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7 : 순자 ㅣ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7
김세라 지음, 이인섭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평점 :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사상가를 낳은 시대였다. 비록 지배자인 왕과 신하들은 무능했고 피지배자인 백성들은 잦은 전쟁과 큰 혼란으로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제자백가'로 일컫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해서 저마다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기에 학문적으로 매우 소중한 시대였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동양사상'이라 불리는 수많은 사상들이 중국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유가사상'은 중국을 비롯한 한중일 동양삼국의 '공통분모'로 작용할 정도로 밑바탕이 되어 '문화적 동질성'을 띄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유교'는 세 나라의 고유한 특성으로 발달하며 전통문화로 자리잡아 '공통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물론 정치, 경제 등의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 갈등이 심해지기도 하지만, 정작 세 나라의 국민들은 눈빛만 보아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근원이기도 하다.
암튼, 유가사상의 대표는 '공자'와 '맹자'로 꼽는데 반해 '순자'는 흡사 이단자 취급을 받는 듯이 홀대받기 일쑤다. 가장 큰 이유는 '순자'의 학통을 이어받은 이가 '한비자'와 '이사'로 '법가사상가'이기 때문이란다. 거기다가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학자들에게 눈엣가시처럼 밉보일 수밖에 없었던 탓에 '순자'는 오래도록 핍박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유가사상이 너무 '이상'만을 쫓는데 반해 법가사상이 오늘날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만큼 실용적인 덕분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법가사상가인 '한비자'의 스승인 '순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실제로 <순자>는 <논어>, <맹자>를 비롯한 다른 유교경전보다 '현실적인 내용'이 반영되었기에 재평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순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순자'도 유학자였기에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순자'는 유독 맹자의 '성선설'을 조목조목 비판했는데, 그 까닭은 인간은 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타고 났다고 하기에는 춘추전국시대의 현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먕자의 말마따나 '선한 본성'을 타고난 이들이 어찌하여 허구헌날 전쟁을 일삼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지도 않으며 저마다 제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했느냔 말이다. 이런 현실을 직접 겪어본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결코 선하지 않으며 악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를 두고 '성악설'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순자가 인간이 마냥 악하다고만 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선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순자도 그런 사실을 절대 부정하지 않았으며, 그런 '성인'은 올바른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해, 순자는 인간은 태어날 때는 '악한 본성'을 타고 나지만 올바른 훈육과 교육, 그리고 개인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훌륭한 인성을 갈고 닦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악설의 핵심'이다. 또한,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고, '성인'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면 애초에 타고난 본성이 '소인'이었던 탓에 바른 인성과 훌륭한 교육, 그리고 뛰어난 노력을 성실하게 갈고 닦으면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선설'을 주장한 여타의 유학자들처럼 '선한 본성'을 타고난 인간에게 적당히 교화만 시킬 수 있다면 나쁜 짓을 일삼지 않을 것이니 '덕치'가 중요하다고 본 것과는 다르게, 순자는 '예치'를 주장하며 끊임없이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스스로 수양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법치'를 주장하며 엄격한 법과 무거운 형벌 만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법가사상가'들과 일맥상통한 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보면, '순자'는 유가와 법가를 이어주는 '중간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순자는 일반적인 유가의 '왕도정치'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힘의 논리를 인정하는 '패도정치'도 불가피한 것이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순자의 유학은 꽤나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논어>, <맹자>보다는 <순자>가 읽기에 수월하며 공감가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순자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사상이 꽤나 '합리성'과 '논리성'을 중요시하는 근대적인 사상과도 잘 맞아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자>에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져봄직 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순자>도 '비판적인 읽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순자'도 어쩔 수 없는 유학자인 까닭이다. 철저한 신분제도를 고집했으며, 오늘날에 적용하기에는 곤란하거나 고리타분한 '제도와 형식, 그리고 태도'를 강조하는 낡은 사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상인 '도가', '묵가', 그리고 가장 많이 비판한 '법가', 심지어 같은 유학자들의 '유가'도 비판의 대상에 올려, 얼핏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모두까기의 일인자'로 오해하기 딱 좋은 면모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것이 '단점'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한 다른 사상가의 '실명'까지 언급하며 비판한 내용에 대해서는 '순자의 고뇌'가 얼마만큼 깊은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순자, 자신의 사상'에 비추어 다른 사상가들의 근거가 얼마나 부족하거 허황된 것인지 조목조목 따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순자'가 얼마나 학문에 진심이었는지도 엿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누구와도 '토론'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자>의 내용에는 '헛똑똑이들'을 경계하는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서 '순자, 자신'이 얼마나 자기학문에 노력과 공을 들였는지, 그렇게 결실을 본 <순자>라는 책이 결코 허술한 책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케 하기 때문에 현대의 학생들의 귀감이 되는 대학자임에 틀림없다. 정말이지 공부를 한다면 '순자처럼' 해야 한다는 말이 딱 적절할 듯 싶다.
근래에 '서이초'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져 수많은 선생님들이 슬픔에 빠져 있다. 비단 선생님들뿐 아니라 '교육'에 진심인 모든 분들이 애통해 마지않은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과연 이런 비극이 '누구의 탓' 때문일까? 나는 <순자>를 읽으며 '예의범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은 제자를 사랑으로 대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그 기본'이 왜 사라지고 만 것일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비극을 두고 공자와 맹자는 인의를 따지며 '덕치'를 강조할 것이고, 한비자와 이사는 강력한 '법치'를 내세울 테지만, 순자는 우리 모두에게 '예치'가 사라진 비극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최소한의 예절'만 잊지 않았어도 선생님에게 무례하게 대드는 학생도 줄어들 것이고, 무한이기주의에 빠진 학부모들의 얼빠진 행태도 사라질 것이며, 스승도 제자에게 더욱 사랑하지 못한 죄를 부끄럽게 여겨 '우리 교육의 현실'이 이처럼 무참하게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더욱이 정치권에서는 이 비극을 두고서 "전교조의 망령이 부활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시빗거리를 주절거리지도 말았어야 했다. 얼마나 몰상식하고 부끄럼도 모르는 망언이란 말이냐. 교사가 현실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하는 제자를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사려 깊게 생각할 줄 아는 정권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위로가 먼저다. 죽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출 줄 모르는 야만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순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군주가 예의를 알면 백성이 저절로 군주를 믿고 따른다'고 말이다. 아무리 '악한 본성'을 타고났더라도 선한 마음을 갈고 닦으면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는 순자의 가르침을 '정치인'이라면 더욱더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