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 172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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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릴 적에는 <걸리버여행기: 소인국 편>만 따로 편집해서 출간한 '문고판' 형식의 동화책으로 읽었더랬다. 재밌게 읽었던 터라 우연히 '대인국 편'을 보게 되었을 때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흠뻑 빠졌더랬다. 그러다 대학생시절에 '완역판'이 새로 출간되어 읽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먼저 방대한 분량에 놀랐고, 날카로운 정치풍자, 사회비판 내용에 또 한 번 놀랐더랬다. 그저 '아동문학'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진정한 '어른문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깊은 내용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영국소설'이고, 양당체제였던 영국의회의 휘그당과 토리당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인들의 다툼에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가 무능한 정치인들을 비꼬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게 만드는 내용인줄로만 짐작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영국의 의회정치사'는 물론이고 '영국 역사'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걸리버 여행기>가 '아일랜드 저항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책 또한 허투루 보지 않게 되었다. 바로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일제강점기'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핸리 2세 때부터라고하니 12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도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해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이 좋지 않고, 간간히 유혈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깝기 그지 없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만나는 '아일랜드인의 아픔'이 바로 영국의 억압과 수탈로 점철된 가혹한 식민정책 때문이라고 봐도 거의 무방하다고 한다. 그렇게 아일랜드는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18세기 후반에는 아일랜드 자치 의회가 허용되었음에도 진정한 의미의 독립과는 거리가 멀었고, 영국의 착취는 더욱 악랄해졌기 때문에 아일랜드인의 무장봉기는 점차 '민족주의 운동'으로 번졌다고 한다. 이에 영국은 19세기 초에 아일랜드는 공식적으로 '영연방'으로 강제합병을 하면서 영국인들의 이주를 더욱 활발히 했고, 이에 저항하는 아일랜드인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아일랜드의 독립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그러다 20세기 초에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신페인당'이 창설되면서 아일랜드의 자치 요구는 더욱 고조되었고, 10여 년 뒤에는 '아일랜드 국민의회'를 창설했다. 그럼에도 영국의 탄압이 심해지자 아일랜드는 맞서 싸웠고, 급기야 전쟁상황으로 돌입(아일랜드 독립전쟁)했고, 휴전과 내전을 거듭하다 1937년에 국호를 '에이레'로 바꾸며 독립을 선언하였고, 이를 막을 여력이 없었던 영국은 독립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그러다 1949년에 다시 국호를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바꾸고 영연방에서도 탈퇴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하였단다. 무려 900여 년간의 투쟁 끝에 거둔 독립이다.

 

  이러한 역사를 품고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스위프트는 영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교양을 쌓은 뒤에 '국교회 사제'로 아일랜드에 부임하게 되었고, 양국을 오가며 종교와 정치에 관한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단다. 그의 젊은 시절은 출세지향적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정당이었던 '휘그당'과 '토리당'을 오가며 집권당을 편들며 영국 본토에서 종교에 종사하길 바랐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 아일랜드로 밀려나게 되고 말았단다. 그렇게 아일랜드에서 머물게 되면서,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고, 1720년대부터 영국의 식민지배에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렇게 노년때까지 왕성히 활동을 하면서 아일랜드인들의 존경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존경받는다고 한다.

 

  이런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가 어떤 책이었겠는가. 당연히 '정치풍자'의 내용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제국주의의 선봉에 서서 스스로 문명국이라 자랑을 늘어놓는 '영국 본토인'들에게 보란듯이 비판을 일삼았고, 때로는 비난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소설속 주인공 걸리버는 자신이 겪었던 여행담을 늘어놓으며 '강자'라고 떠세를 부리는 이들을 향해 무차별 풍자를 날리며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게 된다. 심지어 '말들의 나라'에서는 인간(야후) 자체를 부정하며 인간이라는 것에 환멸을 느낄 정도라고 야유를 보내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아동용'이라면서 왜곡했던 것일까? 그것은 '권력자'들이 하나 같이 무능하고 제 잇속만 챙기는 것에만 최선을 다했기에 <걸리버 여행기>를 '불편한 책'으로 여겼던 경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단 영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말이다.

 

  하지만 <걸리버 여행기>가 마냥 재밌거나 통렬한 비판에 속시원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다.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비판을 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어내지 않으면 '주제'를 놓치기 십상인 책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주요 화자인 '걸리버'도 작가인 스위프트를 '대변'할 때도 있지만, 스위프트가 직접 '걸리버'를 비판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비판의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따지면서 읽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영국의 역사'에 잘 모르면, 그 '비판의 대상'이 누구인지 인지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서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기 위해 '영국의 역사'부터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영국의 역사 대신 '대한민국의 역사'나 '대한민국의 현실정치'를 대입하며 읽어나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대한민국'으로 대입해서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정치풍자'는 만국 공통언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는 곳'은 달라도 '하는 짓'은 대개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치풍자는 어디까지 하면 좋을까? 사실 대한민국은 정치풍자 마저 '검열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스운 짓을 하기에 '풍자의 한계'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때 박근혜를 '마야의 그림'으로 풍자했다가 곤혹을 치룬 화가가 있었고, 지금 정권에서도 '윤석열차'로 대상을 수상하자 대회 자체를 박살(!) 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떳떳하지 못한 짓을 얼마나 많이 했길래 그 정도 풍자에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그저 허허 웃고 넘어갈 수 있잖은가 말이다. 그런데 질색팔색하는 꼴을 보면 뒤가 구리긴 구린 모양이다. 집회와 시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정말 한결 같다.

 

  한국인들 중에 한 사람이 걸리버처럼 여행을 떠난다면 어느 나라로 가게 될까? 소인국에 가면 '갑질'을 단단히 할 것 같고, 대인국에 가면 '비굴'의 끝판왕이 되어 나라도 팔아먹을 것 같고, 라푸타에 가면 '사이비 교주'로 등극해 라푸타를 침몰 시키고 말 것 같고, 휴이넘에 가면 야후 중에 야후가 되어 휴이넘의 분노를 사서 초강력울트라캡숑 뒷발질을 맞아 아구창이 너덜너덜해질 것만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짓'만은 절대 안 했으면 싶다. 지금 하는 멍청한 짓만으로도 나라꼴이 우스워져버렸는데 더욱더 호구짓을 하기 전에 휴이넘이 정의의 뒷발질로 그 입을 더는 놀라지 못하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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