것이다. 얼추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게 해야 할 시급한 문제는 지도자와 국민들 모두 '덕'을 갖추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정치적 기본소양'을 닦는 일일 것이다. 만약 '나'는 덕을 갖추고 사랑을 베풀었는데 '남'은 그렇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혜택을 누리기만 하는 얌체짓을 하게 된다면, '정의의 심판'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정의론'에 해당하는 요소로 존 롤스나 마이클 샌델이 떠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덕과 사랑을 저절로 뿜어져 나올 정도로 닦지 않게 된다면 '공리주의'를 비롯한 공정과 공평, 형평을 따지는 일에 매몰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시콜콜 따지는 사회속에서는 '덕과 사랑의 정치'가 성장할 수는 없다. 물론, '정의론'을 배척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일일이 '정의'를 논하기 이전에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만큼 상대를 존중하고 이익을 챙겨줄만한 '넉넉한 마음씀씀이'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덕과 사랑'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힘의 정치'를 논한다면, 제 잇속만 챙기기 급급한 아귀다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릇 '힘의 정치'란 상대를 재끼고 '권력'을 쟁취하는데 목적을 두기는 하지만, '이런당'이 정권을 잡든 '저런당'이 정권을 잡든 심지어 '요런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을 겨루는 정치를 말한다. 이를 테면, 권모술수로 가득하다고 오명을 뒤집어 쓴 <군주론>도 실상은 마키아벨리가 조국 피렌체가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메디치가의 수장에게 바쳤던 정치철학책이었다. 비록 권력을 잡는 방법이 정당하지 않을지라도 '피렌체'가 다른 나라의 침략에도 끄떡하지 않고 나아가 이탈리아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고 조언한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의 정치'도 정권을 잡기 위해 때론 비겁한 수단을 이용할지라도 정권을 잡은 뒤에는 오직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펼쳐져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은 덕, 사랑, 힘의 진정한 정치양상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오직 저급한 정권투쟁만 일삼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들도 모두 수준이하는 절대 아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인과 국민들이 반드시 있다. 비록 아직은 아주 미미한 '소수'일지라도 정치철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면, 바로 그 '소수'가 비로소 제대로 활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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