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면 '철학'이 그다지 어렵지 않고 '해볼만 하겠는데'라는 맘이 들어 그럴 듯한 <철학책>을 골라 읽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다. 분명 강사가 들려준 '철학이야기'는 참 쉽고 재밌었는데, 왜 <철학책>은 쓸데없이 어렵기만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그렇게 '철학의 뜨거운 맛'에 홀랑 데이고 나서야 철학이야기를 쉽고 재미나게 풀어준 강사님의 위대함(?)이 새록새록 솟아나기 마련이다.
그렇다. <철학책>은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읽어내기'조차 버거운, 솔직히 말하면, 몇 장 읽다가 냄비받침으로 쓰이고마는 '다른 쓰임새로써 매우 유용한 책'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것도 아니면 걍 책꽂이에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거나 말이다. 그 대표적인 책이 바로 미셀 푸코가 쓴 <지식의 고고학>일 것이다. 푸코 철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는 이 책은 솔직히 읽기 어려운 책이다. 정말 재미없다. 비전공자뿐 아니라 전공자들조차 '한자어투'로 뒤쳐진(번역된) 탓에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고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한다. 그 탓인지 '만화'로 쓰인 이 책조차 <지식의 고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 '원전의 내용'은 둘째치고, 푸코의 저서를 총동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푸코의 연구방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책'들에 대한 소개와 부연설명을 더욱 세세하게 할 정도였다.
암튼, 서론은 각설하고, 푸코 철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거창하게 '구조주의 철학'이니 어려운 말은 철학전공자들이 하도록 남겨두고, 내가 느낀 바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남들과 다르게 사유하기'였다. 비단 푸코만의 철학방법이 아니라 모든 철학자들의 기본소양일테지만, 푸코 철학이 남다른 까닭은 '철학'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구조주의파 중에서도 가장 깔끔하게 '다른 시선'으로 철학적 사유를 시작하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고고학적 관점'이라는 것도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운 접근방식이며, '목적'을 두고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하다보니 목적에 다다르는 방식의 학문이라서 '연구의 방향성'이 대단히 자유롭기 그지 없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색다른 접근을 선호하는 것도 푸코 철학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까닭이 되었다.
물론, 그 때문에 시대적 흐름이나 앞뒤 맥락도 없이 '불연속적인 특이점'에 주목하고서 독특한 연구를 한 탓에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아프기만 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유발하기도 한다. 더구나 '비교대상'도 없이 독창적으로 펼쳐나가는 서술은 읽다 지쳐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악순환의 반복'인 탓에 완독의 불가능성만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런 탓에 '원서'는 진즉에 포기했고, 이 책 <서울대선정 인문고전60선>을 읽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지식의 고고학>뿐 아니라 푸코의 다른 저서들에 대한 내용까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는 탓에 그 어떤 책보다 알찬 내용이 매력적이었다. 분명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푸코 철학'에 대한 매력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고, 어려운 철학책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사실, <지식의 고고학>에서 말하는 내용은 비전공자들에겐 '통곡의 벽'과 다를 바가 없다. 구조주의 철학의 서막을 열어준 '푸코 철학의 정수'라고 소개하곤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몇 되지 않는다. 심지어 서울대 철학교수마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서 '정말 어려운 언표(언어)들의 나열'만 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교수님이 제대로 이해한 다음에 <지식의 고고학>을 뒤쳐냈다면 정말 쉽고 재미나게 뒤쳐냈을 것이다. 하다못해 '주석'이라도 읽으면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을 텐데, 그러지 못하셨으니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난해한 뒤침'을 하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만화' 형식으로 쓰인 <지식의 고고학>이 돋보이는 것이다. '원전의 난해함'을 푸코의 다른 책을 통해서 이해시키고, 다른 저자들의 책들을 친절히 소개하면서 <지식의 고고학>의 난해함을 쉽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푸코 철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복잡다단해서 접근하기 힘든 <현대철학>에 '접근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 한 권이면 '구조주의 철학자들'에 대한 관심이 폭발할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의 위대함'을 과감히 내려놓기 시작했는데, 이는 인간이라는 '자존감'을 내려놓는 계기인 동시에, 그로 인해 불행에 빠진 인간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첫 발'을 내딛은 철학자들이 바로 '구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이 풀어놓은 '진실'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나만 샘솟는 것일까(")a쩝
암튼, 중요한 것은 '철학'은 암기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철학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든 그건 절대 중요하지 않다.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들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히 위대한 철학자들 앞에서 명함도 내놓기 부끄럽다고 철학을 포기할 까닭은 전혀 없다.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만, 그 어떤 철학자도 '정답'을 얘기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천재라 불리는 철학자들조차 '그럴 듯한 결론'을 내놓을 뿐이고, '그 결론'은 어김없이 '반박'되어 새로운 철학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철학은 '암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이해'하고 '공감'하면 된다. 그 이후부터가 가장 중요한 데, '나만의 철학'으로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정치철학이 없다면서 구구절절 욕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더럽게 못한다고 느낀다면, 분명 당신이 '바라는' 정치철학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정치철학'이 무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고, '나만의 철학'이 무엇인지 당당히 밝히는 이들도 별로 없다. 그저 남이 못하는 것만 지적질할 뿐,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지 말하지 못한다. 심지어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즐기면 그뿐이라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에게 철학이 절실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지식의 고고학>을 단 한 번 읽고 '푸코 철학'을 단박에 이해했다면 천재가 틀림없다. '언표'가 무엇이고, '변환'에 대해서 속속들이 파악하고 답을 내는 경지에 다다랐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저 <지식의 고고학>을 이해한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푸코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어디 가서 자랑질을 할 것이냔 말이다. 아무도 '푸코 철학'에 대해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그건 그저 '지식'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철학공부의 목적이 '지식암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푸코의 연구방법'을 따라서 온갖 사물에 '과학적인 시선'을 투영하여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렇게 지식탐구의 지평을 열어서 더 많은 지식을 이해하고 해박한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면 '거기서' 만족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진정한 목적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보다는 '철학의 이해'를 통해서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 <철학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나만의 철학'으로 삼고, '나만의 철학'을 발휘해서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디딤돌로 삼는 것이 좀더 그럴 듯 해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무릇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옛말은 바로 이런 뜻으로 풀이해야 옳을 것이다. 철학을 공부한 보람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은 사유에서 멈추지 말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철학이 나아가야 할 길일 것이다.