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철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려 한다. 왜냐면 우리는 지금 '철학도 없고, 뭣도 없는 정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독재정권은 과거 군사독재정권보다 못한 점이 수두룩빽빽이다. 그 가운데 몇 개만 언급한다면, 첫째, 적어도 군사독재정권에서 '친일'은 자랑거리가 못되었다. 비록 친일을 한 놈들이 부족한 것 없이 누리며 살아갔을지언정 '대놓고' 자랑을 할 수는 없었다. 둘째, 과거 군사독재정권은 민주화에 역행하는 행보를 걸으면서도 '경제'만큼은 살려냈다고 자랑 섞인 으름장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경제성장이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못했다. 셋째, 후안무치의 뜻도 모르는 건지 연일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얼굴 낯짝을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일일이 열거하기도 귀찮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무뇌충'마냥 무당의 혓바닥에 놀아나고, 그저 일본이라면 추켜세우고, 마냥 미국이라면 쩔쩔 매면서 노예근성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답은 딱 하나다. '철학공부' 제대로 할 생각이 없다면 지구를 떠나야만 할 것이다. 이젠 국민들도 결단을 내렸다. "너님, 꺼져!"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철학을 공부해야만 할까? 서양철학? 동양철학? 한국철학? 그딴 카테고리는 아무 짝에 쓸모없다. 가장 현실적인 철학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쭉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할 철학이기도 하고 말이다. 철학의 계보를 줄줄 읊는 것만으로 철학공부가 완성될 순 없다. '현실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철학이다.
그 대안 가운데 '정치철학'은 세련되고 멋져야 한다. 왜냐면 언제나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매우 낡았다. 파벌싸움은 여전하고 극한대립만 내세울 뿐, '무엇'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인지 실종된 상태기 때문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는데도 '정치철학'도 없는 정치꾼들은 우파와 좌파로 갈라치기를 하고, 진보와 보수로 편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정말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다. 세련된 정치인이라면 갈등을 벌이더라도 '그것'이 오직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 더 나아가 인류공영을 위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싸움이어야 한다. 그것에서 벗어난 부정과 부패, 비리로 얼룩진 '헐뜯기' 싸움은 둘째 문제다. 누가 더 더러운지는 '국익'도 챙기고 '행복'과 '평화'를 정착시킨 뒤에 다툴 사안이다. 지금 당장 사활이 걸린 '대한민국의 국익과 주권침해, 국민들의 생계와 행복'에 관한 문제를 도외시한 갈등 양상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또한, 대한민국이 당면한 숙제는 북한과 '평화통일'을 이루고, 일본에게 '사죄와 반성, 배상'을 받아야 하며, 미국과 중국에게는 '속국'이 아닌 '동등한 파트너십'으로 관계를 정립하는 시급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한과 적대행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북한에게 퍼주는 돈은 아까워하면서 전쟁발발시 대한민국 경제가 송두리채 폭망하는 것은 두렵지 않느냔 말이다. 시쳇말로 북한에게 '적대와 전쟁'을 포기하는 대가로 치르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라 하더라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한다면 북쪽에 있는 한민족과 할 것인가? 아니면 바다 건너 일본이란 이민족과 할 것인가? 도대체 '친일'을 한다는 분들의 논리는 북한과 평화통일에는 반대하고 일본에게 굴종하고 식민지가 되는 것에는 찬성하는 이상한 논리를 편다. 그것이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어떤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입밖에 낼 수 없는 망언이다. 거기다 미국과 중국 앞에서는 한없이 낮은 자세로 '굴욕외교'를 펴고 있다. 왜 당당히 '대한민국의 국익'을 얘기하지 못한단 말인가? 한국은 '수출'로 빌어먹는(?)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앞에 납작 엎드리지 않고서는 살아갈 길이 없는 것인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라. 고객은 왕이 아니다. 그저 내 물건을 사간 '호구'에 불과할 뿐이다. 미국과 중국이 대한민국의 호구 노릇을 하지 않겠다면 다른 나라를 물색하고 더 좋은 조건으로 팔면 된다. 그걸 고민하라고 우리 국민은 '정치권력'을 빌려준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게 가서 쩔쩔 매고만 있느냔 말이다.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을 멋진 나라로 만들었지 않느냔 말이다. 제발 못난 짓은 그만하고, 제대로 된 일 좀 하란 말이다.
물론, 이 책에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정치철학'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서양철학사 중에서 '현대철학의 핵심'에 대한 설명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이해가 쏙쏙 될 수 있도록 만화형식으로 쉽고 재밌게 말이다. 서양 현대철학의 핵심은 '난해함'이다. 고대의 자연철학, 중세의 종교철학, 근대의 계몽철학까지 이어온 철학의 핵심은 '인간의 이성'이었다. 다시 말해, 절대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이란 무엇인가'에 천착해왔었는데, 현대철학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버린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관점'만을 남기면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한 것이기 때문에 한층 복잡해지고 난해해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철학이 난해해졌다는 것의 이면에는 '정답은 없다'는 새로운 해석을 낳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법답안'이 없다는 얘기다. 이것도 정답일 수 있고, 저것도 정답일 수 있으니 무엇으로 '정답'을 삼을지 난감해졌지만, '모두'를 정답으로 하면 속시원히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철학은 말이 많다. '모두'가 정답인 난감한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할지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대인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처우를 받더라도 '믿고 따를 존재'가 있어 덜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럴 존재'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자신만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의지'가 굳세어야만 한다. 남에게 기대어서 편하게 사는 '노예'가 아닌 스스로 우뚝 서서 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자유인'으로 말이다. 그런 자유인들이 모인 사회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까닭도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도 존중해주어야 하는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잘못된 기준'을 내세우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철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는데 골머리를 썩히게 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공리주의', '실존주의', '공산주의', '현상학', '구조주의' 등등 모두 그런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철학자 나름의 고민의 결과다. 그들의 고민을 읽어보면 '나름' 이해가 되면서 동시에 '절대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렇게 공감할 수 없는 지점을 파고들어 '또 다른 철학'을 내세우고 또 이야기하는 것이 철학자들의 일과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자들의 고민'이 아닌 '자기 철학'을 어떻게 내세울 것이냐가 될 것이다. 앞서 '정치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대한민국에 어울릴 만한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도 '정답'은 없지만, 우리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한 최선을 고민하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고민의 결과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선 절대로 안 된다. 적어도 '그들'에 속하지도 못한 이들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은 짓을 멈춰야 한다. 철학공부가 필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런 '호구들의 깨우침'을 위해서 필요한 셈이고 말이다.
철학도 없는 부정한 권력을 무도하게 휘두르는 족속들은 '깨어있는 시민들'에 의해 쫓겨나야 마땅하다. 홉스와 로크, 루소가 주장했던 <사회계약설>의 핵심도 바로 그것이다.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저항할 권리가 '국민'에게 있다는 것 말이다. 문제는 쫓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쫓아낸 이후'에 발생한다. 철학이 없는 시민들이라면 또다시 '무능한 정권'을 뽑을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코앞의 이익을 위해서 아무에게나 '정치권력'을 나눠주는 호구천사가 되고 말 것이다. 또 그러고 싶은가? 그러지 않으려면 당장 '철학공부'부터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