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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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강준만을 들여다 보려 한다. 오래전에 읽기만 하고 리뷰를 쓰지 않은 책도 있거니와 간만에 읽은 '강준만의 논조'가 조금은 달라진 듯 해서 말이다. 물론 '기득권'에 굴하지 않고 '소신과 양심'에 어긋남이 없는 '목소리'는 여전한 듯 보였다. 허나 그의 '칼날의 방향'이 달라지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대한민국의 지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달라진 듯 보여 아쉬울 따름이다. 그의 칼날은 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과 같을 줄 알았는데, '검찰독재'가 예상되는..아니 기정사실이 된 지금에 와서는 방향이 살짝 달라진 것 같은 것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이란 말인가? 아니면 그의 칼날이 무뎌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무튼 이 책은 '정치적 올바름(PC)'에 관한 책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올바름을 빗대어 상대를 비난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무한히 착한 척을 하고, 상대를 악마로 취급하거나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타락시켜 반박조차 할 수 없게 몰아대며 맹비난을 퍼붓곤 한다. 허나 말만 번지르르할 뿐 스스로도 실천하지 못할 높은 수준의 '도덕적 명분'만 앞세우는 키보드워리어를 'PC충'이라면서 비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치어리더의 의상이 너무 선정적이라면서 대학생의 치어리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이다. 정작 '치어리딩'을 하는 당사자가 괜찮다, 부끄럽지 않다, 운동경기의 요소일 뿐, '선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문제'가 아니냐면서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의사를 밝혀도,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우는 이들은 "그건, 당신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음흉한 시선은 분명히 존재하고, 당신들이 그런 '관음증 환자' 따위에게 길들여지고, 심지어 '가스라이팅'을 당했을 수도 있다면서, 오직 당신들을 위한 결정이니 허락할 수 없다"고 할 지경이란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의 역사는 서양에서 오래된 것이며,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위의 사례도 미국의 한 대학에서 벌어진 일일 뿐, 우리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볼 수 있단다. 허나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쟁이 현재 벌어지고 있으며, 초기 단계라고는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에선 이미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서 심각한 설전이 오갈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싸이의 흠뻑쇼'를 둘러싼 논쟁들,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운 여러 문제제기 등, 심지어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이 사나워지는 말말말 등을 볼 때, 우리 사회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걱정이 앞설 지경이다.

 

  간략히 예를 들자면, 싸이가 콘서트장에서 뿌리는 물이 300t에 달한다는 뉴스에, 누군가는 '봄가뭄에 농민은 속이 타들어가는데 물낭비가 웬말이냐'면서 인별에 올리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는 '코로나로 숨죽였던 대중문화가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켜는 것일 뿐인데, 타들어가는 농민 걱정만 눈에 보이고, 겨우 숨통을 틔우려는 대중들의 울화통은 안 보이는 것이냐, 농사 짓는 분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들이 '선한 척'하며 싸이의 흠뻑쇼를 비난하는 것은 PC충과 다를 바가 없다'며 비난을 쏟아낸다. 여기에 '팩트체크'를 한답시고, 농민들의 목마름은 봄에 벌어진 일이고, 싸이의 흠뻑쇼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장마철에 열리는데, 뭔 상관이냐고 댓글을 달고, 또 다른 이는 '이말, 저말, 다 맞는말이지만, 봄가뭄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니, 우리 모두 자중하고 농민들의 시름이나 속시원히 해결할 방안을 이야기하자'면서 논쟁은 끝없이 이어지기 마련이란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에서 나오는 말들의 향연에서 '틀린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듣다 보면 다 옳은 소리이고, 적절한 지적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모두가 옳은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빠진다. 어느 한 쪽만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 되는 셈이고, 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다보니 끝내는 '모두'가 기분이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심하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란다. 이런 트럼프의 모습을 보면서 유권자들이 '나도 그래'라면서 공감을 하고, 유세 현장에서 상대진영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한 제스쳐가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고 호감으로 돌아서게 하였다는 분석이다. 이 정도면 '정치적 올바름'은 쓴소리를 넘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리 도덕적 명분에 입각해서 '옳은 소리'를 던졌다하더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쓴소리'가 되면, 도리어 비난의 화살이 쏘아지게 되고 만다.

 

  그런데 '정치적 올바름'이 진정 '쓴소리'인지, '맹비난'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상 구분할 명백한 '경계'도 그을 수 없고, '분간'도 할 수 없다. 공정한 심판을 볼 수도 없으며, 누구도 무어라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저 서로를 향한 날선 비난만 남게 되어 '비판 의식'도 사라지고, 긍정적 효과를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정치적 올바름'은 사라져야만 하는 것일까? 정녕 긍정적인 효과는 찾을 수 없고 온통 부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강준만도 애기했듯이, '겸손'이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상대의 쓴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람직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지적한 '날카로운 제안'에 모두가 합심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해나간다면 '정치적 올바름'도 칼부림이 날 지경으로 내몰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질문'을 던지는 쪽이 언제나 유리하다는 점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연못의 개구리는 대가리가 깨쳐 죽는다는 점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명해져야 한다. 언제나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고, 엄격한 도덕적 잣대나 엄정한 법적 조치, 여기에 '팩트체크'까지 질문자도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약자의 질문을 봉쇄하고 기득권자에게 짓눌려서 발언조차 못하게 막으려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대부분 '약자'가 강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기 때문에 충분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허나 강자가 '약한 척'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따위의 악용 사례가 얼마든지 있기에 또다시 '명석한 판단'이 필요한 법이다.

 

  이에 대해서 강준만은 '문재인 정부'의 '약자 코스프레'를 예로 들면서, 지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윤석열과 이재명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는 당부로 책을 마무리 했다. 아마도 이 책이 쓰여질 시기가 '대선 직전'이었고, 문재인 정부의 잘잘못이 여론의 심판대에 오른 시점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또한, 일부는 윤석열 정권의 초기에 쓰여졌을테고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의아한 점도 많았다. 설마 강준만이 윤석열의 '검찰독재'를 두둔하는 것인가..하고 말이다. 뭐, 더 지켜볼 일이다.

 

  암튼, '정치적 올바름'이 논쟁적으로 진행된다면 '하릴없는 소모전'에 불과할 것이다. 서로의 감정골만 더욱 깊게 만드는 원흉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럴 땐 '겸허한 자세'로 쓴소리를 받아들이고, '반성과 성찰하는 자세'로 대답을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마냥 '양보'만 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걸고 밀고 나아가야 할 때는 거침없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칭찬과 비판의 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비난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면 거두어들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지혜를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하는 머저리라면 그대로 생매장 당해도 쌀 것이다. 쓴소리와 비난도 구분 못하는 바보가 부끄러움까지 모른다면 혀를 깨물고 죽어야 한다. 안 그러면 여러 사람이 피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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